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고 숲에서 길을 묻다 : 세계사를 바꾼 20대 사건, 소설과 영화로 읽다 – ②
신화는 어떻게 영화가 되었나?
: 트로이 전쟁에 대한 문학과 영화
한경수 회원 (민생경제위원회)
영화 The Odyssey(2026)의 한 장면
목차
프롤로그
Ⅰ. 시대적 배경
Ⅱ. 트로이 전쟁 신화
Ⅲ. 작가의 시선
Ⅳ. 감독의 시선
Ⅴ. 원작과 영화의 비교 : 《율리시즈》·《더 리턴》·《오디세이》
Ⅵ. 신화는 어떻게 문학과 영화로 재탄생하나?
에필로그
< 부록 > 서사시 에피소드별 문학과 영화의 표현 비교 표
프롤로그
2026년 여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가 IMAX 필름으로 전 세계에 상영되었다. 이 영화는 CG 없이 실물 세트와 필름만으로 완성해낸 ‘가장 아날로그적인’ 서사시라는 찬사를 받고 있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 장르 역사상 가장 큰 제작비(약 2억 5천만 달러, 원화 약 3,500억 원)가 투입된 작품이 되기도 했다. 개봉과 동시에 헬레네 역의 루피타 뇽오 배우 캐스팅 등으로 인해 캐스팅 논쟁이 뜨겁기도 하였다. 그러나 논쟁이 커질수록 극장가에는 호메로스라는 이름이, 그리고 3천 년 전 트로이라는 도시가 다시 소환되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The Odyssey(2026)
호메로스가 오디세우스의 재능이자 미덕으로 예찬했던 거짓과 기만을 놀란 감독은 제우스의 법(크세니아)을 어긴 죄의 근원으로 되돌려 놓았다. 즉, 놀란의 ‘오디세이아’가 된 셈이다. 이에 대해 ‘원작 충실도’논쟁이 발생했다. “이건 내가 알던 오디세우스가 아니다”라는 반응부터 “이것이야말로 살아있는 신화의 재해석이다”라는 반응까지 다양했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반응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2004년 페터젠 감독의 《트로이》가 개봉했을 때도, 2018년 BBC·넷플릭스의 《트로이: 왕국의 몰락》이 방영되었을 때도, 심지어 1954년 카메리니의 《율리시즈》가 스크린에 걸렸을 때도 똑같은 논쟁이 반복되었다. 신화는 애초에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자체가 이미 구전으로 전승되던 여러 이야기를 특정한 시각으로 편집하고 재구성한 결과물이었다. 게다가 그 편집과 재구성마저 트로이 전쟁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시점으로부터 400년 가까이 지난 뒤에야 이루어졌고, 지금 우리가 아는 형태의 문헌으로 완전히 고정되기까지는 다시 그만큼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화와 드라마를 두고 던져야 할 질문은 ‘얼마나 원작에 충실한가’가 아니라, ‘각 시대의 감독은 어떤 렌즈로 이 신화를 다시 썼는가’로 보아야 한다.
이 글은 놀란의 영화 《오디세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트로이 신화 전체에서 트로이 전쟁과 오디세우스의 귀향이 각각 어떤 위치와 비중을 차지하는지 먼저 알아보고, 이어서 트로이 전쟁을 다룬 두 편의 영화(2004년 《트로이》, 2018년 《트로이: 왕국의 몰락》)와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다룬 세 편의 영화(1954년 《율리시즈1)》, 2024년 《더 리턴》, 2026년 《오디세이》)을 각각 비교한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역사적 사실과 신화, 그리고 문학과 영화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간극을 감독들이 각자의 시대정신으로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오디세우스는 고대 그리스어이고, 율리시즈는 로마 라틴어 및 영어식 이름이다.
Ⅰ. 시대적 배경
1. 미노아에서 미케네, 그리고 암흑기까지
트로이 전쟁 신화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이 이야기가 발 딛고 있는 청동기 시대 에게해 세계의 실제 역사를 함께 개략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 1. 미노아 문명(크레타 문명) : 기원전 3,000년 – 1,450년경
기원전 3000년경부터 크레타섬을 중심으로 발달한 미노아 문명(크레타 문명)은 유럽 최초의 고도 문명으로 꼽힌다. 크노소스의 궁전 유적이 보여주듯 미노아인들은 강력한 해상 교역망을 바탕으로 번영을 누렸으며, 훗날 그리스인들이 이 문명을 신화화한 것이 바로 미노스 왕과 미궁, 미노타우로스 전설이다. 미노아 문명은 기원전 1450년경 화산 폭발(산토리니, 즉 고대 테라섬의 대분화로 추정)과 이어진 미케네인들의 침공으로 쇠퇴한다.
# 2. 미케네 문명 : 기원전 1,600년 – 1,100년경 – 트로이 전쟁 시기
미노아 문명의 뒤를 이어 그리스 본토에서 발흥한 것이 미케네 문명(기원전 1600년경~기원전 1100년경)이다. 미케네, 티린스, 필로스 등 그리스 본토 각지에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왕궁을 세운 이 문명은 청동제 무기와 전차를 활용한 호전적 귀족 사회였고, 선형문자 B라는 초기 그리스어 문자 체계를 남겼다. 트로이 전쟁 신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가 바로 이 미케네 문명 말기, 대략 기원전 13~12세기 무렵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19세기 독일의 사업가이자 아마추어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은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문자 그대로 믿고 오늘날 튀르키예 서북부 히사를리크 언덕을 발굴했으며, 그곳에서 여러 시대에 걸쳐 중첩된 도시 유적을 발견했다. 이 가운데 ‘Troy VIIa’로 명명된 층위가 기원전 13세기 무렵 화재로 파괴된 흔적을 보이고 있어, 오늘날 다수의 학자들은 이 유적이 트로이 전쟁 신화의 역사적 장소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다만 신화 속 10년에 걸친 대규모 범그리스 연합군의 원정이 실제로 있었는지, 아니면 청동기 후기 에게해 지역에서 흔했던 국지적 분쟁과 해상 습격이 후대에 하나의 거대한 서사로 압축·과장된 것인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 3. 청동기 문명 붕괴와 암흑기 : 기원전 약 1,200년 – 800년경
기원전 1200년경을 전후해 미케네 문명을 포함한 동지중해 청동기 문명들은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대규모 붕괴를 겪는다. ‘해상 민족2)’의 침입, 기후 변화로 인한 가뭄과 기근, 내부 반란, 무역망의 연쇄적 붕괴 등 복합적 요인이 거론된다. 이 붕괴 이후 그리스는 문자 기록조차 거의 남지 않는 이른바 ‘암흑기(Dark Age, 기원전 1100년경~기원전 800년경)’로 접어든다. 궁전 체제가 무너지고 인구가 감소하며 문자 문화가 단절된 이 시기에, 트로이 전쟁의 이야기는 문자가 아닌 구전 서사시 전통(음유시인들이 리라 반주에 맞춰 암송하던 형식)을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되며 조금씩 살을 붙여갔다.
2) 놀란 감독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바다로부터 온 자들”이라고 문명에 대한 위험을 표현하지만, 결국 그 정체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음을 깨닫는 것으로 표현한다.
# 4. 문명의 회복기(고졸기) : 기원전 약 800년경부터 그후 도시국가
기원전 8세기경 문자가 다시 도입되고 그리스가 이른바 ‘고졸기(Archaic period)’로 접어들면서, 이 오랜 구전 전통이 마침내 호메로스라는 이름 아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라는 고정된 문학 텍스트로 정착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읽는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청동기 시대의 사건을 400년 가까운 시차를 두고, 그 사이 암흑기의 기억과 상상, 그리고 서사시가 정착되던 고졸기 그리스인들의 가치관까지 겹겹이 쌓인 상태로 전해 받은 텍스트인 셈이다. 영화가 신화를 다시 각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호메로스의 서사시 자체가 이미 하나의 ‘각색’이었다는 사실은 이후 여러 감독들이 영화로 재해석을 하는데 중요한 참조점이 된다.
이 시차는 사실 한 겹이 아니라 최소 두 겹이다. 이야기가 구전 전통 속에서 하나의 정제된 형태로 수렴한 것이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의 시대라면, 그 구전 텍스트가 지금 우리가 읽는 형태로 완전히 고정된 것은 그보다도 한참 뒤의 일이다. 그리스인들이 페니키아 문자를 받아들여 알파벳을 고안한 것이 기원전 8세기 후반이므로 서사시가 처음 문자화된 시점은 호메로스와 거의 겹치지만, 오늘날 통용되는 표준 텍스트가 확립된 것은 기원전 6세기, 아테네의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 시대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판아테나이아 축제에서 낭송할 정본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다른 판들을 정리했다는 전승이 사실이라면, 트로이 전쟁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추정되는 시점부터 우리가 아는 확정된 텍스트가 성립하기까지는 약 60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셈이다.
이 긴 시차는 텍스트 곳곳에 흔적을 남긴다. 우선 서사시에는 서로 다른 시대의 물질문화가 뒤섞여 있다. 오디세우스가 착용했다고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멧돼지 엄니 투구는 실제 미케네 시대 유물과 정확히 일치하는 드문 사례지만, 다른 대목에는 청동기가 아닌 철제 무기나 후대의 화장(火葬) 풍습이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 있다. 사회 구조 역시 어긋난다. 선형문자 B가 보여주는 미케네 시대는 중앙집권적 궁전 경제 체제였지만, 호메로스가 그리는 사회는 오히려 암흑기 이후의 느슨한 족장 사회에 가깝다는 것이 여러 학자들의 지적이다. 무엇보다 400년 넘게 이어진 구전 과정 자체가 문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세대를 거치며 부풀려지고, 별개의 사건들이 하나로 합쳐지고, 그때그때의 가치관이 입혀지기 마련이다. 이는 서사시가 한 시점의 스냅 샷이 아니라 수백 년에 걸친 구전 과정 그 자체가 화석처럼 새겨진 텍스트임을 보여준다.
2. 서사시권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는 ‘트로이 신화’라고 하면 흔히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두 편만을 떠올리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트로이 이야기는 훨씬 더 방대한 연작 서사시로 존재했다. 학자들이 ‘서사시권(Epic Cycle)’이라 부르는 이 연작은 우주의 신들이 결혼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오디세우스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트로이 전쟁을 둘러싼 시간대 전체를 빈틈없이 이어 붙인 여덟 편(혹은 분류 방식에 따라 그 이상)의 서사시로 구성되어 있었다. 순서대로 나열하면 《키프리아》 → 《일리아스》 → 《아이티오피스》 → 《소일리아스》 → 《일리우 페르시스》 → 《노스토이》 → 《오디세이아》 → 《텔레고니아》이며, 이 여덟 편을 이어 붙이면 트로이 전쟁의 원인부터 오디세우스의 최후까지가 하나의 끊김 없는 연대기로 완성된다.
이 서사시들은 단일한 저자가 계획적으로 써 내려간 ‘시리즈’가 아니라, 서로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시인들이 지은 독립적인 작품들을 후대 학자들(기원전 2세기 무렵)이 시간 순서대로 편집해 하나의 ‘사이클’로 묶은 것이라는 점이다. 즉 ‘서사시권’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고대인들의 편집 행위, 다시 말해 일종의 ‘각색·재구성’의 산물이다. 오늘날 우리가 여러 매체의 원작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묶어 이해하는 방식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셈이다.
3. 왜 두 편만 살아남았는가
서사시권의 여덟 편 가운데 오늘날까지 완전한 형태로 전해지는 것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뿐이며, 나머지 여섯 편은 단 한 줄도 온전히 남아 있지 않다. 우리가 이 소실된 작품들의 줄거리를 알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5세기 무렵의 학자로 추정되는 프로클로스의 2차 자료 덕분이다.
왜 유독 두 작품만 온전히 살아남았을까.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설명은 ‘정전화(canonization)’ 과정과 관련이 있다. 기원전 3세기 무렵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학자들이 그리스 문학 전체를 정리하고 표준 판본을 확정하는 대규모 편찬 작업을 벌였는데, 이때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문학적으로 압도적으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으며 학교 교육의 정전 텍스트로 굳어졌고, 이후 필사와 보존의 우선순위에서 다른 작품들을 압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서사시권의 나머지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문체가 평이하고 구성이 느슨하다는 평가3)를 받으며 점차 필사되지 않았고, 결국 고대 후기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유실된 것으로 보인다.
3)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 제23장 (Bekker 1459a17~1459b7)에서 “호메로스는 트로이 전쟁 전체가 시작과 끝을 가졌음에도 그것을 통째로 다루지 않았는데, 그런 서사는 지나치게 방대해 한눈에 조망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전쟁의 한 부분을 떼어내고, 함선 목록 같은 여러 삽화(에피소드)를 곁들여 다채롭게 만들었다. 반면 다른 시인들은 한 명의 영웅, 혹은 한 시기, 혹은 사건 하나를 다루되 지나치게 많은 부분들로 다루었으니, 『퀴프리아』와 『소(小)일리아스』가 그렇다.”고 평가하였다.
Ⅱ. 트로이 전쟁 신화
1. 트로이 전쟁 : 그리스 신화의 마지막 장
그리스 신화는 흔히 우주의 탄생(신통기)에서 시작해 신들의 시대를 거쳐 영웅들의 시대로 이어지는 하나의 거대한 연대기로 이해된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가 카오스에서 가이아, 우라노스, 크로노스를 거쳐 제우스가 올림포스의 왕좌에 오르기까지의 신들의 계보를 다룬다면, 그 이후의 영웅 신화들—헤라클레스, 테세우스, 이아손과 아르고호 원정대, 테바이 전쟁—은 신들의 시대가 저물고 인간 영웅들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이야기들이다. 트로이 전쟁 신화는 바로 이 영웅시대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이자 가장 거대한 사건으로 자리한다.
그리스 신화 안에는 트로이 전쟁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한 나름의 ‘기원 설화’가 있다. 대지가 인간의 무게로 신음하자 제우스가 인구를 줄이기 위해 전쟁을 계획했다는 설, 혹은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적힌 황금 사과를 던지면서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세 여신의 다툼이 시작되었다는 ‘파리스의 심판’ 설화가 대표적이다. 세 여신이 제우스에게 사과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해 판단해 달라고 하자 제우스는 이를 제일 잘 생긴 남자인 파리스에게 떠넘겼고, 당시 목동으로 지내던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판단을 맡게 되었다고 한다. 파리스는 아프로디테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하자 황금 사과를 아프로디테에게 건넨다. 문제는 헬레네가 이미 스파르타의 왕비였다는 점이다.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리고 트로이로 도주하면서, 그리스 전역의 왕들이 헬레네의 전남편 메넬라오스와 그의 형 아가멤논을 중심으로 연합군을 결성해 트로이로 진군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트로이 전쟁의 신화적 발단이다.

트로이 전쟁의 시작과 오디세우스의 귀환 그리고 그의 죽음까지 여덟 편의 서사시에서 다루고 있고, 그 내용과 오늘날의 전승 상태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표에서 보듯 오늘날까지 완전한 형태로 전해지는 것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단 두 편뿐이며, 나머지 여섯 편은 후대 저술가들의 요약과 인용을 통해서만 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사실은 영화 감상에서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우리가 흔히 ‘트로이 신화’라고 부를 때 떠올리는 장면들인 파리스의 심판, 트로이 목마, 아킬레우스의 죽음은 정작 《일리아스》에는 나오지 않는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 10년째 되는 해, 약 51일간 벌어진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헥토르의 죽음까지만을 다루고 끝난다. 트로이 목마도, 트로이의 함락도, 심지어 아킬레우스의 죽음조차 《일리아스》에는 나오지 않는다. 즉, 2004년 영화 《트로이》나 넷플릭스 드라마 《트로이: 왕국의 몰락》이 ‘트로이 목마’까지 온전히 그려낼 수 있는 것은, 애초에 이들이 《일리아스》 하나가 아니라 서사시권 전체, 혹은 후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나 그리스 비극작가들의 저작까지 종합해 재구성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원작과 ‘다르다’는 비판은 이 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애초에 하나의 고정된 ‘원작’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구절이 새겨진 파피루스 조각, 기원전 285~250년경. 사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 제우스의 법 크세니아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는 단순한 최고 권력자가 아니라 ‘질서와 정의의 최종 보증인’으로 기능한다. 이때 제우스가 관장하는 대표적인 법이 바로 ‘크세니아(xenia)’, 즉 손님 환대의 법이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여행자와 이방인을 환대하는 것은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신성한 의무였다. 낯선 땅을 떠도는 나그네가 실은 변장한 신일 수도 있다는 믿음, 그리고 항해와 교역에 의존하던 지중해 세계에서 손님 환대가 곧 생존의 조건이었다는 현실적 이유가 결합된 결과다. 제우스는 ‘크세니오스(Xenios)’, 즉 ‘손님을 지키는 자’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이 법의 수호자 역할을 맡는다.
루벤스의 <필레몬과 바프키데스의 집에 있는 제우스와 메르쿠리우스> (1630-33)
마을의 환대 관습을 시험하는 제우스 와 메르쿠리우스는 필레몬 과 바프키데스 에게만 환영받았고, 그들은 보상을 받은 반면 이웃들은 벌을 받았다
트로이 전쟁 자체가 바로 이 크세니아의 파괴에서 비롯된다. 파리스는 메넬라오스의 손님으로 스파르타에 초대받았음에도 그의 아내를 유혹해 데리고 달아났다. 이는 환대의 규범을 정면으로 위반한 개인적인 범죄였다. 《일리아스》와 이후의 문학적 전통 전반에서 트로이의 몰락은 단순한 정복 전쟁의 결과가 아니라, 파리스가 저지른 크세니아 위반에 대한 신적 응징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한편, 놀란 감독은 트로이 목마를 이용한 행위가 크세니아를 집단적으로 위반한 것으로 보고 이야기를 전개한다.
《오디세이아》에서는 오디세우스가 방문하는 곳마다 환대의 문제가 반복해서 제기된다.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가 손님으로 찾아온 오디세우스 일행을 잡아먹으려 한 것은 크세니아의 가장 극단적인 위반이며, 반대로 파이아케스인들이 표류한 오디세우스를 환대하고 배와 선물을 마련해 고향으로 돌려보내는 장면은 이 법이 지켜졌을 때 어떤 보상이 따르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타카에서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이 오디세우스의 집에 눌러앉아 재산을 탕진하는 것 역시 손님의 권리를 넘어선 환대의 착취로 그려지며, 오디세우스의 복수 뿐만 아니라 포세이돈의 응징 역시 이 위반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 그려진다.
이러한 ‘신의 법-위반-응징’이라는 구조는 그리스 비극의 핵심이기도 한 히브리스(hybris, 오만)와 네메시스(nemesis, 응보) 개념과 맞닿아 있다. 인간이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는 행위를 저지르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른다는 이 세계관은, 이후 영화들이 신화를 재해석할 때 신들을 완전히 배제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남아 있는 서사의 뼈대가 된다. 예컨대 2004년 영화 《트로이》는 신들을 스크린에서 거의 지워버리지만, 그럼에도 파리스의 이기적 선택이 결국 트로이 전체를 파멸로 이끈다는 인과율은 그대로 유지된다.
3. 키프리아부터 텔레고니아까지
《키프리아》(전 11권으로 추정)는 서사시권의 가장 앞자리를 차지한다. 대지가 인간의 과잉 인구로 신음하자 제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통해 인류를 솎아내기로 결심했다는 우주론적 발단에서 시작해,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과 파리스의 심판, 헬레네의 납치, 그리스 연합군의 결성, 그리고 아울리스 항에서 순풍을 얻기 위해 아가멤논이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 제물로 바치는 사건까지를 다룬다. 이 작품은 훗날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의 직접적인 원천이 되기도 했다.
《일리아스》 다음에 놓이는 《아이티오피스》(전 5권)는 헥토르의 장례식 이후, 그리스를 도우러 온 아마존의 여왕 펜테실레이아가 아킬레우스에게 죽임을 당하는 장면, 그리고 에티오피아의 왕이자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아들인 멤논이 참전했다가 역시 아킬레우스에게 목숨을 잃는 장면을 그린다. 그리고 마침내 아킬레우스 자신도 파리스가 쏜 화살(아폴론이 그 화살을 인도했다고 전해진다)에 발뒤꿈치를 맞아 전사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킬레스건’이라는 표현의 근원이 되는 이 유명한 죽음의 장면이 정작 《일리아스》가 아니라 이 소실된 작품에 담겨 있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소일리아스》(전 4권)는 아킬레우스가 남긴 무구를 둘러싸고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가 벌이는 다툼, 그 경쟁에서 패배한 아이아스가 수치심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 그리고 예언자 헬레노스(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이자 트로이 3명의 예언자 중 한 명이다)의 포로 신문을 통해 트로이가 함락되려면 필요하다고 알려진 세 가지 조건(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의 참전, 헤라클레스의 활, 트로이의 수호신상 팔라디온의 탈취)이 하나씩 충족되는 과정을 그린다. 특히 목마 계략이 처음 착안되는 대목이 바로 이 작품에 속한다.
뒤이은 《일리우 페르시스》(전 2권)는 트로이인들이 그리스군의 위장 철수에 속아 목마를 성 안으로 들이는 장면, 밤사이 목마 속 그리스 병사들이 성문을 열어 도시를 함락시키는 장면, 그리고 프리아모스 왕의 죽음과 트로이 왕가 여인들의 비참한 운명(카산드라의 겁탈, 안드로마케의 노예화, 아스티아낙스의 살해)까지를 그린다. 다만 이 궤멸 속에서도 유일하게 살아남아 이야기를 이어가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트로이의 왕족 아이네아스다. 도시가 불타는 와중에 그는 늙은 아버지 안키세스를 등에 업고 어린 아들의 손을 잡은 채 트로이를 빠져나가는데, 이 탈출 장면은 이후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가《아이네이스》에서 완전히 새로운 서사시로 확장하게 될 씨앗이 된다.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속에서 아이네아스는 오랜 방랑 끝에 이탈리아 반도에 정착하고, 그 후손이 훗날 로마를 건국한다는 설정으로 이어진다. 즉 그리스인들에게 트로이의 함락이 곧 이야기의 끝이었다면, 로마인들에게는 바로 그 함락이 자신들의 기원 신화가 시작되는 지점이었던 셈이다.
《노스토이》(전 5권)는 오디세우스를 제외한 그리스 영웅들의 귀향길을 다룬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비극이다. 그는 트로이에서 개선했지만 고향 미케네에서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토스의 손에 살해당한다.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원한은 아가멤논이 아울리스에서 딸 이피게네이아를 희생시킨 데서 비롯된 것으로, 서사시권 앞머리(《키프리아》)의 사건이 맨 뒤(《노스토이》)에서 비극적으로 회수되는 정교한 순환 구조를 보여준다. 이 사건은 훗날 아이스킬로스의 3부작 비극 《오레스테이아》의 근간이 된다.
마지막으로 서사시권의 대미를 장식하는 《텔레고니아》(전 2권)는 《오디세이아》 이후의 이야기, 즉 오디세우스가 키르케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텔레고노스가 아버지를 찾아 이타카에 왔다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싸우던 끝에 실수로 친아버지를 죽이고 마는 결말을 담고 있다.
4.《일리아스》 개요
《일리아스》4)는 총 24권, 약 1만 5천 행에 달하는 서사시이다. 그 첫 행은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이고, 마지막 행은 “이렇게 그들은 말을 길들이는 헥토르의 장례를 치렀다”로 끝난다. 이 작품의 진짜 주제는 ‘트로이 전쟁’이 아니라 ‘아킬레우스의 분노’이다.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아킬레우스에게서 전리품으로 얻은 여인 브리세이스를 빼앗자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전투를 거부하고 막사에 틀어박히며, 이로 인해 그리스군은 궁지에 몰린다. 아킬레우스의 절친한 벗 파트로클로스가 그의 갑옷을 빌려 입고 대신 출전했다가 트로이의 최고 전사 헥토르에게 목숨을 잃자,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아가멤논이 아니라 헥토르를 향한 복수심으로 전환된다. 아킬레우스는 다시 전장에 나가 헥토르를 죽이고 그 시신을 전차에 매달아 끌고 다니는 잔혹한 복수를 행하지만, 마지막 24권에서 트로이의 노왕 프리아모스가 야음을 틈타 홀로 아킬레우스의 막사를 찾아가 아들의 시신을 돌려달라 애원하는 장면에서 두 사람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인간적 연민을 나눈다. 서사시는 헥토르의 장례식으로 조용히 막을 내린다.
《일리아스》가 문학사적으로 위대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는, 이것이 단순한 전쟁 찬가나 영웅담이 아니라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 존재의 유한함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와 트로이 양측 모두에게 인간적 존엄과 비극성을 동등하게 부여하는 시선, 신들의 변덕과 인간의 운명 사이에서 벌어지는 긴장, 그리고 “영광스러운 죽음이냐 오래 사는 무명의 삶이냐”라는 아킬레우스의 근원적 딜레마는 이후 3천 년에 걸쳐 서구 문학과 예술의 원형으로 기능해왔다.
4) 일리아스는 그리스어로 ‘일리온에 관한 노래’라는 뜻인데, ‘일리온’ 또는 ‘일리오스’는 트로이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5.《오디세이아》 개요
《오디세이아》5) 역시 24권으로 구성되며, 《일리아스》와는 전혀 다른 서사 전략을 취한다. 이 작품은 트로이 전쟁이 끝난 지 10년이 지난 시점에 오디세우스가 이미 여신 칼립소의 섬에 7년째 붙잡혀 있는 상태에서 시작한다. 사건의 순서를 시간순으로 배열하지 않고, 신들의 회의(특히 오디세우스의 수호신 아테나가 제우스에게 그의 귀향을 청원하는 장면)로 문을 연 뒤,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의 소식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1~4권)를 먼저 배치하고, 그다음 오디세우스 자신이 파이아케스인들의 궁정에서 자신이 겪은 기이한 모험들(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 마녀 키르케, 세이렌의 노래, 스킬라와 카립디스, 태양신의 소 떼, 저승 방문 등)을 회상 형식으로 직접 들려주게 한다(9~12권).
이후 오디세우스가 마침내 거지로 변장해 홀로 이타카에 잠입하고, 20년 가까이 그를 기다려온 아내 페넬로페와 재회하기 전에 먼저 집을 점령한 108명의 구혼자들을 활 시합이라는 계략을 통해 몰살시키는 것으로 절정에 이른다(13~24권).
《오디세이아》의 핵심 주제는 ‘노스토스(nostos)’, 즉 귀향이다. 이는 단순히 지리적으로 집에 돌아간다는 뜻을 넘어, 전쟁으로 파괴된 자아와 가정과 질서를 회복한다는 훨씬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오디세우스가 겪는 모든 시련은 그가 얼마나 지략이 뛰어난 인물인지를 증명하는 동시에, 정체성을 감추고 시험받고 인내하는 긴 과정을 통해 비로소 ‘집으로 돌아갈 자격’을 얻는 성장담의 구조를 취한다. 아내 페넬로페 역시 단순히 기다리는 수동적 인물이 아니라 낮에 짠 천을 밤마다 몰래 풀어내며 구혼자들을 3년간 속여 넘기는 지략가로 그려지며, 이는 종종 오디세우스의 ‘지략’에 짝을 이루는 여성적 지혜로 해석된다. 《일리아스》가 전장이라는 공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영웅적 분노와 죽음을 다룬다면, 《오디세이아》는 바다라는 미지의 공간을 통과해 마침내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으로 회귀하는 여정을 다룬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상호 보완적이면서도 근본적으로 대조적인 세계관을 보여준다.
5) ‘일리아스’가 트로이라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라면,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투를 이끈 오디세우스에 대한 이야기이다.
6. 오디세우스는 왜 ‘몰래’ 돌아왔나?
오디세우스가 20년 만에 고향 땅을 밟고도 곧장 왕궁으로 걸어 들어가 “내가 돌아왔다”고 당당히 선언하지 않는 것은, 이 서사시에서 의외로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왜 거지로 변장한 채 자신의 궁을 몰래 정탐해야 했을까? 원작은 이 위장을 두 개의 명시적인 장치(하데스에서 만난 아가멤논의 경고와 아테나의 실행적 조언)를 통해 직접 설명하며, 그 위에 부하 전원의 상실과 크세니아 위반이라는 두 가지 배경적 무게가 더해진다.
하데스에서 아가멤논의 경고는 원작이 제시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오디세이아》 11권에서 저승을 방문한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에서 개선한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혼백을 만난다. 아가멤논은 자신이 정문으로 당당히 귀향했다가 잔치 자리에서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토스에게 살해당한 사연을 들려준다. 그러고는 오디세우스에게 “귀향할 때는 드러내놓고 오지 말고 몰래 오라”고, 그리고 “이제 여자는 전적으로 믿을 수 없다”고 경고한다(다만 페넬로페만큼은 클리타임네스트라와 달리 신중하고 사려 깊은 여인이니 예외로 봐도 좋다는 단서를 단다). 이 장면은 단순한 일화가 아니라 서사시 후반부 전체의 설계도에 가깝다. 오디세우스가 이후 정체를 숨기고, 거짓 신원의 이야기를 지어내고, 페넬로페와 텔레마코스와 하인들의 충성심을 하나하나 시험하는 모든 행동의 청사진이 바로 죽은 아가멤논의 이 조언에서 나온다.
아테나의 실행적 조언은 아가멤논의 경고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역할을 한다. 13권에서 이타케 해안에 오디세우스를 내려준 아테나는 그의 피부를 시들게 하고 머리를 벗겨지게 하며 누더기를 입혀 그를 늙은 거지의 몰골로 바꾸어놓는다. 그녀가 내세우는 이유는 실질적이다. 궁에는 백여 명이 넘는 구혼자들이 자리 잡고 있으니, 홀로 돌아온 오디세우스가 정면으로 정체를 밝히는 순간 곧바로 죽임을 당할 것이 뻔하다는 것이다. 아테나는 먼저 상황을 파악하고 텔레마코스,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 소치기 필로이티오스 같은 아군을 규합할 시간을 벌라고 조언한다. 즉 아가멤논의 경고가 ‘왜 숨어야 하는가’에 대한 심리적·서사적 근거를 제공한다면, 아테나의 조언은 ‘어떻게 숨을 것인가’에 대한 실행 계획을 제공하는 셈이다.
여기에 두 가지 배경적 요인이 더 있다. 하나는 앞서 살펴본 대로, 그가 이타케를 떠날 때 데려갔던 배 12척과 수백 명의 동료를 단 한 명도 데려오지 못하고 홀로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왕이 나라의 청년들을 이끌고 나갔다가 배도 전리품도 부하도 전부 잃고 거지꼴로 혼자 돌아온다는 것은 그 자체로 떳떳하게 정문으로 걸어 들어가기 어려운 정치적 부담이다. 다만 원작이 이 책임을 다루는 방식은 흥미롭다. 《오디세이아》는 첫머리에서부터 “그는 부하들을 구하려 애썼지만 그러지 못했으니, 그들은 스스로의 어리석음으로 파멸했다. 태양신의 소 떼를 잡아먹은 것은 그들 자신이었다”고 미리 못박아, 부하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오디세우스 본인이 아니라 부하들의 무모함 쪽으로 돌려놓는다. 다른 하나는 크세니아 위반(트로이 목마라는 기만술로 도시를 함락시키고 대량 학살을 저지른 일)인데, 원작의 오디세우스는 오히려 이 계략의 성공을 자랑스러워하는 인물에 가까워, 이것이 위장의 명시적인 동기로 서술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영화는 이를 다른 시각으로 다루기도 한다. 특히 놀란 감독의 영화는 더욱 그렇다.
1954년 《율리시즈》는 저승 방문 장면 자체는 유지한다. 원작과는 달리 키르케가 저승의 문을 열어 오디세우스를 트로이에서 전사한 옛 전우들, 아이아스와 아킬레우스, 그리고 아가멤논의 혼백과 마주하게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결정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아가멤논이 아니라 최근 세상을 떠난 어머니 안티클레이아다. 그녀는 아가멤논의 경고(여자를 믿지 말라) 대신 정반대의 소식, 즉 페넬로페의 정절과 텔레마코스의 애정을 전하며 오디세우스를 키르케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아가멤논이라는 신화적 인물은 남아 있지만, 그의 경고가 실어 나르던 ‘여자는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의 메시지는 삭제되고, 오히려 신뢰를 확인하는 장면으로 뒤바뀐 것이다. 궁으로의 잠입 자체는 원작처럼 아테나의 뜻에 따라 변장을 하였지만, 부하들을 모두 잃은 데 대한 죄책감은 두드러지게 다뤄지지 않고 전쟁에서 돌아온 참전 군인의 심리적 방황이라는 좀 더 보편적인 정서로 완화되어 있다.
2024년 《더 리턴》은 이 지점에서 가장 급진적인 길을 택한다. 이 영화는 오디세우스가 이타케에 상륙한 이후만을 다루므로, 하데스 방문 자체가 통째로 빠져 있다(아가멤논의 경고도, 아테나의 실행 계획도 영화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오디세우스의 위장은 어떤 신이나 죽은 자의 조언이 아니라, 20년의 전쟁과 방랑이 실제로 남겨준 몰골 그 자체였다. 감독 파솔리니는 신을 걷어냄으로써 부하들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 다른 누구도 아닌 오디세우스 자신에게 온전히 돌아가도록 의도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 속 페넬로페는 거지로 위장한 그에게 어째서 그렇게 많은 병사들이 돌아오지 못했느냐고 직접 캐묻고, 나아가 그가 트로이에서 여자들과 아이들을 학살하는 일까지 추궁한다. 원작에서 아가멤논의 유령이 대신 들려주던 경고를, 이 영화에서는 살아있는 아내 페넬로페가 직접 캐묻는 형태로 바꾸어놓은 셈이다.
2026년 놀란의 《오디세이》는 세 영화 중 원작의 하데스 장치를 가장 직접적으로 계승하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죄책감 서사에 맞게 재구성한다. 오디세우스는 저승에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 자신이 미끼로 희생시킨 전우 시논의 망령, 그리고 아가멤논의 망령을 차례로 만난다. 아가멤논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살해당한 자신의 최후를 알려주는데, 이 영화에서 그가 건네는 구체적인 조언은 “집에 돌아가면 정문으로 들어가지 말고 뒷문으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오디세우스는 실제로 이 조언을 따르듯, 늙은 거지가 아니라 ‘시논’이라는 죽은 전우의 이름을 자신의 가짜 정체로 빌려 궁에 들어간다. 연회 자리에서 그는 여전히 변장한 채로 페넬로페에게 크세니아를 어긴 일, 아테나의 여사제를 죽이고 신상을 훼손한 일, 청동기 문명 붕괴의 발단이 된 일에 대한 죄책감을 고백한다. 부하들이 몰살당하는 장면에서는 “이것이 트로이를 불태운 대가인가”라고 자문하는데, 이는 원작에서 “그들 자신의 어리석음” 탓으로 돌렸던 바로 그 죽음을 오디세우스 자신의 책임으로 정반대로 되돌려놓는 대목이다.
결국 원작이 아가멤논의 경고와 아테나의 실행이라는 두 장치로 명료하게 설명하던 위장 귀향은, 세 편의 영화를 거치며 서로 다른 곳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간다. 1954년 《율리시스》는 아가멤논이라는 인물은 남기되 그의 메시지를 신뢰의 확인으로 뒤바꾸고, 부하 상실의 무게는 참전 군인의 보편적 트라우마로 완화한다. 2024년 《더 리턴》은 신화적 장치 자체를 걷어내고 위장을 있는 그대로의 인간적 몰골로 되돌리며, 페넬로페의 직접적인 추궁이 아가멤논의 경고를 대신한다. 《오디세이》는 아가멤논의 경고를 가장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그 내용을 ‘여자를 믿지 말라’에서 ‘죄를 숨기고 조심스레 들어가라’로 바꾸어, 부하들을 잃고 문명을 파괴한 책임을 오디세우스 자신에게 고스란히 되돌려놓는다. 같은 거지 옷을 입고 있어도, 21세기의 두 오디세우스는 더 이상 원작처럼 “그들은 스스로의 어리석음으로 죽었다”고 말할 수 없는 인물로 되었다.
7. 저주와 예언 – 신화 전체를 잇는 사슬
트로이 신화 전체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사슬은 저주와 예언이다. 파리스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시작해 오디세우스가 이타케에 돌아온 뒤까지, 서사시권 곳곳에 신과 인간이 내뱉는 경고와 저주가 끊임없이 등장하며 서로 인과의 사슬로 엮여 있다. 이 가운데 이 글에서 다룬 네 편의 영화6)(《트로이》·《트로이: 왕국의 몰락》·《율리시즈》)·《오디세이》)가 실제로 어느 대목을 화면에 옮겼는지를 함께 표시하면, 영화가 신화의 ‘사건’은 즐겨 재현하면서도 그 사건들을 잇는 ‘저주와 예언’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룬 것을 알 수 있다.
6) 2024년 《더 리턴》은 오디세우스가 이타케 섬으로 돌아온 시점부터 시작되므로 ‘저주와 예언’을 다룰 필요가 없다.
# 1. 파리스의 탄생 예언 : 키프리아
헤카베 왕비는 파리스를 임신했을 때 불타는 횃불을 낳는 꿈을 꾸었고, 예언자는 이 아이가 장차 트로이를 멸망시킬 것이라 예언했다. 이 때문에 갓 태어난 파리스는 이데산에 버려지지만 목동에게 발견되어 살아남는다. 트로이의 몰락은 이미 파리스의 탄생 순간부터 예언되어 있었던 셈이다. 《트로이: 왕국의 몰락》은 파리스가 ‘잃어버린 트로이의 왕자’였다는 출생의 비밀을 초반 서사의 축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이 예언의 그림자를 간접적으로 화면에 들여왔다고 볼 수 있다. 반면 2004년 《트로이》는 전쟁이 임박한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기 때문에 이 대목을 다루지 않는다.
# 2. 카산드라의 무시당하는 예언들 :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프리아모스와 헤카베의 딸 카산드라는 아폴론에게 예언 능력을 받았지만, 그의 구애를 거절한 대가로 “항상 진실을 예언하되 아무도 믿지 않는” 저주를 함께 받는다. 그녀는 파리스의 스파르타행이 파멸을 부를 것이라 경고했고, 트로이 목마가 들어올 때도 그 안에 그리스 병사들이 숨어 있다고 절규하지만 역시 아무도 듣지 않는다7). 《트로이: 왕국의 몰락》은 카산드라가 갓 태어난 파리스를 보고 불길한 환상에 사로잡히는 장면으로 시작할 만큼 이 인물의 예언자적 면모를 적극적으로 다룬다. 《율리시즈》에도 카산드라라는 배역이 존재하지만 비중은 크지 않고, 2004년 《트로이》는 신화적 예언 자체를 배제하는 전략을 택했으므로 이 대목이 등장하지 않는다.
7) 카산드라의 예언이 “진실이되 누구도 믿지 않는” 저주로 완성되는 것은 호메로스가 아니라 후대 비극 전통에서다. 『일리아스』에서 카산드라는 프리아모스의 딸 중 가장 아름다운 인물로 짧게 언급될 뿐, 예언 능력이나 저주에 대한 서술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캐릭터의 오늘날 가장 널리 알려진 설정( 아폴론에게 예언 능력을 받은 뒤 구애를 거절해 “능력은 유지되나 신뢰는 박탈되는” 저주를 받았다는 서사)이 문학사에 처음 완결된 형태로 등장하는 곳은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 중 첫 편인『아가멤논』이다. 카산드라 본인이 미케네에서 죽음을 예감하며 이 저주의 내력을 직접 토로하는 장면(대략 1200행대)이다. 이후 아폴로도로스의 『비블리오테케』(3.12.5)는 여기에 더해, 카산드라와 쌍둥이 오빠 헬레노스가 어린 시절 아폴론 신전에서 신성한 뱀에게 귀를 핥여 예언 능력을 얻었다는 민담적 기원담을 결합해 오늘날 통용되는 표준 서사로 정리되었다.
# 3. 라오콘의 경고와 죽음 :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포세이돈(혹은 아폴론)의 사제 라오콘은 목마를 성 안으로 들이는 것에 반대하며 경고하지만, 직후 바다뱀 두 마리에게 그와 두 아들이 휘감겨 죽임을 당한다. 트로이인들은 이를 “라오콘이 신성한 목마에 창을 던졌기 때문에 벌을 받았다”고 오독하며 오히려 목마를 서둘러 성 안으로 들인다8). 진짜 경고가 정반대로 해석되어 파멸을 앞당기는 이 아이러니는, 신을 완전히 배제한 2004년 《트로이》는 물론, 이 글에서 다룬 네 작품 어디에서도 뚜렷하게 재현되지 않는다.
8) 이 내용은 현재는 소실된 ‘엘리우 페르시스’에서 라오콘의 죽임이 목마와 관련된 불길한 징조로 해석된다고 프로클로스의 요약본에 의해 전해진다. 그러나 창을 들어 목마를 찌르는 행위, 테네도스 섬에서 헤엄쳐 온 두 마리의 큰 뱀에게 두 아들과 함께 감겨 죽는 장면, 그리고 이 죽음이 트로이인들로 하여금 목마를 ‘신성한 것’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되는 서사 전체는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2권(40-56행, 199-233행)에서 가장 상세하 나타난다.
# 4. 헬레노스의 예언 : 소일리아스
트로이의 왕자이자 예언자 헬레노스(카산드라와 쌍둥이 예언자 남매)는 그리스군에게 사로잡힌 뒤, 트로이가 함락되려면 네오프톨레모스의 참전·헤라클레스의 활·팔라디온의 탈취라는 세 조건이 필요하다고 밝힌다. 그리스군에게 유리한 이 예언은 상대적으로 지엽적인 삽화로 취급되어, 네 작품 모두에서 다뤄지지 않는다.
# 5. 소(小)아이아스의 신성모독과 아테나의 저주 : 일리우 페르시스
함락의 밤, 카산드라는 아테나 신전으로 피신하지만 ‘작은 아이아스’가 그녀를 강제로 끌어내고 겁탈한다. 이 신성모독에 분노한 아테나(전승에 따라 포세이돈도 가세)는 개선하는 그리스 함대 전체에 재앙을 내리기로 결심하며9), 이것이 《노스토이》에서 그려지는 그리스 영웅들의 참혹한 귀향 실패담의 근본 원인이 된다. 이 사건은 트로이 함락 ‘이후’의 이야기이자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삽화이기에, 네 작품 모두 직접 다루지 않는다. 원작에서는 메넬라우스가 소 아이아스의 죽음을 전하면서 이를 소 아이아스의 신성모독에 대한 징벌이라고 하면서 간접적으로 언급할 뿐이다. 놀란 감독은 원작이 암시한 신성모독을 아테네 신전에서 여사제를 참수하고 아테네 상의 목을 칼로 잘라내는 장면으로 시각화하였다.
9) ‘일리우 페르시스’에서 나온다고 하지만 현재는 소실되었고, 온전한 형태로는 후대 문헌(아폴로도로스, 퀸투스 스미르나이우스)을 통해서만 재구성 가능하다.
놀란의 영화 The Odyssey(2026) 중 아테네 상
# 6. 나우플리오스의 복수 : 노스토이
억울하게 처형당한 팔라메데스의 아버지 나우플리오스는 귀향하는 그리스 함대를 파괴하기 위해 에우보이아 해안에 거짓 봉화를 피워 배들을 암초로 유인한다. 저주라기보다 인간의 복수극에 가까운 이 사건 역시 네 작품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 7. 카산드라의 마지막 예언 : 노스토이
아가멤논의 전리품이 되어 미케네로 끌려가던 카산드라는 자신과 아가멤논 모두 그곳에서 살해당하리라는 것을 예언하고, 이번에도 아무도 믿지 않는 가운데 예언은 그대로 실현된다. 이 역시 《노스토이》의 영역이라 이 글에서 다룬 네 작품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 8. 폴리페모스의 저주 :《오디세이아》의 실질적 발단
오디세우스가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의 눈을 멀게 하고 자신의 진짜 이름을 밝히며 도망치자, 폴리페모스는 아버지 포세이돈에게 오디세우스가 늦게, 동료를 모두 잃은 채, 남의 배를 얻어 타고, 집안이 풍비박산 난 상태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10). 이 저주는 사실상 《오디세이아》 전체 플롯의 청사진 역할을 하는 만큼, 1954년 《율리시즈》는 폴리페모스와의 대결을 영화의 대표적인 스펙터클 장면으로 삼았고, 2026년 《오디세이》 역시 이 저주가 포세이돈의 분노와 오디세우스의 죄책감이라는 영화 전체의 정서적 동력으로 작동하도록 그려낸다.
10) 오디세우스가 폴리페모스 동굴에 찾아간 것은 트로이를 출발한 후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기원전 7세기 중반, 폴리페무스의 눈을 멀게 한 장면이 새겨진 점토 크라테르, 아르고스 고고학 박물관 소장
# 9. 테이레시아스의 예언
오디세우스가 저승에서 만나는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태양신의 소 떼를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 결국 늦게 홀로 돌아가리라는 것, 귀향 후에도 내륙 깊숙이 들어가 포세이돈에게 제물을 바쳐야 진정한 평화를 얻으리라는 것을 예고한다. 이 저승 방문 장면 역시 《율리시즈》와 《오디세이》 모두에 등장하는데, 두 영화 모두 저승 장면 자체는 포함하되 이후의 ‘노를 짊어지고 걷는’ 예언 같은 세부까지는 옮기지 않았다. 오히려 2024년 《더 리턴》에선 텔레마쿠스가 서쪽 바다를 향해 떠나고, 2026년 《오디세이》에선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가 서쪽 바다를 향해 떠나는 장면으로 끝난다.
# 10. 헤카베·폴리메스토르의 저주
트로이 함락 후 노예가 된 헤카베(트로이의 여왕)는 막내아들을 살해한 트라키아 왕 폴리메스토르의 눈을 멀게 하며 복수하고, 죽어가는 폴리메스토르는 헤카베가 훗날 개로 변해 죽으리라는 것과 카산드라·아가멤논의 죽음을 저주하듯 예언한다. 이는 비극 무대에 고유한 후일담(기원전 424년경 에우리피데스의 ‘헤카베’)이라, 이 글에서 다룬 네 편의 영상물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네 편의 영화는 저주와 예언이 ‘실현되는’ 극적인 사건(목마에 의한 트로이의 함락, 폴리페모스와의 대결, 저승 방문)은 적극적으로 재현하면서도, 그 사건들을 애초에 예정된 운명으로 묶어주는 카산드라·라오콘·헬레노스·나우플리오스 같은 예언자와 저주의 매개자들은 대부분 생략하거나 축소했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예언과 저주라는 장치는 사건의 결말을 미리 관객에게 알려줌으로써 극적 긴장을 오히려 떨어뜨릴 위험이 있고, 특히 신들의 직접 개입을 최소화하려 한 2004년 《트로이》나 인간 중심의 심리극을 지향한 1954년 《율리시즈》처럼 ’탈신화화’를 지향하는 작품일수록 이런 장치를 덜어내는 경향을 보인다. 결국 저주와 예언은 문학 텍스트 안에서는 신화 전체를 하나의 운명론적 구조로 엮어주는 핵심 장치이지만, 스크린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는 가장 먼저 잘려나가는 부분 중 하나인 셈이다.
Ⅲ. 작가의 시선
1. 오디세우스의 정체성 : 번역과 해석의 스펙트럼
영화를 살펴보기 전에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오디세우스라는 인물 자체가 애초에 문학사 안에서 하나로 고정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호메로스는 그를 ‘폴리트로포스(polytropos)’라는 형용사로 소개하는데, 이 단어는 “많은 방식을 지닌”,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다면적인”등으로 번역이 갈릴 만큼 처음부터 다의적이다. 그리고 이 번역어의 선택은 단순한 어휘 문제가 아니라, 오디세우스를 영웅적 지략가로 볼지, 꾀로 속임수를 쓰는 인물로 볼지, 도덕적으로 흠결 있는 복잡한 인간으로 볼지에 대한 해석적 태도를 그대로 드러낸다. 리치몬드 래티모어(1965)는 ‘많은 길을 아는 자’로 비교적 중립적으로 옮겼고, 로버트 페이글스(1996)는 ‘우여곡절의 사나이’에 가깝게 번역해 능동적이고 영웅적인 지략가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반면 2017년 에밀리 윌슨은 이를 ‘복잡한 사람’으로 옮겨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그녀의 번역은 오디세우스를 도덕적으로 완결된 영웅이 아니라 노예를 소유하고 여성에게 가혹하기도 한, 결함을 지닌 인간으로 읽어내려는 시도로 평가받았다.
이러한 해석의 스펙트럼은 스크린 위에서도 그대로 재연된다. 1954년 《율리시즈》의 커크 더글라스가 쾌활하고 모험심 넘치는 액션 영웅형 오디세우스를 연기했다면, 2026년 놀란의 《오디세이》는 맷 데이먼을 통해 신화적 영웅이 아니라 신들의 질서에 저항하며 갈등하는 인간적인 오디세우스를 그려내려 한다. 그리고 2024년 《더 리턴》은 이 스펙트럼을 한 걸음 더 밀고 나간다. 랄프 파인스의 오디세우스는 놀란의 오디세우스처럼 죄의식에 시달리면서도 여전히 스스로 결단하는 주체적 인물과 달리, 자신이 왕좌와 아내를 가질 자격이 있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 채 복수라는 결정적 행동마저 페넬로페와 텔레마코스에게 떠밀리듯 실행하는 영웅적 행위 주체성을 거의 상실한 인물로 그려진다. 즉 번역가들 사이의 논쟁(영웅으로 읽을 것인가, 복잡한 인간으로 읽을 것인가)이 감독들 사이에서도 똑같은 형태로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해석의 진폭은 비단 20~21세기 번역과 영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디세우스는 이미 중세와 근대 문학에서도 전혀 상반된 두 얼굴로 재해석된 바 있다.
# 1.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평범한 인간의 상징으로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1922)는 오디세우스의 라틴어 이름을 제목으로 삼았지만, 정작 무대는 트로이도 지중해도 아닌 1904년 6월 16일 하루 동안의 더블린이다.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은 광고 외판원으로, 오디세우스에 대응하는 인물이다. 조이스는 오디세우스를 더 이상 초인적 전사나 지략가가 아니라, 하루 동안 도시를 표류하며 사소한 굴욕과 상실, 그리고 작은 친절들을 겪어내는 평범한 현대인의 상징으로 재해석한다. 서사시적 ‘귀향(노스토스)’은 문자 그대로의 지리적 여정이 아니라, 소외와 방황 끝에 결국 집(아내 몰리)으로 돌아오는 정신적·정서적 여정으로 축소되는 동시에 확장된다. 텔레마코스는 청년 예술가 스티븐 디덜러스로, 페넬로페는 아내 몰리 블룸으로 대응되며, 소설 말미의 몰리의 긴 독백은 원작의 정숙한 페넬로페상과는 전혀 다른, 훨씬 육체적이고 솔직한 여성의 목소리로 이 인물을 다시 쓴다. 조이스에게 오디세우스는 더 이상 전쟁 영웅이 아니라, 유대인이자 아웃사이더로서 더블린 사회의 소외를 견뎌내는 관용과 인내의 상징이었다.
# 2. 단테의 《신곡》: 지적 오만의 상징으로
Gustave Doré가 그린 단테의 《신곡》〈지옥편〉 26곡 : 율리시스와 디오메데스의 불타는 영혼 (1832-1883)
반면 단테는 정반대의 시선에서 오디세우스(이탈리아어로 ‘울리세’)를 그린다. 《신곡》 〈지옥편〉 26곡에서 단테는 그를 여덟 번째 원(말레볼제)의 여덟 번째 구덩이, 즉 ‘기만적 조언자들’이 벌 받는 곳에 배치한다. 트로이 목마 계략처럼 그의 지략이 본질적으로 ‘기만’이었다는 점이 단테에게는 죄악으로 간주된 것이다11). 또한, 단테는 원작에는 없는 완전히 새로운 에피소드를 창작해 넣었다. 베르길리우스가 오디세우스에게 어떻게 죽었느냐고 묻자, 오디세우스는 “1년 넘게 나를 잡아두었던 키르케에게서 벗어나 출발하였을 때, 자식에 대한 애정도, 늙은 아버지에 대한 효성도, 페넬로페를 기쁘게 해주었어야 하는 당연한 사랑도, 세상과 인간의 모든 악덕과 가치에 대해 완전히 알고 싶은 내 가슴속의 열망을 억누를 수는 없었노라. 그리하여 나는 단 한 척의 배에다 나를 버리지 않은 몇몇 동료와 함께 광활하고 깊은 바다를 향해 떠났노라. 스페인까지, 모로코까지, 이쪽저쪽의 해안을 보았고, 사르데냐 섬을 비롯하여 그 바다가 직시하는 섬들을 둘러보았지. 나와 동료들이 늙고 더디어졌을 무렵, 인간이 더 이상 넘어가지 못하도록 헤라클레스가 경계선 표시를 세워 둔 좁다란 해협에 이르렀으며, 오른쪽으로는 세비야를 버리고, 오른쪽으로는 세우타를 버리고 나아갔지…태양의 뒤를 따라 사람 없는 세상을 경험하고 싶은 욕망을 거부하지 마라. 그대들의 타고난 천성을 생각해 보라. 짐승처럼 살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덕성과 지식을 따르기 위함이었으니…(약 5개월이 지난) 희미하게 보이는 산12)이 나타났는데 그 낮선 땅에서 회오리 바람이 일어나 마침내 바다가 우리 위를 뒤덮었노라”라고 답한다13).
단테가 이 에피소드를 통해 그리는 오디세우스는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지적 오만’(휘브리스)의 상징이다. 인간에게 허락된 지식의 경계를 신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넘어서려 한 무절제한 호기심이, 그의 웅변술과 결합해 자신과 동료 모두를 파멸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오디세우스의 최대 미덕으로 꼽히는 지략과 언변이 단테에게는 오히려 신이 정한 한계를 시험하는 위험한 능력으로 재해석된 셈이다. 이처럼 오디세우스는 영웅, 꾀 많은 책략가, 기만자, 지적 탐구자라는 여러 상반된 얼굴을 오가며 문학사 안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어 왔다.
11) 열린 책들, 김운찬 옮김, ‘신고’ 중 지옥편에서 베르길리우스가 “저 안에는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가 고통받고 있는데, 함께 분노에 거역했듯이 함께 벌받고 있단다”고 하면서 트로이 목마의 계략, 아킬레우스를 스키로스 섬에서 꾀어내 전쟁에 끌어들인 계략, 아테나 신상을 훔친 절도 등 세 가지 죄로 벌을 받는다고 묘사하고 있다. 참고로, ‘일리아스’에서는 디오메데스를 아킬레우스 다음가는 전사로 묘사하지만, 영화에서는《트로이: 왕국의 몰락》에서만 배우 칼 뵈케가 디오메데스로 출연할 뿐이다.
12) 남반구의 바다 한 가운데에 솟아 있다고 믿었던 연옥의 산을 의미한다.
13) 신곡 지옥편에서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대답은 이후 오디세우스의 여정에서 서쪽 확장설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2. 누가, 언제 이야기하는가 — 서술 구조의 비교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다룬 네 개의 텍스트는 ‘누가 언제 그 여정을 이야기하는가’라는 질문에서도 서로 다른 답을 내놓는다. 이는 단순한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겪는 경험’으로 제시하는지 아니면 ‘돌아보는 경험’으로 제시하는지에 따라 서사의 근본적인 성격이 달라진다.
# 오디세이아 원작
원작은 명확한 이중 시점 구조를 취한다. 9~12권에서 오디세우스는 파이아케스인들의 궁정에서 자신이 겪은 모험(키코네스족, 로토파고이족, 폴리페모스, 아이올로스, 라이스트리곤족, 키르케, 하데스, 세이렌, 스킬라와 카립디스, 트리나키아, 칼립소)을 1인칭 과거시제로 직접 회상하며 청중에게 들려준다(Ⅱ-5절). 이 부분은 그러므로 ‘사건’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오디세우스 자신의 진술’로 제시되며,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의 가능성(그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각색해 말하고 있을 가능성)까지 열어두는 효과를 낳는다. 반면 13~24권, 이타케에 도착한 이후는 3인칭 시점의 현재진행형 직접 서술로 전환된다. 오디세우스의 여정 자체는 회고를 통해서만 존재하고, 오직 귀향 이후만 독자가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사건이 되는 셈이다.
# 1954년 《율리시즈》
1954년 《율리시즈》는 이 액자 구조를 폐기하지 않고, 그 작동 방식을 ‘구술’에서 ‘기억’으로 바꾸어놓는다. 오디세우스는 기억을 잃은 채 파이아케스인들의 섬에 표류하고, 그가 겪은 각 에피소드는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한 채 조금씩 되살아나는 플래시백의 형태로 관객에게 제시된다. 청중 앞에서 의식적으로 이야기를 구성해 들려주는 원작의 화자와 달리, 이 영화의 오디세우스는 자기 자신에게조차 낯선 이야기를 수동적으로 되찾아가는 인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회고적 재구성이라는 틀 자체는 유지하되, 화자의 자기 인식과 통제력을 원작보다 훨씬 불안정한 상태로 바꾸어놓은 셈이다. 기억이 완전히 돌아온 뒤, 이타케 도착 이후는 원작처럼 직접 서술로 전환된다.
1954년 영화 율리시즈 (Ulisse)
# 2026년 놀란의 《오디세이》
2026년 놀란의 《오디세이》는 얼핏 액자 구조를 완전히 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무대를 옮겨놓았을 뿐이다. 원작과는 달리 파이아케스인들의 섬(스케리아) 에피소드 자체는 삭제되어 있다. 그러나 그 대신 오디세우스가 칼립소의 섬에 머무는 동안 칼립소에게 자신의 모험담을 들려주는 대화 장면을 통해 여정이 전달된다. 여기에 놀란은 자신의 전작들(《덩케르크》, 《오펜하이머》)에서부터 이어져 온 특유의 비선형 교차편집을 더한다. 스파르타에서 메넬라오스로부터 아버지의 소식을 듣는 텔레마코스의 시점과, 칼립소의 섬에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오디세우스의 시점이 같은 시간대에 나란히 교차되며, 두 대화에서 나오는 정보가 서로 겹치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하면서 이야기가 조립된다. 여기에 더해 오디세우스가 이타케를 떠나기 전, 참전을 결심하던 순간의 회상까지 별도로 삽입되어 있다. 결국 이 영화는 원작의 단순한 ‘회고 대 현재’라는 이분 구조보다 오히려 더 복잡한 다중 시간대 교차 구조를 취하고 있으며, 원작의 액자 장치를 없앤 것이 아니라 놀란 자신의 편집 문법 안으로 흡수해 재배치한 것에 가깝다.
# 2024년 《더 리턴》
2024년 《더 리턴》은 넷 중 가장 급진적인 선택을 한다. 이 영화는 원작 9~12권에 해당하는 여정 자체(폴리페모스, 키르케, 세이렌 등)를 통째로 다루지 않으므로, 회고적 서술이든 플래시백이든 그 여정을 재현하는 장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원작에서 회고담을 통해 전달되던 정보(오디세우스가 무엇을 겪었는가)는 페넬로페가 거지로 위장한 그를 추궁하는 몇 마디 대사로만 암시될 뿐, 시각화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타케에서의 현재진행형 사건만 존재하는, 원작의 13~24권에 해당하는 부분만 남기고 나머지를 통째로 잘라낸, 가장 순수한 형태의 직접 서술 구조다.
네 텍스트를 나란히 놓으면, 회고적 서술(겪은 일을 돌아보기)을 어느 정도까지 유지하느냐를 기준으로 하나의 스펙트럼이 그려진다. 《오디세이》가 청중과 형식을 재배치하면서도 회고 장치를 가장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쪽에 있다면, 《율리시즈》는 그 장치를 기억상실이라는 심리적 장치로 변형해 불안정하게나마 유지하고, 원작은 이 둘의 중간에서 의식적이고 통제된 구술자로서의 오디세우스를 보여준다. 《더 리턴》은 이 스펙트럼의 반대쪽 끝에서, 회고 장치 자체를 아예 지워버리고 오직 ‘지금, 이곳’의 사건만 남겨놓는다. 흥미로운 점은 이 네 가지 선택이 각 텍스트가 앞서 살펴본 다른 주제들(신의 개입 정도, 죄책감의 무게)과도 정확히 같은 방향으로 정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회고적 서술을 유지한다는 것은 결국 오디세우스 자신이 자기 이야기의 화자이자 해석자로 남는다는 뜻이고, 그것을 지워버린다는 것은 그의 과거를 그 자신의 입이 아니라 그를 마주한 타인(페넬로페)의 질문을 통해서만 드러내겠다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Ⅳ. 감독의 시선14)
14) 1968년작 ‘오디세이아’(이탈리아 8부작), 1997년작 ‘오디세우스’(2부작 드라마로 에미상 연출상 수상), 2013년작 ‘오디세우스’(프랑스 12부작 드라마) 등이 있고, 1981년 ‘율리시스 31’(프랑스, 일본 합작 애니메이션으로 우주 서사시로 재해석), 코엔 형제의 2000년작 ‘오 형제여 어디있는가?’(미시시피 탈옥수들의 귀향길로 재해석),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2003년작 ‘콜드 마운틴’(주 드로, 니콜 키드만 주연의 남북 전쟁을 배경으로 탈영병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으로 재해석) 등 다양한 작품들이 많다.
1. 2004년 영화 《트로이》 — 신을 지운 전쟁 서사극
볼프강 페터젠 감독, 데이비드 베니오프 각본의 《트로이》는 브래드 피트(아킬레우스), 에릭 바나(헥토르), 올랜도 블룸(파리스), 다이앤 크루거(헬레네)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을 기용해 2004년 개봉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다. 이 영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신들의 존재를 스크린에서 거의 완전히 제거했다는 점이다. 원작 《일리아스》에서 아테나가 아킬레우스의 팔을 붙잡아 분노를 억제시키고, 아폴론이 파트로클로스를 쓰러뜨리는 데 개입하며, 아프로디테가 파리스를 전장에서 안개로 감싸 구해내는 등 신들은 인간사의 거의 모든 국면에 직접 개입한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신적 존재로 명시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뿐이며, 그녀조차 초자연적 힘을 발휘하는 장면 없이 그저 아들의 운명을 예언하는 중년 여성으로만 그려진다.
이러한 ‘탈신화화’ 전략은 영화가 지향하는 바를 명확히 보여준다. 페터젠은 신화적 트로이 전쟁이 아니라, 청동기 시대의 실제 역사에 근접한 ‘현실적인’ 전쟁 서사극을 만들고자 했다. 대규모 진형을 갖춘 보병전, 해안 상륙전 장면 등에서 이러한 사실주의적 지향이 잘 드러난다. 서사 구조 역시 대폭 압축·재구성되었다. 원작 《일리아스》는 헥토르의 장례식에서 끝나지만, 영화는 트로이 목마를 통한 함락까지 단 몇 주 안팎의 사건으로 응축해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제시한다. 또한 원작에서는 다소 부차적인 인물이었던 브리세이스를 아킬레우스와 진지한 애정 관계를 맺는 인물로 격상시키고, 그녀가 직접 아킬레우스를 살해하는 것으로 각색해 로맨스와 캐릭터의 능동성을 강화했다.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 희생 제의나 헬레네의 납치를 둘러싼 신들의 개입 같은 요소는 통째로 생략되었고, 파리스와 헬레네의 사랑 이야기가 전쟁 전체의 ‘이유’로서 훨씬 더 인간적이고 통속적인 방식으로 제시된다.
비평가들의 반응은 대체로 엇갈렸다. 상업적으로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상당수 평자들은 이 영화가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제작되었으며 원작 《일리아스》에 견주었을 때 서사적 깊이가 부족하고 차이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아킬레우스 역을 맡은 브래드 피트 스스로도 이러한 각색의 한계를 인정한 바 있다. 그는 원래 다른 작품에서 하차하면서 계약상 스튜디오의 다른 프로젝트에 투입돼야 했고, 그렇게 떠밀리듯 이 역할을 맡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후 인터뷰에서 그는 영화의 매 장면이 “여기 영웅이 있다”는 식으로 연출되어 신비로움이 없었다며 상업적 문법에 갇힌 연출을 아쉬워했고, 이 경험을 계기로 이후에는 “질 좋은 이야기에만 투자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말했다. 파리스 역의 올랜도 블룸 역시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거의 기억에서 지워버렸다고 언급하는 등, 주연 배우들 사이에서도 작품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반면 이 영화를 신화적 트로이 전쟁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적인 ‘오리지널 전쟁 영화’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옹호론도 존재했다. 이 시각의 핵심은, 페터젠 감독의 목표가 애초에 호메로스가 신화화하기 이전에 실제로 있었을 법한 청동기 시대의 전쟁을 역사적 실재로서 재현하는 데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신들을 등장시키지 않고 배우들이 신화적 존재가 아닌 믿을 만한 인간으로 연기하도록 한 것은 결함이 아니라 의도된 선택이 된다. 연출력 면에서도 대규모 전투 장면과 아킬레우스·헥토르의 결투 장면은 특히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브래드 피트와 에릭 바나는 이 결투 장면에 스턴트 대역을 쓰지 않고 직접 연기했다고 한다.
결국 《트로이》는 신들을 지움으로써 ‘신화’를 ‘역사 극’에 가깝게 재배치했고, 그 과정에서 크세니아의 위반이라는 신학적 인과율 대신 파리스 개인의 이기심과 아가멤논의 정치적 야심이라는 세속적 인과율로 전쟁의 원인을 재구성했다고 할 수 있다.
2. BBC·넷플릭스 《트로이: 왕국의 몰락》
2018년 BBC와 넷플릭스가 공동 제작한 8부작 미니시리즈 《트로이: 왕국의 몰락》은 같은 신화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크리에이터 데이비드 파르가 이끈 이 시리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촬영되었으며, 파리스(루이스 헌터)와 헬레네(벨라 데인)의 사랑을 서사의 중심축으로 삼는다. 목동으로 자란 파리스가 세 여신의 아름다움을 심판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스파르타로 파견된 그가 원래 목적이었던 헤르미오네와의 혼담 대신 그녀의 어머니이자 스파르타의 왕비인 헬레네와 사랑에 빠지고, 왕비라는 지위에 속박되어 있던 헬레네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그녀와 함께 트로이로 도주한다는 설정으로 재구성했다.
이 드라마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두 가지다. 첫째, 인종과 성적 지향 면에서 매우 다양한 캐스팅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이는 일부에서 “역사적 고증에서 벗어났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신화를 오늘날의 관객이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 있는 보편적 이야기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평가받기도 했다. 둘째, 헬레네와 아프로디테, 아마존 여전사들 등 신화 속 여성 인물들에게 훨씬 더 주체적인 서사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이 작품은 헬레네, 아프로디테, 아마존 여전사와 같은 신화 속 여성 인물들을 오늘날 관객의 기대에 맞게 새롭게 그려내는 방식에 주목하며, 성별과 인종, 정치라는 주제를 통해 트로이 서사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을 어떻게 사려 깊게 다루고 있는지를 조명한다.
평가는 역시 갈렸다. 캐스팅을 둘러싼 논쟁(특히 아킬레우스를 흑인 배우로 캐스팅함)에서도 옹호론이 상당했다. 평론가 지미 파무레와는 다양한 인종을 기용한 캐스팅이야말로 “호메로스가 원했을 법한” 방식이라는 논리로 이를 옹호했고, 대중문화 비평 매체 팝매터스 역시 이 드라마가 신들을 다루는 방식에서 오히려 호메로스적 전통에 놀라울 만큼 충실하다고 평가했다. 2004년 영화가 ‘신화를 걷어내고 역사적 리얼리즘’을 지향했다면, 2018년 드라마는 ‘신화적 요소(신들의 등장, 예언, 초자연적 개입)를 유지하면서도 그 신화 속 인물들을 현대적 가치관으로 재해석’하는 정반대의 전략을 택했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3. 1954년 《율리시즈》 — 페플럼 장르로 압축된 귀향담

마리오 카메리니 감독의 이탈리아 영화 《율리시즈》는 커크 더글라스가 주인공 율리시즈(오디세우스의 라틴어 이름)를, 실바나 망가노가 페넬로페와 키르케 1인 2역을, 앤소니 퀸이 구혼자 안티노오스를 연기한 1954년 작품이다. 이 영화는 1950~60년대에 유행했던 이른바 ‘페플럼(peplum)’ 장르(고대 그리스·로마를 배경으로 한 이탈리아산 스펙터클 모험 영화)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율리시즈》의 가장 큰 제약이자 특징은 러닝타임이다. 100분 남짓한 분량 안에 20년(트로이 전쟁 10년과 귀향 10년)에 걸친 오디세우스의 방대한 여정을 담아내야 했기에, 원작의 상당 부분이 생략되거나 압축될 수밖에 없었다. 원작에서 오디세우스가 파이아케스인들의 궁정에서 회상 형식으로 자신의 모험을 들려주는 복잡한 액자식 구성 대신, 영화는 대체로 시간 순서를 따라가는 단순한 직선적 구성을 취한다. 흥미로운 각색 포인트는 페넬로페와 키르케를 한 배우가 연기하도록 한 캐스팅인데, 이는 ‘순수하고 정숙한 아내’와 ‘유혹적인 마녀’라는 여성상의 두 극단을 한 배우의 몸을 통해 병치시킴으로써,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정숙함과 유혹 사이의 시험으로 상징화하려는 의도로 읽을 수 있다. 커크 더글라스와 앤소니 퀸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영어로 연기하고 나머지 이탈리아 배우들은 이탈리아어로 후시녹음되었다는 제작 방식의 이질성도 이 영화가 할리우드와 유럽 영화 산업이 교차하던 시기의 국제 합작 프로젝트였음을 잘 보여준다.
《율리시즈》는 당대에 상당한 인기를 누렸으며, 이탈리아 박스오피스에서도 흥행에 성공했다. 이후 세대에게도 오랫동안 회자되었는데, 이탈리아 감독 주세페 토르나토레의 명작 《시네마 천국》에서 주인공 소년 토토가 극장에서 이 영화를 관람하는 장면이 등장할 만큼, 전후 이탈리아 대중문화 속에서 상징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다. 신화적 요소(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모스, 마녀 키르케의 변신술, 세이렌 등)를 당대의 특수효과 기술로 시각화하는 데 집중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모험담과 스펙터클을 전면에 내세운 대중오락 영화로서의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4. 2024년 우베르토 파솔리니의 《더 리턴》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의 《더 리턴》은 랄프 파인스가 오디세우스를, 줄리엣 비노쉬가 페넬로페를, 찰리 플러머가 텔레마코스를 연기한 이탈리아·영국·그리스 합작 영화다. 2024년 9월 토론토국제영화제 갈라 부문에서 처음 공개되었고, 같은 해 12월 6일 미국에서 개봉했다.
이 영화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제목 그대로 오디세우스의 ‘귀향’이후, 즉 《오디세이아》 13권부터 24권까지의 이야기만을 다룬다는 점이다. 트로이 목마도, 폴리페모스의 동굴도, 키르케의 마법도, 세이렌의 노래도, 스킬라와 카립디스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신들 역시 스크린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아테나의 개입도 포세이돈의 저주도 그려지지 않는다. 20년 만에 거지 행색으로 고향에 돌아온 늙고 지친 전사가 폐허가 된 왕국과 자신을 잊은 아내, 낯선 아들 앞에서 스스로의 정체성과 자격을 되묻는 지극히 인간적인 심리극으로 서사시 후반부를 압축한 것이다. 평자들은 파인스가 그려내는 오디세우스를 트로이 전쟁에서 돌아온 참전 군인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빗대어 해석하기도 했다.
개봉 후 평단의 반응은 엇갈렸다. 파인스와 비노슈의 절제된 연기를 높이 평가하는 호평이 다수였지만, 신화적 스펙터클을 걷어낸 대가로 서사시 원작이 지닌 활력과 어두운 폭력성을 놓쳤다는 비판도 있었다. 원작 속 오디세우스가 치밀한 지략과 계획으로 구혼자들을 처단하는 전략가인 반면, 영화 속 오디세우스는 우유부단하고 페넬로페와 텔레마코스에게 떠밀리듯 행동하는 인물로 그려져 “내가 알던 오디세우스가 아니다”라는 강한 반발도 나왔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다음 절에서 다룰 놀란의 《오디세이》(2026)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같은 원작 후반부를 한쪽은 신화적 요소를 모두 걷어낸 철저한 리얼리즘으로, 다른 한쪽은 초호화 캐스팅과 IMAX 스펙터클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21세기 오디세우스 각색이 택할 수 있는 두 극단을 각각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5. 2026년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 — 죄책감과 속죄의 서사
《오펜하이머》 이후 놀란의 첫 작품이자 유니버설 픽처스와의 두 번째 협업으로, 제작비 약 2억 5천만 달러가 투입되었으며 전편이 IMAX 필름 카메라로 촬영된 최초의 고전 서사시 각색 영화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오디세우스 역은 맷 데이먼이, 그의 아내 페넬로페 역은 앤 해서웨이가, 아들 텔레마코스 역은 톰 홀랜드가 맡았다. 헬레네와 클리타임네스트라 1인 2역은 루피타 뇽오가, 여신 아테나는 젠데이아가 연기하며, 그 밖에도 로버트 패틴슨, 샤를리즈 테론, 존 레귀자모, 벤 사프디, 사만다 모튼, 엘리엇 페이지, 그리고 음유시인 역의 트래비스 스콧 등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다. 촬영은 2025년 2월부터 8월까지 모로코, 그리스, 이탈리아, 스코틀랜드, 아이슬란드, 서사하라 등지에서 진행되었다.
놀란의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목마라는 계략으로 크세니아(제우스의 법)를 어기고 도시를 함락시켰다는 죄책감에 짓눌린 인물로 그려진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기지와 트로이 목마의 성공을 자랑스러워하는 것과 달리, 놀란의 오디세우스는 이 기만 행위를 부끄러워하며 귀향길 내내 그 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신들에게 맞서 싸우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속죄한 뒤 신들과 운명 앞에 스스로를 내맡기고 나서야 비로소 이타카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앞서 Ⅱ-2에서 살펴본 대로 놀란은 트로이 목마를 크세니아의 집단적 위반으로 재해석하는데, 그 위반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는 짚어둘 필요가 있다. 트로이 목마 계략이 문제적인 것은 그것이 단지 ‘적을 속였다’는 데 있지 않다. 전쟁에서 적을 속이는 일 자체는 원작에서도 비난받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이 계략이 크세니아를 구성하는 두 가지 신성한 의례, 즉 선물(도라)과 탄원(히케시아)의 형식을 정확히 흉내 내어 신뢰 그 자체를 무기로 바꾸었다는 데 있다. 목마는 ‘아테나 여신께 바치는 봉헌물’로 위장되는데, 선물은 크세니아에서 신뢰와 화해를 봉인하는 가장 신성한 형식이므로, 트로이인들이 이 가짜 선물을 성 안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는 크세니아의 관습에 충실했던 결과이자 동시에 자멸의 원인이 된다. 시논 역시 그리스군에게 버림받은 도망자를 자처하며 트로이인들의 자비, 즉 탄원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제우스의 또 다른 법(히케시아)에 호소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군의 기만은 신뢰의 형식을 모방함으로써 신뢰 그 자체를 살해 도구로 전환시킨 것이며, 이것이 파리스의 단순한 개인적 배신과는 다른 층위에서 놀란의 오디세우스를 짓누르는 죄의 정확한 성격이다. 게다가 트로이 전쟁 자체가 애초에 파리스의 크세니아 위반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그 전쟁을 끝낸 방법이 또 다른 크세니아 위반이었다는 사실은 신랄한 대칭을 이룬다. 응징이 원죄와 같은 종류의 죄로 완성된 셈이다.
이 영화에는 또 하나 눈여겨볼 장치가 있다. 극 중 그리스인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바다로부터 온 자들’을 막연히 두려워하는데, 이는 실제 역사 용어인 ‘해상 민족’(기원전 1200년경 청동기 문명 붕괴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정체불명의 침입자 집단)을 그대로 가져온 설정이다. 그런데 영화가 마지막에 드러내는 반전은, 트로이를 속임수로 무너뜨리고 약탈하며 귀향길에 폭력을 휘두른 그리스인들 자신이야말로 다른 이들이 두려워하던 ‘바다로부터 온 침략자’였다는 사실이다. 문명은 외부의 이방인이 아니라 스스로를 문명의 수호자라 믿는 자들에 의해 파괴된다는 것이다. 이 반전은 크세니아를 어긴 것이 다름 아닌 ‘문명인’을 자처하는 그리스인들 자신이었다는 사실과도 정확히 맞물리며, 앞서 살펴본 죄책감과 속죄라는 주제를 완성한다.
이러한 구도는 놀란의 필모그래피 전체를 관통하는 패턴이라고도 한다. 해변에 고립된 채 지친 병사들이 등장하는 《덩케르크》, 가족을 방치한 채 떠난 모험가가 나오는 《인터스텔라》, 자신이 저지른 일을 기억하려 애쓰는 인물이 나오는 《메멘토》, 스스로 풀어놓은 공포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천재를 그린 《오펜하이머》까지 죄의식과 기억, 오만이라는 주제는 놀란이 신화라는 소재를 빌려 반복해서 다뤄온 문제의식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한 캐스팅과 시각적 디자인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이런 논쟁들은 결국 이 영화를 ‘역사물’로 판단할 것인가, ‘신화 영화’로 판단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수렴한다. 이미 2018년 《트로이: 왕국의 몰락》 상영 당시에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신화라는 장르가 ‘고정된 원본이 없는 이야기’라는 태생적 특징을 지녔음에도, 매번 새로운 각색이 나올 때마다 ‘원작에 대한 배신’이라는 프레임의 반발이 되풀이되는 현상 자체가 흥미로울 뿐이다.
영화의 결말 역시 원작에서 가장 과감하게 벗어난 대목이다. 구혼자들을 처단하고 페넬로페와 재회한 뒤, 놀란의 오디세우스는 왕좌를 되찾는 대신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곧바로 왕위를 넘겨준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죄로 얼룩진 세계를 그대로 다스릴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고, 크세니아(제우스의 법)를 지킬 줄 아는 다음 세대에게 이타케의 미래를 맡기는 쪽을 택한다. 그러고는 페넬로페와 함께 전사한 부하들을 애도하고 스스로에게 안식을 주기 위해, 서쪽 끝을 향해 다시 배를 띄운다.
이 결말은 원작과는 전혀 다른 출처에서 빌려온 것이다. 《오디세이아》 11권에서 테이레시아스는 오디세우스에게 노를 짊어지고 바다를 모르는 내륙 사람들을 만날 때까지 걸어가 포세이돈에게 제물을 바치라고 예언했을 뿐, 서쪽 바다를 향한 재출항 같은 것은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서쪽으로의 마지막 항해’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속 오디세우스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신화의 상징체계에서 서쪽은 태양이 지는 방향이자 죽음과 저승을 가리키는 동시에, 영웅들이 사후에 머무는 낙원 엘리시온을 뜻하기도 하는 이중적인 방향이다. 일부 평자는 이 마지막 장면이 이탈리아를 향한 항해로 읽힐 수 있어 아이네아스의 로마 건국 신화까지 은근히 암시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 결말을 둘러싼 논쟁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순수한 원작 충실도에 대한 반발이다. 《오디세이아》 24권은 구혼자들을 잃은 유족들이 무장한 채 오디세우스를 찾아와 복수를 시도하는 장면으로 위기를 한 번 더 고조시킨다. 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 그리고 늙은 아버지 라에르테스까지 나서 맞서 싸우려는 찰나, 하늘에서 아테나가 직접 내려와 “이타케 사람들이여, 더 이상의 헛된 전쟁을 멈추고 지체 없이 갈라서라”고 선언하며 개입한다. 제우스 역시 벼락을 내리쳐 이 명령에 힘을 실어주고, 그 순간 양측은 무기를 내려놓고 평화의 맹세를 맺는다. 즉, 원작의 결말은 인간들 스스로가 화해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신들이 위로부터 개입해 강제로 봉합하는 ‘항구적 평화’다. 오디세우스는 왕좌에서 물러나지도, 유배를 떠나지도 않으며, 제우스가 “오디세우스가 영원히 이타케를 다스리게 하라”고 못박는 구절로 서사시는 마무리된다.
놀란의 영화는 이 신적 중재 장면을 통째로 삭제했다. 유족들의 복수 시도도, 아테나의 하강도, 제우스의 벼락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 자리를 대신 채우는 것은 오디세우스 스스로의 결정(왕위를 텔레마코스에게 넘기고 서쪽으로 떠나는 자발적 유배)이다. 이는 단순한 각색상의 생략이라기보다, 영화 전체가 일관되게 밀어붙여온 논리의 필연적 귀결에 가깝다. 이 영화의 오디세우스는 신들에게 맞서 싸우는 인물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자각하고 속죄해야 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인물에게 신이 대신 내려와 모든 갈등을 무마해주는 결말은 애초에 이 영화의 주제 의식과 어울리지 않는다. 만약 원작처럼 아테나가 개입해 유족들과의 화해를 강제했다면,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저지른 살육(구혼자 100여 명과 트로이에서의 기만)에 대해 스스로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은 채 왕좌를 지키는 셈이 된다. 놀란은 이 신적 사면을 제거함으로써, 화해와 평화를 신의 선물이 아니라 오디세우스 자신이 직접 짊어져야 할 몫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다른 하나의 논쟁은 장르 혼종에 대한 불편함이다. 그리스 서사시의 결말을 800년 가까이 뒤에 쓰인 중세 이탈리아 기독교 세계관의 서사시(단테)에서 빌려와 봉합했다는 점에서, 놀란이 스스로 내세운 ‘에밀리 윌슨 번역본에 대한 충실함’이라는 명분과 모순된다는 지적이다. 다만 옹호하는 쪽에서는 이 결말이야말로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해온 죄책감과 속죄라는 주제 의식을 가장 응축된 형태로 완성한다고 본다. 오디세우스가 짐을 벗지 못한 채 다시 바다로 향하는 마지막 이미지는, 그가 과연 이 방랑을 영영 멈출 수 있는 인물인가라는 질문을 열어둔 채 영화를 끝맺는다.
Ⅴ. 원작과 영화의 비교 : 《율리시즈》·《더 리턴》·《오디세이》
여기서는 오디세우스의 귀향에 대한 세 편만 다룬다. 트로이 전쟁 계열의 원작은 《일리아스》 한 편과 대부분 소실된 서사시권으로 이루어져 있어, 2004년 《트로이》나 2018년 《트로이: 왕국의 몰락》을 비교할 때 관건은 ‘각 감독이 부재하는 서사시의 빈틈을 무엇으로 채웠는가’였다. 반면 오디세우스의 귀향은 《오디세이아》라는 완결된 단일 텍스트가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남아 있어, 원작이 제시하는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세 영화가 각각 어떻게 취사선택·재배열했는지 동일한 기준선 위에서 나란히 비교하는 것이 가능하다. 원작 9~12권에서 오디세우스가 파이아케스인들의 궁정에서 직접 들려주는 귀향길은 트로이 출발부터 이타케 도착까지 총 12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1. 오디세우스의 여정
원작 오디세이아에서는 오디세우스가 ① 트로이에서 출발한 후 처음 1년 동안 ② 키코네스족 -> ⑤ 로토파고이족 –> ⑥ 폴리페모스 동굴 –> ⑦ 아이올로스 섬 –> ⑧ 라이스트리곤족을 만나게 되고, ⑨ 키르케의 섬 아이아이에서 1년 동안 체류한다. 그후 키르케의 조언에 따라 몇 개월 동안 ⑩ 하데스를 방문하고, 출항하여 ⑪ 세이렌, ⑫ 스킬라. ⑬ 트리나키아를 거치면서 오디세우스를 제외한 동료들은 모두 죽게 되고 ⑭ 칼립소가 사는 오귀기에 섬에서 7년을 보낸 후 뗏목을 타고 ⑮ 파이아케스인들의 섬에서 그들의 도움으로 ⑯ 이타케 섬에 도착하게 된다. 원작 오디세이아에서는 트로이를 출발해 이타케 섬에 도착하기 까지 12개의 에피소드를 겪게 되지만, 70여년의 시차를 두고 이 여정을 스크린에 옮긴 1954년 《율리시즈》, 2024년 《더 리턴》, 2026년 놀란의 《오디세이》는 이 12개의 에피소드를 각각 다르게 그려내고 있다. 다만, 《더 리턴》은 애초에 오디세우스가 이타케에 상륙한 이후만을 다루는 영화이므로, 이타케 섬 이후만 설명한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위 지도(다수의 견해로 구글지도에 표시한 것이다)와는 달리, 서쪽 확장설에 따르면 키르케의 섬은 현재의 마요르카를, 오귀기아 섬은 이비자를 의미한다는 견해도 있다(현대지성 출판사, 박문재 옮김 ‘오디세이아’지도).

2. 세 영화의 구성 차이
# 1. 오디세우스 여정의 구성
세 영화의 감독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원작을 압축한다.
1954년 《율리시즈》는 100분 남짓한 러닝타임 안에 담기 위해 총 12개 에피소드 중 폴리페모스·키르케·하데스·세이렌·스킬라·파이아케스인들·이타케 등 7곳만을 남기고 나머지 키코네스족, 로토파고이족, 아이올로스, 라이스트리곤족, 트리나키아를 통째로 생략했다. 특히 키르케와 칼립소를 한 인물로 합쳐버린 것은 이 영화가 채택한 가장 급진적인 압축이다.
2024년 《더 리턴》은 이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13개 에피소드 중 오직 마지막 ‘이타케’ 한 곳만을 남기고 나머지 열두 곳 전부를 서사에서 들어낸 것이다. 이는 압축이라기보다는 원작 분량의 절반가량을 통째로 도려내는 절제에 가깝다.
2026년 《오디세이》는 3시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을 활용해 로토파고이족을 제외한 거의 모든 에피소드를 필름에 담았다. 다만, 로토파고이족의 ‘망각의 식물’이라는 모티브 자체는 삭제하지 않고 칼립소가 오디세우스에게 연꽃을 먹여 기억을 지운다는 설정으로 옮겨와 재활용했다. 놀란이 유일하게 완전히 들어낸 정거장은 오히려 원작에서 액자식 구성의 틀 역할을 하는 파이아케스인들의 섬이다. 다만 이는 회고담이라는 서술 장치 자체를 없앤 것이 아니라 그 무대를 칼립소의 섬으로 옮겼다.
결국 세 영화를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스펙트럼이 완성된다. 《더 리턴》이 여정 전체를 걷어내고 ‘귀향 그 자체’만 남긴 극단적 미니멀리즘이라면, 1954년판은 ‘상영 시간의 제약’이라는 현실적 이유로 여정을 추려낸 중간 지점이고, 2026년판은 여정 대부분을 충실히 재현하면서도 그것을 들려주는 ‘이야기의 형식’ 쪽을 재구성한 최대치의 스펙터클이다.
# 2. 오디세우스 인물 설정
1954년 《율리시즈》의 오디세우스는 해안가에 표류해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로 시작해, 서서히 과거를 되찾아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제작된 이 영화가 기억 상실이라는 장치를 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장에서 돌아왔지만 정서적으로 방황하던 이른바 ‘길 잃은 세대’ 참전 군인들의 재적응 문제를 은연중에 투영한 심리극적 성격을 띠는 것으로 해석된다.
2024년 《더 리턴》의 오디세우스는 기억을 잃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여전히 왕좌와 아내를 가질 자격이 있는 인물인지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로 그려진다. 파인스의 오디세우스는 참전 군인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가까운 심리적 마비를 보이며, 구혼자들에 대한 복수조차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고 페넬로페와 텔레마코스에게 떠밀리듯 실행에 옮긴다.
반면 2026년판의 오디세우스는 처음부터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고 있으며, 서사의 초점은 기억이나 자격의 회복이 아니라 포세이돈의 분노와 괴물, 유혹이라는 물리적 장애물을 극복하고 생존하는 과정에 맞춰져 있다. 흥미로운 것은 원전과의 관계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는 애초에 기억을 잃지 않으며 오히려 치밀한 지략(메티스)과 언변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는 인물이므로, 구조적으로는 기억을 유지한 채 시련과 정면으로 맞서는 2026년판이 원전에 가장 가깝고, 정체성과 자격에 대한 내적 회의에 초점을 맞춘 《더 리턴》이 그다음이며, 기억 자체를 지운 1954년판이 원전에서 가장 멀리 벗어나 있는 셈이다.
# 3. 1인 2역 설정
1954년판은 실바나 망가노가 ‘정숙한 아내’ 페넬로페와 ‘유혹하는 마녀’ 키르케를 동시에 연기하도록 해,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는 대상이 결국 아내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대담한 내면적 은유를 전한다.
2026년판은 루피타 뇽오가 헬레네(트로이 전쟁의 발단)와 클리타임네스트라(남편 아가멤논 살해와 아들의 복수)를 1인 2역으로 맡아, 트로이 전쟁 전체에 걸쳐 여성 인물들의 운명이 서로 얽혀 있음을 강조하는 쪽으로 이 장치를 활용한다. 놀란은 헬레네와 클리타임네스트라(원작에서는 이복자매)를 루피타 뇽오 1인 2역의 일란성 쌍둥이로 각색해, 헬레네만의 유일무이한 아름다움 때문에 전쟁이 벌어졌다는 신화적 전제 자체에 의문을 던진다. 등장 비중이 작은 헬레네가 몇 안 되는 대사에서 더 큰 무게를 갖도록, 자신과 자매 그리고 전쟁의 모든 희생자를 동시에 대변하는 배우가 필요했다는 실질적 이유도 있다. 원작에서는 전쟁의 책임이 흔히 헬레네라는 여성에게 돌려졌지만, 놀란은 오히려 그 책임이 메넬라오스·아가멤논 같은 남편들의 행동에 있는 것 아니냐는 물음을 던지며, 헬레네는 자책 대신 상처를 짊어진 채 살아가는 인물로, 클리타임네스트라는 복수로 맞서는 인물로 대조시킨다. 결국 이 캐스팅은 신화적 전제에 대한 의문 제기, 분량의 한계 극복, 책임의 소재를 여성에서 남성으로 되돌리는 시선의 전환을 한 배우의 몸에 겹쳐 담아내려 한 장치라 할 수 있다.
《더 리턴》에는 이런 상징적 겹역 장치 자체가 없는데, 이는 이 영화가 애초에 마녀도 여신도 유혹의 섬도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비노쉬의 페넬로페는 오직 페넬로페로만 존재한다.
# 4. 안티노오스 인물 설정
구혼자들의 우두머리 안티노오스는 1954년판에서 앤소니 퀸이 거친 마초적 카리스마와 구시대의 몰락을 표현하는 인물로, 《더 리턴》에서는 마르완 켄자리가 절제된 위협감을 지닌 냉정한 실권자로, 2026년판에서는 로버트 패틴슨이 냉소적이고 계산적인 젊은 권력자의 이미지로 각각 재해석했다.
# 5. 세이렌의 노래
원작 오디세이와 두 영화에서 세이렌이 실제로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사 전혀 다르다(《더 리턴》은 애초에 이타케 상륙 이후만을 다루는 영화이므로 이 에피소드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원작(12권)에서 세이렌은 오디세우스를 향해, 자신들의 노래를 들은 뱃사람은 아무도 그냥 지나친 적이 없다고 유혹하며, 트로이에서 그리스인과 트로이인이 신들의 뜻에 따라 겪은 모든 고난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이 비옥한 대지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다고 노래한다. 즉 원작의 유혹은 관능이 아니라 ‘미래를 알 수 있다는 예지의 유혹’에 가깝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들려주겠다는 약속이 오디세우스라는, 호기심과 지략이 남달리 강한 인물에게 가장 치명적인 미끼가 되는 것이다.
1954년 《율리시즈》는 이 유혹의 성격을 앎에서 그리움으로 바꾼다. 영화 속 세이렌은 오디세우스에게 그의 가족—부모와 아내—의 목소리로 말을 걸며 그를 유혹한다. 지식이 아니라 두고 온 사람들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인데, 이는 이 영화의 전체적인 해석이 기억 상실과 귀향을 통해 전쟁에서 돌아온 이들의 심리적 상처를 다루는 심리극이라는 방향과 정확히 같은 결을 취한다.
2026년 놀란의 《오디세이》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이렌의 노래를 오디세우스 자신의 죄책감을 정면으로 겨누는 무기로 바꾼다. 영화 속 세이렌의 노래는 그가 가장 원하는 것이야말로 그가 가질 수 없는 것이며, 가질 수 없는 그것은 이미 한때 가졌다가 잃어버린 것이라고 일러주고, 그 노래 자체가 그가 지키지 못한 모든 약속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지식의 유혹도, 그리움의 유혹도 아닌 ‘죄의식의 유혹’인 셈이다. 이는 이 영화 전체의 주제 의식(죄책감과 속죄)이 세이렌이라는 개별 에피소드 안에도 얼마나 일관되게 관철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 6. 신의 개입을 다루는 방식
신의 개입을 다루는 방식은 세 영화의 스펙트럼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1954년판은 신의 직접적 등장을 최소화하고 이를 자연현상이나 우연으로 처리함으로써 인간 군상의 심리와 정적인 재회의 긴장감에 초점을 맞추고, 2026년판은 젠데이아가 연기하는 아테나를 시각적으로 직접 등장시켜 구혼자 100여 명과의 결전을 대형 클라이맥스 액션 시퀀스로 확장한다. 반면,《더 리턴》은 이 스펙트럼의 맨 끝에 위치한다. 영화는 신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예 완전히 지워버려, 구혼자들과의 결전조차 신의 가호 없이 오직 늙은 인간의 육체와 결단만으로 치러지는 장면으로 연출한다.
# 7. 촬영 기법
기술력과 장르적 맥락의 차이도 세 영화가 놓인 시대와 제작 규모를 그대로 반영한다. 1954년 《율리시즈》는 특수 분장과 강제 원근법 등 당시로서는 제한적이었던 기술을 상상력으로 보완했으며, 이후 1950~60년대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고대 신화 사극, 즉 페플럼 장르의 상업적 가능성을 연 효시로 재평가받는다. 2024년 《더 리턴》은 정반대의 길을 택해, 특수효과나 스펙터클 없이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실제 로케이션과 절제된 자연광 촬영만으로 서사시를 완성했다. 제작비 대비 저조한 흥행 성적이 보여주듯, 이는 애초에 대중적 스펙터클을 지향하지 않은 유럽 아트하우스 영화의 문법이다. 반면, 2026년 《오디세이》는 아이슬란드·모로코·시칠리아 등지를 돌며 촬영한 압도적 스케일과 루드비히 고란손의 음악, IMAX 70mm 필름 특유의 깊이감을 통해, 스트리밍이 일상화된 시대에도 “극장에서 봐야만 하는 이유”를 증명하려는 대작 영화의 야심을 드러낸다. 요컨대 같은 원작을 두고 저예산 인디 드라마, 중간 규모의 상업적 모험극, 최대 규모의 텐트폴 블록버스터라는 세 갈래의 제작 문법이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세 영화는 모두 같은 질문, 즉 20년 만에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1954년판이 기억을 잃음으로써 오히려 잃어버린 자신과 가정의 의미를 되찾아가는, 전후의 상처를 앓는 심리극이었다면, 2024년 《더 리턴》은 이미 도착한 고향조차 더 이상 온전한 안식처가 아니라는 사실, 즉 낯설어진 아내와 아들, 폐허가 된 왕국 앞에서 귀향이 곧바로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응시하는 미니멀리즘 드라마다. 2026년판은 모든 기억을 온전히 짊어진 채 압도적인 시련과 세월을 정면으로 버텨내고, 그렇게 되찾은 왕좌마저 자신의 죄를 이유로 다시 내려놓는 현대적 서사시라 할 수 있다.
3. 원작과 영화들의 차이
# 1. 오디세우스의 정체성
원작에서는 ‘폴리트로포스’(다면적인 사람)로서 거짓 정체를 자유자재로 쓰다가도 폴리페모스에게 진짜 이름을 외쳐버리는 오만함을 보이며, 겸손을 배우는 성장담이 정체성의 핵심이다. 세 영화가 이 정체성 문제를 각각 어떤 인물로 구현했는지는 Ⅴ-2-2(오디세우스 인물 설정)에서 이미 다루었다.
# 2. 크세니아(손님 환대의 율법)의 비중
원작에서 크세니아는 폴리페모스·구혼자들의 위반을 정당화하는 배경 규범으로 곳곳에 흩어져 있을 뿐, 단일 주제로 전면화되지는 않는다.
1954년 《율리시즈》에서는 크세니아 개념이 거의 언급되지 않고, 대신 ‘집으로 돌아가려는 의지 대 불멸의 유혹’이라는 낭만적 주제가 중심이다.
《더 리턴》은 구혼자들의 무례함과 왕궁 침탈이라는 형태로 크세니아 위반이 암시되지만 이 용어나 개념이 명시적 주제로 강조되지는 않고, 현실적 권력 다툼으로 그려진다.
놀란의 《오디세이》는 크세니아(제우스의 법도)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명시적 주제어로 사용해, 트로이 목마 자체를 크세니아 위반으로 재해석하고 문명 붕괴의 원인으로까지 확장시킨다.
# 3. 키코네스족(이스마로스) 에피소드
원작에는 트로이 근처 도시 이스마로스 약탈과 이어지는 반격전이 독립 에피소드로 있다. 1954년 《율리시즈》에는 이 에피소드가 아예 등장하지 않고, 《더 리턴》에도 당연히 없다. 놀란의 《오디세이》는 지명은 밝히지 않지만 짧은 몽타주로 암시하며, ‘바다 민족’에 대한 복선을 새로 얹었다.
# 4. 로토파고이족(연꽃 먹는 사람들) 에피소드
원작에서는 병사 일부가 로터스 열매를 먹고 귀향 의지를 잃어 강제로 배에 끌려오는 짧은 에피소드이다. 1954년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고, 《더 리턴》에도 없다. 놀란 영화는 로터스 모티프를 아예 다른 자리(칼립소가 오디세우스에게 로터스 꽃을 먹여 기억을 지우는 설정)로 옮겨와 재활용했을 뿐, 독립된 로토파고이 에피소드는 존재하지 않는다.
# 5. 폴리페모스의 동굴
원작에서는 폴리페모스가 말을 할 줄 알고 오디세우스가 ‘우티스(아무도 아님)’라는 이름으로 그를 속인 뒤 취하게 하고 눈을 찌르며, 탈출 후 진짜 이름을 외쳐 포세이돈의 저주를 자초한다. 1954년 《율리시즈》는 이 “Nobody! My name is Nobody!” 트릭과 이름을 외쳐 저주를 부르는 원작 구조를 비교적 충실히 재현한다. 《더 리턴》에는 이 에피소드가 없다. 놀란의 《오디세이》는 폴리페모스가 아예 말을 못 하는(혹은 안 하는) 존재로 각색해 ‘우티스’ 언어유희를 통째로 생략했고, 이름 대신 도망치다 눈에 화살을 쏘아 자극한 것이 저주의 계기가 된다.

키클롭스 폴리페모스
# 6. 아이올로스(바람의 신) 에피소드
원작에서는 바람 자루를 받았다가 부하들이 열어버려 이타카 섬 코앞에서 다시 밀려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1954년 영화, 《더 리턴》 모두 등장하지 않는다. 놀란 영화도 신들의 직접 개입 자체를 최소화하였으므로 이 에피소드를 완전히 생략했다.
# 7. 라이스트리고네스족 에피소드
원작에서는 식인 거인족에게 12척 중 11척을 잃는 대참사가 벌어진다. 1954년 영화와《더 리턴》에도 없다. 놀란의 《오디세이》는 이 에피소드를 문명화된 갑옷 입은 거인족으로 각색해 등장시키되, 배 3척 중 2척을 잃는 것으로 규모를 축소했고 식인 여부는 모호하게 처리했다.
# 8. 키르케의 섬 에피소드
원작에서 키르케는 여신이며, 헤르메스가 준 약초 덕에 오디세우스는 마법에 걸리지 않고 그녀를 제압한 뒤 1년간 연인 관계로 함께 산다. 1954년 《율리시즈》는 파격적으로 키르케를 칼립소와 융합시켜, 실바나 망가노가 페넬로페와 1인 2역을 맡아 ‘두 여인에 대한 이끌림의 이중성’을 시각화하고, 이 섬에서 죽은 전우와 어머니의 혼령까지 소환하는 저승 장면도 함께 처리한다. 《더 리턴》에는 이 에피소드가 등장하지 않는다. 놀란의 《오디세이》는 키르케를 늙은 마녀에 가깝게 각색하고 병사들을 손으로 직접 변형시키는 바디호러로 연출하며, 정분 없이 조언만 듣고 곧바로 떠나는 것으로 관계를 절제했다.
# 9. 하데스(저승 방문) 에피소드
아가멤논의 경고 방식이 원작과 영화가 다르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미 다루었다.
아가멤논의 죽음 방식도 다르다. 원작은 연회 자리에서 아이기스토스와 클리타임네스트라의 공모로 도살당한 것으로 서술하는데(후대 아이스킬로스 비극은 목욕 중 도끼 살해라는 또 다른 전승을 만듦), 놀란 영화는 침실에서 클리타임네스트라가 단독으로 단검으로 찌르는 제3의 방식으로 각색해 클리타임네스트라를 단독 행위자로 부각시킨다. 또한 영화는 살해 동기를 딸 이피게네이아의 희생에 대한 복수로 표현하지만, 정작 이피게네이아는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고 소실된 서사시 ‘키프리아’(기원전 7세기경으로 추정되며 호메로스의 서사시 중 일부라고 함)에서 가져온 설정이다.
원작은 이후 24권에서 아가멤논이 페넬로페의 정절을 특별히 칭송하며 11권의 ‘여자를 믿지 말라’는 경고를 스스로 뒤집는 대구 구조를 가지지만, 놀란 영화는 이 두 번째 저승 장면 자체를 생략해 이러한 반전 구조도 함께 사라졌다(1954년 《율리시즈》는 저승 장면에서 아가멤논이 특정되어 등장하는지 명확하지 않고, 《더 리턴》은 원작 전반부 자체를 다루지 않아 이 에피소드가 없다).
놀란 영화는 아이슬란드를 무대로 별도의 저승 시퀀스를 두면서 원작에는 없는 시논을 등장시킨다. 시논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 등장하는데 목마가 속임수라는 걸 알면서도 트로이 병사들을 속이는 역할이었다. 그러나 놀란은 완벽한 작전을 위해 시논에게도 거짓말을 하였고 무고한 희생자가 된 것으로 묘사하였다. 이로 인해 시논은 오디세우스에게 “왜 나를 속였냐?”고 하면서 원망을 하였고, 이는 트로이 목마라는 국가 차원의 기만행위가 자기 부하에 대한 기만행위로 연결되어 결국 ‘크세니아를 어긴 기만’으로 이어지게 된다. 놀란은 시논을 영화의 초반부인 트로이 목마 앞에서 죽는 장면과, 중반부 하데스에서 시논이 오디세우스를 원망하는 장면 그리고 후반부에서 오디세우스가 시논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속이고, 마지막에 안티노오스의 입에 시논의 징병표를 억지로 밀어 넣는 장면으로 이어지게 한다. 그리고 안티노오스가 징병제 추첨 과정에서 자신의 징집 표를 시논의 면제 표와 바꿔치기 하였는데 오디세우스는 이를 알고서도 묵인하였다. 그후 하데스에서 시논이 안티노오스를 시논의 가족을 돌봐주기로 했지만 오히려 아무런 경제적 지원을 하지 않아 결국 아버지가 굶어 죽었다는 말을 듣게 되고, 구혼자 학살 장면에서 안티노오스의 입에 징집 표를 쑤셔 넣는 장면으로 연결된다. 시논은 원작에 없는 인물이지만, 놀란은 시논을 통해 크세니아의 붕괴가 트로이의 성벽에서 이타카의 궁정에 이르기까지 동일한 논리로 반복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인과의 매듭을 만들어냈다.
# 10. 세이렌의 노래 에피소드
세이렌의 노래 내용이 다르다는건 이미 살펴봤다. 여기에 더해 놀란 영화에서는 안키알로스가 밀랍을 빼고 바다에 뛰어들어 사라지는 희생자를 새로 추가했다.
# 11. 스킬라와 카립디스 에피소드
원작에서는 스킬라 쪽을 선택해 부하 6명을 잃는다. 1954년 영화는 이 괴물 조우 자체가 생략되었고, 《더 리턴》에는 없다. 놀란 영화는 인터스텔라의 스윙바이를 오마주해 일부러 카립디스 쪽 급류를 이용하는 연출을 넣고, 원작처럼 6명을 스킬라에게 잃는 것으로 유지했다.
# 12. 트리나키아섬(태양신의 소 떼) 에피소드
원작에서는 헬리오스의 소를 잡아먹은 대가로 배가 파괴되고 오디세우스만 살아남는다. 1954년 영화에는 이 에피소드가 없고, 《더 리턴》에도 없다. 놀란 영화는 이 에피소드를 유지하되 태양신을 ‘헬리오스’ 대신 이름 없는 ‘태양신’으로만 지칭하고, 소가죽이 살아 움직이는 원작의 초자연적 디테일은 생략했다.
# 13. 칼립소의 섬 오귀기에 에피소드
원작에서는 7년간 체류하고 여신 칼립소가 불멸을 제안하지만 오디세우스가 거절한다. 1954년 영화는 이 인물을 아예 키르케와 합쳐버려 독립된 칼립소 캐릭터가 존재하지 않는다.《더 리턴》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놀란 영화는 칼립소를 독립된 캐릭터로 복원시키되, 로터스 꽃으로 기억을 지우는 설정을 추가하고 오디세우스가 만든 조악한 뗏목으로 떠나는 결말로 처리한다.
# 14. 파이아케스인들의 섬(나우시카) 에피소드
원작에서는 나우시카의 도움으로 알키노오스 왕궁에 이르러 자신의 모험담을 직접 노래로 들려준다. 1954년 《율리시즈》는 이 파트를 액자식 틀로 전면 배치해, 나우시카와의 로맨스(기억상실 중 결혼 직전까지 감)를 영화 전체의 서술 장치로 삼는다. 《더 리턴》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놀란의 《오디세이》는 이 에피소드 전체를 통째로 삭제했는데, 아마도 원작이 문명세계로 귀환한 안도감이 ‘이미 스스로 문명을 파괴한 죄인’이라는 영화의 주제 의식과 상충하기 때문에 삭제한 것으로 보인다.
# 15. 이타케에서 페넬로페–텔레마코스 관계
원작에서는 모자간 긴장이 크지 않고 텔레마코스가 어머니를 존중하며 협조한다. 1954년 영화는 이 관계를 깊이 다루지 않고 텔레마코스를 아버지 편의 조력자로만 그린다. 《더 리턴》에서 텔레마코스는 순수하게 자기 안위와 어머니의 고통을 끝내고 싶다는 절박함에서 재혼을 종용하다가 감정 통제를 잃고 어머니에게 모욕적인 말까지 내뱉는, 훨씬 사적이고 상처투성이인 모자 관계로 그려진다. 놀란 영화는 텔레마코스가 왕위 계승을 두고 어머니와 정면으로 다투고(“이젠 어머니가 왕좌를 탐내는거냐”“평화를 원하는거냐 아니면 복수를 원하는거냐”), 페넬로페가 “난 오디세우스를 원한다”고 격앙되게 답하는 등 가장 극적인 모자 갈등을 새로 창작했다.
# 16. 페넬로페가 정체를 모른 채 오디세우스를 대하는 태도
원작에서는 걸인을 손님으로서 예우는 하지만 의심 반 기대 반의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다가 침대 시험으로 확신한다. 1954년 영화에서는 걸인이 ‘남편의 오랜 친구’를 자처하며 접근하고, 페넬로페의 절망과 신의를 지켜본 오디세우스가 활 시합을 역으로 제안하는 형태로, 페넬로페 쪽의 의심보다는 그녀의 슬픔에 대한 오디세우스의 관찰이 강조된다. 《더 리턴》은 페넬로페(줄리엣 비노쉬)가 걸인 오디세우스를 처음부터 예사롭지 않게 여기며 서서히 신뢰를 쌓아가는, 두 사람의 재적응 과정 자체를 드라마의 중심으로 삼는다. 놀란 영화에서는 페넬로페가 바다 민족 대화, 황금 아테나 핀에 대한 질문, 활시위를 튕기는 소리 등 여러 단계를 거치며 점진적으로 정체를 확신해가는 것으로 각색되어 원작의 ‘침대 시험’이 생략되었다.
# 17. 안티노오스의 죽음 순서
원작에서는 안티노오스가 가장 먼저 화살에 맞아 죽는다. 1954년 영화(앤소니 퀸)는 전체 학살 시퀀스 속에서 처리되어 원작처럼 ‘최초 희생자’로 특별히 강조되지는 않는다. 《더 리턴》에서는 안티노오스(마르완 켄자리)가 마지막에 텔레마코스의 손에 죽는 것으로 각색되어, 원작과 정반대의 순서·집행자로 바뀌었다. 놀란의 《오디세이》 역시 원작을 뒤집어 안티노오스가 가장 마지막에, 그것도 시논의 징병표를 강제로 입에 물린 뒤 오디세우스 본인에게 죽는 것으로 처리된다.
# 18. 구혼자 처단 이후의 결말
원작에서는 구혼자 유가족의 반란이 일어나지만 아테나·제우스의 개입으로 진압되고 평화가 회복된다. 1954년 영화는 학살 직후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의 재결합으로 비교적 빠르게 마무리되며 유가족 반란 등은 다루지 않는다. 《더 리턴》은 오디세우스가 사실상 지난 20년간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아내가 용서할 수 있는지 물어보자 페넬로페는 “우리는 함께 기억하고, 함께 잊을 거예요(we will remember and forget together)”라는 말로 화해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텔레마코스는 자신만의 모험을 찾아 붉은 해가 떠있는 바다로 향한다. 놀란의 《오디세이》는 가장 급진적으로, 오디세우스가 왕좌를 되찾는 대신 텔레마코스에게 왕위를 넘기고 스스로 ‘유배형’을 자청해 페넬로페와 함께 서쪽 미지의 땅으로 완전히 이타케를 떠나는 결말을 새로 만들었다.
4. 각본과 감독의 시각
# 1. 역사로 볼 것인가 아니면 신화로 볼 것인가?
신을 다루는 방식은 감독이 신화를 ‘역사’로 읽는지 ‘신화’로 읽는지를 가르는 리트머스지다. 2004년 《트로이》는 신을 지움으로써 신화를 세속적 전쟁사로 재배치했지만, 2018년 드라마와 2026년 놀란의 영화는 오히려 신적 개입을 서사의 핵심 동력으로 되살렸다. 다만 그 방식은 다르다. 《트로이: 왕국의 몰락》이 신탁과 예언, 초자연적 장면들을 상대적으로 담담하게 극에 녹여 넣는다면, 놀란의 영화는 신의 법(크세니아)을 어긴 인간이 그 죄를 자각하고 속죄해야만 신들과 화해하고 귀향할 수 있다는, 훨씬 더 도덕적이고 심지어 종교적인 주제 의식을 신화 위에 덧씌운다.
# 2. 여성 인물을 어떻게 볼 것인가?
여성 인물의 재해석은 시대가 흐를수록 일관되게 확장되어 왔다. 1954년 《율리시즈》에서 페넬로페와 키르케가 ‘정숙함과 유혹’이라는 이분법적 상징으로 축소되었던 것에 비해, 2018년과 2026년의 작품들은 헬레네를 비롯한 여성 인물들에게 훨씬 더 복합적이고 주체적인 서사를 부여하고자 한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올바름’의 문제라기보다, 애초에 《오디세이아》 원작 안에 이미 내재해 있던 페넬로페의 지략가적 면모를 각 시대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발굴해내는가의 문제로 볼 수도 있다.
영화 The Odyssey(2026)의 페넬로페
# 3. 캐스팅과 다양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
캐스팅과 다양성을 둘러싼 논쟁은 신화 각색이라는 행위에 구조적으로 내재된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서사시권 자체가 여러 전승을 자유롭게 취사선택해 조합한 결과물이었듯, 모든 영화는 필연적으로 ‘선택’과 ‘배제’의 산물이다. 문제는 그 선택이 신화의 익명적 권위(작가가 불분명한, 모두의 것이라는 인식)와 충돌할 때 발생한다. 2018년과 2026년 두 작품 모두 인종·젠더 정체성을 둘러싼 캐스팅 논쟁을 겪었다는 사실은, 신화가 여전히 각 시대가 자신의 사회적 갈등을 투사하는 스크린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4. 문학과 영화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문학과 영화 사이에는 근본적인 매체적 간극이 존재한다. 《일리아스》가 헥토르의 장례식에서 끝나는 열린 구조를 취하는 것과 달리, 모든 영상 각색은 관객에게 익숙한 ‘기승전결’과 명확한 클라이맥스를 필요로 한다. 이 때문에 감독들은 필연적으로 서사시권 전체에서 필요한 에피소드를 가져와 하나의 완결된 극적 구조로 재구성해야 한다. 이는 원작에 대한 ‘배신’이라기보다, 애초에 서로 다른 매체가 요구하는 서로 다른 문법의 문제로 이해하여야 하며, 영화는 문학에 상상력을 더하는 것이기 때문에 간극은 그대로 메워지지 않으며 다른 방식으로 메워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Ⅵ. 신화는 어떻게 문학과 영화로 재탄생하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기원전 8세기 무렵 문자로 표시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이전에 이미 수백 년에 걸쳐 음유시인들(놀란은 이를 래퍼로 표현하였다)이 입에서 입으로 노래해 온 구비전승의 산물이었다. 여섯 박자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호메로스의 시행에 반복되는 ‘지략이 뛰어난 오디세우스’같은 정형구들은 단순한 문체적 수사가 아니라, 문자 없이 즉흥적으로 방대한 서사시를 노래해야 했던 구술 시인들의 생존 도구였다. 즉, 우리가 오늘날 ‘원전’이라 부르는 텍스트는, 그 자체가 이미 무수히 많았던 밤들의 노래 가운데 어느 한 저녁, 어느 한 시인의 목소리가 우연히 문자라는 그물에 걸려 남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놀란의 영화 The Odyssey(2026) 중 Travis Scott
문제는 이 우연한 정착이 시간이 흐르며 필연으로 둔갑한다는 데 있다. 한 번 문자로 새겨진 판본은 필사되고, 도서관에 소장되고, 주석이 달리고, 번역되고, 교과서에 실리면서 서서히 ‘원본’이라는 권위를 획득해간다.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아 희생 일화가 정확히 이 과정을 증언한다. 소실된 서사시 『키프리아』가 전하던 사슴 사냥과 여신의 진노라는 이야기가, 아이스킬로스의 『아가멤논』에 이르러서는 독수리와 산토끼의 흉조라는 전혀 다른 인과로 재구성되고, 다시 에우리피데스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 와서는 거짓 혼담과 모녀의 대결이라는 온전히 새로운 드라마로 확장된다. 세 판본 중 어느 것이 ‘진짜’인가를 묻는 것은 무의미한 질문이다. 신화란 어느 하나의 ‘결정판’이 아니라 그것이 파생시킨 모든 변주형들의 총합으로서만 존재한다. 신화에 표준이 없다는 말은, 신화가 불완전하다는 뜻이 아니라 애초에 신화의 존재 방식 자체가 표준일 수 없다는 데 있다는 뜻이다.
이 서평에서 나란히 놓고 읽은 네 개의 텍스트, 즉, 원작 오디세이아, 1954년 카메리니의 《율리시즈》, 2024년 파솔리니의 《더 리턴》, 2026년 놀란의 《오디세이》는 바로 이 ‘표준 없음’을 각자의 방식으로 증명한다. 1954년 영화가 키르케와 칼립소를 한 배우의 1인 2역으로 융합하고 기억상실이라는 장치로 정체성의 문제를 표면화한 것은, 전후 이탈리아 대중영화가 신화에서 길어 올리고 싶었던 것이 모험담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실존적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2024년 《더 리턴》이 폴리페모스도, 키르케도, 세이렌도 모조리 걷어내고 오직 귀환 이후의 가정극에만 카메라를 들이댄 것은, 이 시대가 영웅서사보다 PTSD와 노년의 부부관계라는 사적 진실에 더 목말라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놀란이 원작에도 없고 심지어 그리스 서사시 전통에도 없는(오히려 로마의, 그것도 트로이 편에서 쓰인 『아이네이스』의) 시논이라는 인물을 데려와 그 성격마저 뒤집어 놓은 것은, 21세기의 관객이 ‘지략의 영웅담’이 아니라 ‘죄의식의 순례기’를 요구하고 있다는 감독 나름의 판단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영화라는 매체의 근본적인 조건과 마주하게 된다. 문자로 기록된 문학은 침묵과 여백을 견딜 수 있다. 호메로스는 페넬로페가 걸인의 정체를 언제 확신했는지 명시하지 않았고, 아가멤논이 죽은 방식조차 후대 비극과는 다른 결의 모호함 속에 남겨두었다. 그러나 카메라는 침묵할 수 없다. 배우는 특정한 표정을 지어야 하고, 인물은 특정한 순간에 특정한 행동을 해야 하며, 사건에는 인과의 다리가 놓여야 한다. 다시 말해 모든 영화적 각색은, 문헌에 적힌 것만으로는 결코 완성될 수 없는 서사의 빈틈을, 그 시대의 상상력으로 메우는 행위일 수밖에 없다. 페넬로페가 침대 시험 대신 활시위 소리로 남편을 알아보는 장면, 아가멤논의 죽음에 이피게네이아라는 후대의 서사시가 슬며시 이식되는 장면, 안티노오스의 입에 동전 대신 징병표가 물리는 장면, 이 모두는 원작에 대한 ‘위반’이 아니라, 문자가 감당할 수 없었던 자리를 상상력으로 이미지가 떠맡은 결과다.
에필로그
그러므로 어떤 각색을 두고 “원작에 충실한가”를 묻는 것은, 신화에도 정답이 있어야 한다는 우리의 편견을 신화에 투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물어야 할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이다. 이 각색은 원전이 남긴 침묵의 자리에 무엇을 채워 넣었으며, 그 선택은 무엇을 욕망하는 시대의 산물인가 라고. 트로이 목마 앞에서 죽어간 이름 없는 음유시인의 노래로부터, 기원전 8세기의 문자, 알렉산드리아 학자들의 교정본, 중세의 필사본, 근대의 활자본을 거쳐 2026년 아이맥스 필름에 이르기까지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는 3천 년 동안 단 한 번도 ‘완결’된 적이 없다. 그것은 각자의 세대가 저마다의 결핍과 죄의식과 희망을 실어 다시 부르는, 아직 끝나지 않은 그 음유시인의 노래일 뿐이다.
고전에는 정답이 없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 부록 > 서사시 에피소드별 문학과 영화의 표현 비교 표
○: 온전히 다뤄짐 △: 언급·암시·축약된 형태로 등장 ✗: 등장하지 않음

작성: 한경수 회원 (민생경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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