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의 피해자들을 위하여
범유경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수자인권위원)
안녕하세요, 민변 소수자인권위원회 범유경 변호사입니다. 오늘 이 사건에 관심을 갖고 와주신 분들께 우선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여기 계시는 분들은 혹시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라는 문장을 아시는지요. 김승섭 교수님의 책 제목이기도 한 이 글귀는 피우진 전 보훈처장이 중령 시절 강제로 전역된 사태와 관련이 있습니다.
피우진 전 보훈처장은 중령 시절, 유방암으로 인해 유방 절제수술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수술을 이유로 심신장애 판정을 받아 전역 당했습니다. 그는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퇴역처분취소소송을 진행했고 이를 계기로 국방부는 군인사법 시행규칙을 개정했습니다. 그 전에는 군인이 심신장애를 판정 받으면 당연히 전역 또는 퇴역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개정 이후에는 전역심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현역 복무 기회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이미 퇴역된 피우진 보훈처장이 곧바로 복직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개정을 두고 한겨레21의 남종영 기자는 “피우진 개인은 졌지만,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고 논평했습니다.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라는 문구는 여기서 나왔습니다.
그러면 전역심사위원회가 생기고 나서는 이런 피해자가 사라졌을까요? 아시다시피 그렇지 못했습니다. 고 변희수 하사는 성별 위화감으로 오랫동안 고통받다가 군단장의 허락과 동료들의 지지 속에서 성확정수술을 했고, 자신의 여성 정체성에 부합하는 신체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 변희수 하사는 음경과 고환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는 이유로 심신장애 판정을 받아 강제로 전역당해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전역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치긴 했지만, 그뿐이었습니다. 고 변희수 하사는 전역처분취소의 소를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전역처분취소 판결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국방부는 뒤늦게 제도 기틀을 마련한다며 성전환자 군복무에 관한 연구 용역을 한국국방연구원에 맡겼고, 2023년에 용역이 완료되어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피우진 개인은 졌지만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고 말했던 것처럼, 이제 우리는 ‘고 변희수 하사는 졌지만,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고 말해야 하는 걸까요?
그러나 애초에 이 연구 내용이 성전환자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방향인지, 혹은 반대로 국방부의 반인권적 태도를 강화하는 방향인지조차 모르겠습니다. 국방부와 연구원이 보고서를 전면 비공개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오픈넷이 국방부와 연구원에 보고서를 공개해달라고 청구했지만 국방부는 아예 답조차 하지 않고 연구원에 청구를 이송했고, 국방연구원은 보고서를 비공개했습니다. 연구원이 명시한 비공개 사유는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2호에 해당하는 ‘국방 등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라는 것입니다.
연구원의 이러한 입장은 정보공개법의 취지에 완전히 반합니다. 국민의 알 권리는 헌법 제21조에 의해 직접 보장되는 권리이고, 정보공개법은 이러한 알 권리의 보장을 위해 공공기관이 보유, 관리하는 정보를 원칙적으로 공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공개사유는 엄격하게 인정되어야 합니다. 법원은 “국가안전보장 등에 돌이킬 수 없는 위험을 가져오고, 이를 사후적으로 회복할 가능성도 상정하기 곤란한 때로 한정하여”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2호 사유가 인정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비공개될 만한 국방 관련 정보는 “대한민국의 국방력 현황 및 변동 사항에 관한 구체적·세부적인 내역을 알 수 있다거나 국가안보나 군사활동의 내용, 과정 및 방향 등을 파악할 수 있게 되는” 정보로 구체화됩니다.
이 보고서는 정책 마련을 위해 성전환자의 군복무에 관한 여론을 조사하고, 법제도의 미비점을 지적하고, 실태조사를 하고, 정책을 제안한 내용으로 추측됩니다. 그러한 보고서의 어느 부분이 군사활동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게 할 것이며, 공개되면 회복하지 못할 위험을 가져온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제 현재의 피해자들이 이겼으면 좋겠습니다. 현재의 피해자들이 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실은 현재의 피해자들이 지난한 소송을 해가며 싸우지 않아도, 소송에서 구태여 이기지 않아도, 잘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 이제 연구 보고서를 공개해주십시오. 우리는 이 보고서가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을 만큼 순진하지 않습니다. 이 보고서가 인권친화적인 내용만 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 만큼 낙관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의 피해자가 죽지 않도록 앞으로의 정책을, 미래를 치열하게 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논의하기 위해 알아야 합니다. 이 소송을 통해서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을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