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별금지법제정연대][공동 보도자료]
농인성소수자·연대시민 1,073명과 시민사회단체 57곳의
국립국어원 연서명 제출 기자회견
“혐오수어 없는 한국수어, 국립국어원에 요구한다”
- 한국농인LGBT+와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은 금일 10시, 국립국어원 후문에서 농인성소수자연대시민 1,073명과 시민사회단체 57곳의 연서명을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였습니다.
- 국립국어원에 한국수어 내 성소수자 혐오수어 근절과 농인성소수자 당사자가 개발한 성소수자 대안수어 등재를 요구하는 농인성소수자와 연대시민 연서명입니다.
- 기자회견에서는 농인성소수자 당사자, 성소수자 인권활동가, 농인 당사자, 장애인권활동가가 연대발언이 진행되었습니다.
- 연대발언 1: 우지양(한국농인LGBT+ 상임활동가)
- 연대발언 2: 소주(무지개행동 집행위원 및 HIV/AIDS인권행동 알 상근활동가)
- 연대발언 3: 김지연(농예술단체 누비스 대표)
- 연대발언 4: 진은선(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 및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 각 언론사의 많은 관심과 취재를 부탁드립니다.
붙임 1. 기자회견 발언문 1부
2. 기자회견문 1부
3. 국립국어원 혐오수어 관련 문제제기 경과 1부. 끝.
안녕하세요, 오늘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한국농인LGBT+ 상근활동가 해인입니다.
한국농인LGBT+와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은 오늘, 농인성소수자 및 연대시민 1073명과 시민사회단체 57곳의 요구를 담은 연서명을 국립국어원에 제출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우리는 국립국어원이 성소수자 혐오수어 근절을 위해 법적으로 권한을 부여받은 국가기관으로서 그 책무를 다하고, 농인성소수자 당사자가 직접 만들고 선호하는 성소수자 대안수어를 등재할 것을 촉구합니다.
그동안 한국수어에서 성소수자는 혐오적으로 표현되어 왔습니다. 게이는 항문성교를 하는 남자, 레즈비언은 서로 몸을 비비는 여자라는 노골적인 성행위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이 수어는 국립국어원이 작년 말 차별적 수어 연구를 위해 임시로 비공개 처리하기까지, 십 년이 넘도록 국립국어원이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한국수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전은 한국어로 따지자면 혐오표현이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려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용인한 성소수자 혐오를 농인성소수자, 즉 한국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성소수자들은 그 고통을 홀로 감내해야 했습니다.
음성언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청인 사회에서도, 성소수자 언어 투쟁은 늘 존재해왔습니다. 한국어의 대표적인 성소수자 혐오표현으로는 호모가 있습니다. 그 자체로 동성애자를 뜻하는 영어 호모섹슈얼에서 유래한 호모는 단어 자체가 근본적으로 혐오적이라기보다, 이것이 성소수자 혐오를 위해 오남용된 역사적 배경에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수어에서 성소수자를 성행위로 표현하는 이 수어는 근원적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에 기인한 것이므로 어떠한 맥락으로 쓰이든 명백한 혐오입니다.
그렇게 2019년, 농인성소수자 당사자들이 모여 이 수어를 성소수자 혐오수어로 규정하였고, 2021년에는 긍정과 자긍심을 표현한 37개의 성소수자 대안수어를 공개합니다.
2022년부터 국립국어원에 문제제기를 했지만 널리 쓰이는 표현이니 문제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고, 지난 해에야 처음으로 한국농인LGBT+에 면담을 제안했습니다. 그리고도 연락이 없다 기자회견을 위해 연락하자 그제서야 두 번째 면담을 7월 말에 갖게 되었습니다.
두 번의 면담을 보고도 한국농인LGBT+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국립국어원은 농인성소수자 당사자에 대한 이해도 없고, 그들의 삶과 고통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도, 혐오수어를 근절하기 위한 노력도 거의 없거나 소극적입니다. 대안수어가 등재될 정당성은 이미 충분하지만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고 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문제 의식에 공감하여 5월 22일 아시아태평양농인성소수자 자긍심의 날을 시작으로 8월 2일까지 72일간 이어진 연서명에 농인성소수자와 연대시민 1,073명, 그리고 시민사회단체 57곳이 참여했습니다. 오늘의 기자회견과 연서명 전달을 통해 우리의 요구를 확실하게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기자회견에는 연대발언으로 한국농인LGBT+ 상임활동가 우지양 님,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및 HIV/AIDS인권행동 알 활동가 소주 님, 농예술단체 누비스 대표 김지연 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 및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진은선 님이 발언해주실 예정입니다. 이후 기자회견 차례는 자유발언, 기자회견문 낭독, 국립국어원 담당자에게 연서명 명부 제출 순서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오늘 기자회견에는 한국수어 통역와 한국어 음성통역이 함께 진행되고 있습니다.
연대발언 1. 우지양 (한국농인LGBT+ 상임활동가)
안녕하세요, 한국농인LGBT+ 상임활동가 우지양입니다.
지난 7월 24일, 한국농인LGBT+는 국립국어원의 요청으로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국립국어원은 한국수어 내 차별적 표현에 대한 연구를 완료하였으며, 9월에 자문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니 한국농인LGBT+에서 자문위원을 추천할 것과 한국농인LGBT+가 개발한 대안수어가 실제로 농사회에서 쓰이고 있다는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저는 면담에서 이 이야기를 들으며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국립국어원은 대안수어 게이, 레즈비언, 바이, 트랜스젠더가 이미 사용되고 있다는 증거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하는데,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예컨대 한국어라면 한글로 문자 기록이 남으니 가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수어는 영상으로 녹화하지 않는 이상 그 기록이 남기 어렵기 때문에 성소수자 수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증거를 수집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립국어원이란 기관이 존재하고, 말뭉치 연구 사업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한국농인LGBT+에서는 이를 연구할 예산도, 인력도, 전문성도 없습니다. 분명 법적으로 그 권한과 책임은 국립국어원에 있습니다.
또한, 한국농인LGBT+는 국립국어원의 연구 결과에 의문이 있어 자체적으로 조사를 하던 중, 국립국어원의 연구와 상반된 해외 사례 두 가지를 발견하였습니다.
먼저 일본 정부의 위탁을 받아 수어 연구·보급 사업을 진행하는 수화언어연구소에서는 「표준수어 확정의 원칙」으로 “전문용어나 특정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말, 일례로 IT 용어와 성소수자 관련 용어 등은 당사자들이 사용하는 표현을 가능한 한 반영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당사자가 사용하는 표현을 따라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명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국립국어원도 참고해야 할 것입니다. 당연하게도, 성소수자 수어를 비당사자들이 결정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에서는 농인성소수자가 개발한 16가지의 성소수자 수어 표현을 정부 공인 수어 사전에 등재된 사례도 있습니다. 개발 과정 전반에 당사자가 참여하며 고유 수어를 가져오기도, 새롭게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한국농인LGBT+의 개발 과정과도 같습니다. 한국농인LGBT+에서도 모든 수어를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남녀의 결합으로 표현되는 결혼 대신 예전에 사용되던 성중립 적인 결혼 수어를 가져오기도, 기존의 에이즈 수어에서 인상을 찌뿌리는 표정 대신 중립적 표정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네덜란드 담당자에 따르면, 네덜란드 농인들이 다 성소수자 수어를 알고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전 등재를 통해 더 알리자는 취지라고 설명합니다. 즉, 사전에 등재함으로써 농인성서수자가 가시화되고 수어의 포용성을 증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국립국어원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대안수어를 모두가 사용하기 때문에 등재하는 것이 아니라, 등재함으로써 대안수어를 알려야 합니다. 특히, 농사회에는 성소수자 관련 정보가 부족합니다. 그러니 정부에서 먼저 정보를 알려야 농인들도 비로소 성소수자에 대해 이해하고 대안수어 사용이 늘 수 있습니다.
또, 면담 때 성소수자 관련 수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차별 표현에 더 집중하며 차별적 수어에 대한 연구에서도 정작 농인성소수자가 배제되는 것처럼 느꺼졌습니다.
한편, 연구 과정에서 남녀 사이의 관계로 표현되는 결혼과 애인 수어가 차별적일 수도 있다고 논의했다면서도, 그렇다고 표제어를 바꿀 순 없으며 남녀 대신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표현을 변이형으로 등록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밝혔습니다. 결혼와 애인이 남자와 여자만으로 표현되는데, 명백한 성소수자 차별 아닌가요? 결국 농인성소수자의 의견은 묵살된 채, 기득권을 가진 농인 연구자들이, 그보다도 청인인 국립국어원의 의견이 더 우선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국립국어원은 여전히 농인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도, 이해할 노력도 부족합니다. 권한을 가진 기관으로서의 책임도 계속 회피하고 있습니다. 한국농인LGBT+가 간단히 조사해서 발견한 사례도 누락된 것을 보고도 정말 연구를 철저히 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예전 일이지만, 한 농인 게이가 커밍아웃한 뒤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일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농인성소수자의 목숨이 달린 일입니다.
국립국어원은 9월 자문위원회 전에 농인성소수자의 현실을 제대로 연구하십시오. 회의 과정에도 소수자로서 농인성소수자의 특성을 반드시 반영하여야 합니다. 혐오수어를 삭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한국농인LGBT+의 대안수어도 등재해야 합니다. 성소수자를 표현할 대안수어 없이는 성소수자의 존재도 언어도 존중받을 수 없습니다. 국립국어원은 혐오를 없애는 것과 더불어, 소수자의 언어를 기록하고 존중하는 책임을 다하길 촉구합니다.
연대발언 2. 소주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및 HIV/AIDS인권행 알 활동가)
안녕하세요.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이자 HIV/AIDS인권행동 알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성욱입니다. 소주라는 활동명을 사용합니다.
저는 2024년 7월 대법원엥서 승소했던 동성부부 건강보험 피부양자 소송의 원고 당사자이기도 한데요, 그당시 너도나도 승소의 기쁨으로 활짝 웃고 행복한 마음을 나누고 있었을 때, 지금은 고인이 된 한국농인LGBT+ 활동가 보석에게 연락이 왔던 것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납니다. 뉴스 등 농인들이 접하는 매체에서 승소 소식을 전달할 때 혐오수어가 사용되었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안타깝고 속상했습니다. 청인들이 아무런 걱정없이 마음껏 기뻐할 때, 농인들은 이렇게 기쁘고 좋은 소식을 접할 때조차 혐오적인 언어를 마주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농인LGBT+의 활동을 더더욱 응원하게 되었고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이 동성애자를 동성연애자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동성연애자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고, 동성애자라고 부르라고 세상에 요구했습니다. 동성애자의 관계와 사랑이 ‘동성연애’라는 행위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흐름과 시간은 단시 단어 하나를 바꾸는 것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우리가 어떤 삶을 사는지, 우리가 어떤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지 세상에 다시 알려주고 가르쳐주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세상은 동성연애자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냥 동성애자라고 부릅니다.
HIV 감염인을 ‘감염자’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감염자’라는 단어 자체가 혐오표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HIV/AIDS인권운동은 HIV 감염인 및 에이즈환자의 보다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고 주장하기 위해서 ‘감염인’이라는 말을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 실행했습니다. HIV/AIDS인권운동은 우리 사회가 HIV 감염인을 떠올릴 때 HIV라는 바이러스와 에이즈 낙인, 공포를 떠올리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이 사회를 함께 구성하고, 함께 이웃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떠올리기를 바랐습니다. 지금은 정부에서도 ‘감염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지금 성소수자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우리 스스로를 다양하게 정체화하고, 그만큼 다양한 언어로 자신을 설명합니다. 논바이너리, 젠더퀴어, 젠더플루이드, 에이섹슈얼/젠더 등 LGBT 알파벳 4개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함께 구성합니다. LGBT 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정체성의 성소수자들이 내가 누구인지를 더 구체적으로,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자하는 시간과 과정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가, 이 세상이 잘 몰랐던 우리를 보다 정확하게 설명하고 알려줘서, 내가 나를 어떻게 표현하든, 내가 나를 어떻게 지칭하든,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행동하든, 그게 그저 나라는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언어는 고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변할 수 있는 것이고, 변화가 필요하면 반드시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수어에 있는 성소수자 혐오 수어를 이제 바꾸자고 요구하는 것은 앞서 말씀드린 일들과 같은 일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가리키는 말과 언어를 더 정확하게, 올바르게 바꿔 표현하자는 것입니다. 성소수자 혐오수어 대신 대안수어를 사용하자는 것은, 다시말해 더 정확하고 올바르게 표현하기 위해 언어를 바꾸자는 것은, 단순한 단어, 표현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언어가 훼손하던 어떤 사람, 인간, 집단의 존엄성을, 이제는 훼손하지 말자고 하는 제안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인 성소수자들에게는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과 언어를 스스로 정하고 제안할 권리가 있고 자격과 힘이 있는 것입니다.
언어가 가지는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 누구보다도 국립국어원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에 혐오가 있다고 당사자들이 문제제기 하고 있습니다. 이를 국립국어원은 외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존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국립국어원은 국가기관으로서 이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수많은 시민들과 단체가 연명해서 함께 요구하고 있습니다. 혐오없는 한국수어를, 국립국어원에 요구합니다.
연대발언 3. 김지연 (농예술단체 누비스 대표)
안녕하세요. 저는 농예술 활동 중인 농(聾)아티스트, 한국농인LGBT+ 대안수어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성소수자 앨라이 김지연입니다. 농아티스트로서, 또 앨라이로서 국립국어원에 대해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에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예술은 창작을 통해 나의 존재를 긍정하고 확장하는 작업입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이 규정한 수어사전 안에서, 농인성소수자 동료들은 예술을 할 때조차 자신의 존재를 모욕당하는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만약 ‘농인’이라는 단어가 사전에는 ‘벙어리’라는 수어로 등재되어 있다면, 농인인 저 역시도 제 존재를 모욕당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연대하는 예술가로서 이를 지켜보는 것 역시 참담합니다. 왜 이성애자는 성행위로 표현하지 않으면서, 게이와 레즈비언은 노골적인 성행위로 표현되어야 하나요? 농아티스트로서 예술의 재료이자 제 삶의 서사인 수어가, 국립국어원이라는 공공기관의 방관 속에서 농인성소수자의 목숨을 위협하는 무기가 되고 있습니다.
예술과 뉴스를 비롯한 다양한 통역 현장에서, 통역사들은 ‘성소수자’라는 한국어 발화에 대해 혐오수어를 사용할지, 대안수어를 사용할지 취사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지금 예술 현장에서는 주제가 다양하게 확장되고 있고, 퀴어 역시도 더 많은 예술의 주제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단지 성소수자 예술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 관객들도 문화예술에 활발히 참여하고 향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도, 통역사들은 성소수자를 대안수어로 사용할지, 혐오수어로 사용할지 선택적으로 통역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통역사는 퀴어퍼레이드 행사에서 멀쩡히 대안수어를 사용해 잘 통역해 놓고도, 정작 대중들이 모이는 대형 유명 가수 공연장에서는 다시 혐오수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성소수자들 앞에서는 존중하는 척하다가, 불특정 다수의 대중 앞에서는 혐오수어를 고수하는 것이 올바른가요? 왜 혐오수어를 사용했냐고 물어보니, 국립국어원 사전에 등재되어 있다며 핑계를 대는 이 현실 자체가 기만적이고 위선으로 느껴져 너무나 부끄럽고 분통이 터집니다.
예술은 존재를 확장하고 표현하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이 혐오수어를 방치하는 동안, 공공의 통역 현장과 예술 무대에서는 사전에 등재된 공식 수어라는 이름 뒤에 숨어 혐오와 비하가 당당하게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이 악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국립국어원은 농사회에서 널리 쓰이는 표현이라며 혐오수어를 방치하고, 대안수어 등재를 미루고 있습니다. 예시를 들어보면 이것에 대한 답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독도는 분명 한국 땅입니다. 그런데 일본 땅이라고 지도에 적혀 있으면 어떨까요? 그리고 이를 수정하기보다 방치해두면 어떻게 될까요? 이를 보고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처음에는 백 명이, 다음엔 천 명이, 그 이후엔 만 명이 되어 결국 바로잡기에는 너무 늦은 때가 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있으면 서둘러 바로잡아야 하고, 이는 성소수자 혐오수어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한편, 국립국어원은 대안수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는 객관적 자료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듣고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참으로 잔인하고 무책임한 궤변입니다. 자문위원으로 직접 참여했던 저는 똑똑히 기억합니다. 성소수자 대안수어 개발에는 농청년, 농대학생, 농예술가뿐만 아니라, 농부모, 목사님, 농아인협회 어르신들까지 농사회의 전 세대와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 치열하게 검증하고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도 대안수어가 널리 쓰이는 증거를 제시하라니요. 그리고 농인이 사용하는 언어에 대해서도 결국 청인인 국립국어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것인가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성소수자 대안수어를 알고 이해하며 공감하더라도, 이를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 성소수자 혐오수어만이 사전에 등재되어 표준처럼 군림하는 환경에서 당사자가 대안수어를 사용하려면 아우팅의 위험을 감수해야만 가능합니다. 앨라이에게도 주변의 시선 속에서 성소수자 대안수어를 당당하게 사용하려면 큰 결단을 필요로 합니다.
네덜란드는 이미 당사자가 만든 대안수어 16개를 정부 공인의 수어 사전에 등재하였고, 일본은 성소수자와 같은 특정 공동체의 용어는 당사자의 표현을 우선해야 한다고 원칙을 정하고 있습니다. 이미 해외 사례들이 많은데 국립국어원은 도대체 무엇을 조사한 것인가요?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아닌가요?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한국어와 영어는 문자가 있어 기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어는 문자로 흔적이 남지 않는 언어입니다. 영상으로 촬영하지 않는 이상 그 증거를 모으기란 불가능합니다. 대규모의 말뭉치를 구축하고 조사하는 데엔 예산과 수고가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이를 위한 권한과 예산을 국가기관인 국립국어원에 부여한 것입니다. 이를 당사자 단체에 떠넘기지 마십시오.
한국 농사회가 성소수자 혐오수어를 오랫동안 사용해온 것은 맞습니다. 그것을 부인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반성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반성은 단지 혐오수어를 사전에서 지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농인성소수자 당사자들과 농사회가 함께 만든 대안수어를 등재하여야 가능합니다. 혐오수어 없는 한국수어가 보장될 때, 비로소 모든 농인이 안전하고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소망합니다.
연대발언 4. 진은선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 및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장애여성공감에서 활동하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는 진은선입니다.
현장에서 한국농인LGBT+ 동료들과 수어 표현을 함께 고민해 온 시간은, 언어에 담겨있는 차별을 인식하고 서로 배우며 현장을 바꿔 온 소중한 경험입니다.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며 구조적 폭력에 맞서온 6년의 투쟁에 깊은 연대의 마음을 보내며 함께 싸워나가고자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여러분 관계를 맺는 시작점인 언어, 서로를 호명 하는 말이 혐오와 차별의 언어라면 어떻게 민주적 관계를 맺으며 서로 동료 시민이, 친구가 될 수 있습니까?
국립국어원의 사전과 국가 공식 매체에 혐오 수어가 ‘널리 쓰인다’, ‘표준’이라는 이름으로 등재되어 있다는 것은, 국가 권력이 사회적 혐오와 차별을 방조하고 묵인하는 것입니다. 혐오의 언어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사용될 때 배제와 폭력이 용인되고 차별로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목적은 일상과 삶의 영역에서 혐오가 차별로 이어지지 않도록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규제해야 할 차별행위, 차별이 발생하는 구조적인 토대를 그대로 방치한 채, 혐오표현 규제만을 앞장세우고 있습니다. 국립국어원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역시 이러한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차별이 발생하는 삶의 현장에서 차별행위를 통제하고 단속하는 일이야말로, 국가가 집행해야 할 가장 긴급한 책임입니다.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장애에 대한 혐오를 두고, 국가기관인 국립국어원은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변명하지 마십시오.
농인성소수자와 장애 여성들은 나의 정체성을 긍정할 수 있는 언어를 찾고 서로를 발견하며, 모욕과 멸시에 맞서 투쟁 해왔습니다. 국립국어원은 대안수어 등재 약속을 지금 당장 이행하십시오.
혐오의 언어를 깨부수고 자부심의 언어를 세우는 이 싸움은, 법과 제도, 그리고 사회가 구분 지어 왔던 정상 규범과 낙인을 넘는 일입니다. 현장에서 차별에 맞서며 일궈온 우리의 삶을 증거로 민주주의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도전입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투쟁에 혐오 수어 폐지를 위한 투쟁이 함께한다고 생각합니다. 농인성소수자의 삶과 경험이 반영된 언어, 평등이라는 인권의 언어가 모두의 언어가 되어야 합니다. 차별과 맞서 싸울 우리 모두의 언어가 되는 것을 국립국어원은 막지 마십시오.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는 평등의 말을 반영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 투쟁!
자유발언. 까치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안녕하세요.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행성인의 액션팀 소속인 까치라고 합니다. 투쟁으로 인사드립니다. 투쟁!
행성인은 저항하고 행동하며 연대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성소수자 당사자 및 앨라이들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공동체입니다.
행성인의 가치에 따라 저는 한국농인LGBT+가 개발한 대안수어를 널리 사용할 뿐만 아니라, 혐오표현이 아닌 평등한 대안수어가 『한국수어누리사전』에 등재되길 바라는 농사회 속 성소수자 당사자들을 비롯한 수어 사용자들과 연대합니다.
한국수어는 농인 당사자가 사용하는 언어입니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등재된 한국수어는 농사회 속 당사자들이 스스로에 대해, 그리고 언어 표현으로 묘사하는 대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편견을 갖게 되는지 정의하며, 영향력을 미칩니다. 성소수자 농인 당사자 뿐만 아니라 수어 사용자가 언어 표현으로서 소수자를 생각에 담고 그 생각을 발의할 때 마다 소수자 배제적인 수어를 사용함에 있어 소수자를 향한 혐오가 조금씩 확산됩니다.
국립국어원은 혐오수어가 『한국수어사전』에 등재된 현황을 외면함에 있어 농사회 속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방치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수어 사용자의 혐오와 편견을 조성하는 혐오수어를 한국농인LGBT+에서 개발하여 이미 널리 사용되고 있는 대안수어로 대체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입니다.
마지막으로, 2026년부터 차별적 수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여 대안수어 정립 및 사용하겠다고 약속한 국립국어원의 행동을 요구합니다. 또, 한국농인LGBT+의 활동가들이 전문적 자문을 받아 개발하고 농사회 속에서 사용되고 있는 대안수어를 『한국수어누리사전』에 등재해 성소수자와 관련된 언어 표현을 정식적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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