[월간변론][시선] 장신대 ‘무지개 행동’ 손배소 ‘기각’과 고 변희수 하사 승소 판결

2021-10-22 117

정의를 위해 사랑이 왜 중요한가

[시선] 장신대 ‘무지개 행동’ 손배소 ‘기각’과 고 변희수 하사 승소 판결

조은호 변호사(민변 공익인권변론센터)

 

마사 누스바움은 <혐오와 수치심>에서 “혐오가 법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한 추정상의 기준이 될 때, 그리고 특히 취약한 집단과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예속하고 주변화시키는 역할을 할 때 이는 위험한 사회적 감정이 된다. … 혐오가 담고 있는 인간 사회의 비전에 기초해서 우리의 법률 세계를 건설해 나가서는 안 된다”고 서술한 바 있다. 제도화된 현대 사회에서, 법은 정당성을 주장하기에 가장 좋은 수단일 것이다. 빈곤, 장애, 퀴어, 난민 등 소수자에 대한 평등과 연대가 늘어나는 만큼,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움직임도 커지는 요즘, 법 안으로 파고드는 혐오를 경계하라는 마사 누스바움의 목소리는 더욱 큰 울림을 준다.

 

2018. 5. 17. 장로회신학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학생 몇몇이 무지개색으로 옷을 맞춰 입학교 예배를 드렸다. 이날의 작은 퍼포먼스는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맞아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반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학생들은 그들의 예배가 누군가에게 위로와 응원이 되기를 바라며 평소보다 더욱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에 참석하였다. 그러나 학교는 일부 언론이 ‘장신대 내에서 동성애 지지 퍼포먼스가 벌어졌다’며 비난하자, 학생들에게 정학 6개월, 근신, 경고 등의 징계를 내렸다. 학생들은 부당한 징계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법원에 징계효력정지 가처분과 무효확인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법원은 가처분과 무효확인소송에서 징계의 부당함을 인정하였고 학교가 항소를 포기하면서 판결은 확정되었다.

 

그러나 부당한 징계로 학생들의 명예는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되었다. 학교는 징계효력정지가처분이 인용된 후인 2019. 5. 31. 학칙을 개정하여 징계사유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동성애에 관한 결의에 반대하는 학생’을 추가하여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더욱 강화하였다. 학교의 대응은 학생들을 향한 ‘총회와 학교의 뜻에 반하는 문제아’라는 낙인을 강화하였고, 결국 이들은 학교 안팎에서 돌아갈 자리를 잃어버렸다. 목회자를 꿈꾸던 이들에게 학교는 배움뿐 아니라 삶의 신념을 키우는 공간이었을 것이나, 이 모든 일의 단초를 제공한 학교는 사태의 원인을 학생들에게 돌리며 그들의 피해를 외면하였다.

 

이에 학생들은 손해를 회복하고 학교로부터 사과를 받기 위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서울동부지방법원은 2021. 10. 6. 2020가합105935 판결에서 학생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였다. 재판부는 징계 당시 총회 결의 위반을 징계하는 규정이 없었다는 점을 간과하고, 동성애에 관한 교단의 입장과 성경의 문언을 참조하였을 때 학교가 원고들의 행위를 ‘동성애에 대한 총회의 결의에 반하는 것’으로 오인하여 징계한 것이며, 이는 민법상 손해배상의 이유가 될 정도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학교는 성소수자 혐오를 반대한 학생을 징계할 수 있다’는 결론을 법의 언어로 선고한 것이다.

 

위 판결이 선고된 다음 날인 2021. 10. 7. 군 복무 중 상관의 허락을 받고 성확정 수술을 받았으나 고환 등 남성 성기 손상은 심신장애라는 이유로 강제전역당한 고 변희수 하사의 강제전역처분 취소소송의 1심 판결이 선고되었다. (대전지방법원 2021. 10. 7. 선고 2020구합104810 판결) 대전지방법원은 소송의 형식적 요건을 살피는 본안 전 판단에서 “성정체성 혼란으로 성전환수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동일한 사유로 위법한 처분이 반복될 위험이 있어 위법성 확인이 필요하다”고 명시하며 이 사건이 제도 개선, 입법 등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이어서 재판부는 고 변희수 하사는 군대의 전역심사 당시 여성이었기 때문에, 남성의 신체를 기준으로 심신장애 여부를 판단한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하였다. 결국 법원 판결로 강제전역처분의 위법성이 확인되면서 고 변희수 하사는 생전 그녀의 희망대로 군인으로 남을 수 있었다.

 

하루 차이로 원고 패소와 원고 승소라는 상반된 판결을 지켜보며, 비애에 젖은 까닭은 당사자들이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탓이었다. 연대하고 사랑하기 위해 용기를 낸 이들에게 우리사회는 어떠한 폭력을 휘두른 것인가. 학생들은 학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항소를 결심하였다. 군대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항소 여부는 아직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학생들과 고 변희수 하사를 위한 정의는 아직 불확실하고 요원하다.

 

마사 누스바움은 법률이라는 외피 뒤의 혐오를 직시할 때 “왜 우리는 어떠한 집단의 사람들을 그렇게 대놓고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우리 자신을 비판하지 않는가” 라는 질문이 가능하다고 하였다. 혐오가 아닌 사랑을 담을 때 법은 정의에 조금 더 가까워질 것이다. 이 글을 빌어 고 변희수 하사를 기리며, 그녀와 그녀에게 연대하던 이들이 바라는 세상을 다시 한 번 꿈꾸어 본다.

 

 

2021.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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