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
중대재해처벌법 양형기준안에 깊은 우려를 표하며, 입법취지에 부합하는 보완을 촉구한다.
양형위원회는 2026. 9. 21. 제148차 전체회의에서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산업재해치사·치상 범죄에 대한 권고 형량 범위와 양형인자, 집행유예 기준안을 심의·발표하였다. 그러나 발표된 기준안에는 ‘종전의 산업안전보건 관련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인식하에 제정된 특별형법’이라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입법 취지에 비추어 신중한 재검토가 필요한 대목이 적지 않다. 우리 위원회는 향후 의견 수렴 및 최종 의결 절차에서 아래의 문제점이 충분히 논의되고 보완되기를 촉구하며, 다음과 같이 의견을 밝힌다.
1. 기본영역 하한의 문제
중대재해처벌법 제6조 제1항은 사망의 결과에 대하여 ‘1년 이상의 징역’이라는 하한형 법정형을 채택하여, 1년 이상 50년 이하의 선고가 가능하다. 이는 산업안전보건법제상 안전·보건조치의무위반치사죄가 7년 이하의 징역으로 상한선만 두고 있는 것과는 분명한 차별점을 두기 위한 입법적 결단이다. 입법자는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으로 인한 사망을 그만큼 중한 불법으로 평가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 기준안은 중대산업재해치사의 기본영역을 1년 6월~4년으로 설정하였다. 산안법상 안전보건조치의무위반 치사죄의 기본영역이 1년~2년 6월임을 감안하면, 산안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사이의 법정형의 격차에 관하여 정작 법원은 크게 신경쓰지 않겠다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중대재해에 관하여 무거운 책임을 묻기 위하여 별도의 특별형법을 제정한 입법자의 결단을 사법부가 무시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다.
양형위원회는 기본영역 하한을 평균형량(13.98월)보다 높게 설정하였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지만, 이러한 ‘평균형량’은 솜방망이 처벌로 형벌로서의 위하력을 가지지 못하였다는 비판을 받아왔음에도, 이것을 양형위원회가 기초자료로 삼았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나아가 기본영역(1년 6월~4년)의 상당 부분이 집행유예 선고가 가능한 3년 이하 구간과 중첩되는 이상, 기본영역에 해당하는 사건에서 집행유예가 원칙처럼 운용되어 온 실무가 그대로 유지될 우려가 있다.
2. 하한형 범죄에 대한 사실상의 상한 설정의 문제
중대산업재해치사죄는 법정형에 상한이 없는 범죄이므로 최대 징역 50년까지의 선고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기준안은 가중영역 상한을 10년으로 정하고, 특별조정을 거치더라도 징역 15년이 사실상의 상한으로 기능하도록 설계하였다.
양형위원회 스스로 “피해의 규모와 정도,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의 정도, 구체적 사고 경위 등에 따라 죄질·범정이 달라질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 그 스펙트럼의 상방을 미리 한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일관되기 어렵다. 불법성의 정도, 피해자의 수와 피해의 정도를 양형인자로 평가하여 개별 사건에서 형을 정하면 족한 것인데, 미리 상한선을 그어야 할 규범적 필요성은 찾기 어렵다.
특히 징역 15년은 23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은 아리셀 참사 제1심 선고형과 일치한다. 만약 이미 선고된 최고형이 특별조정 상한의 준거가 된 것이라면, 이는 향후 그보다 큰 규모의 참사나 더 중한 불법이 문제되는 사건에서도 형량의 상방이 닫혀 있다는 의미가 되어 수긍하기 어렵다. 양형기준이 실무에서 갖는 사실상의 구속력을 고려할 때,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한 경우’를 특별가중인자로 둔 취지가 상한 설정으로 인하여 제약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생각하기도 싫은 경우이지만, 만약 아리셀 참사보다 더 많은 피해자가 있는 경우라면, 그리고 불법의 정도가 더 엄중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이번 권고안에 따르면 15년이 상한인 것이다. 살인죄의 경우 법정형이 5년 이상, 무기징역 또는 사형인데, 양형기준표를 보면 행위유형을 5가지로 나누고, 범죄의 불법성이 큰 4유형(중대범죄 결합 살인)은 20년 이상, 5유형(극단적 인명경시 살인)의 경우에는 23년 이상이라는 하한만 두고 있다. 이를 보더라도 범죄의 유형에 따라서 얼마든지 하한만 둘 수 있고, 그 하한 또한 매우 높게 정할 수 있음에도, 굳이 15년이라는 상한을 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3. ‘처벌불원 또는 실질적 피해 회복’의 특별감경인자 설정의 문제
기준안은 유족과의 합의를 본질로 하는 ‘처벌불원 또는 실질적 피해 회복’을 특별감경인자로, 나아가 집행유예 기준의 주요 긍정사유로 설정하였다.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하여 가장 깊은 우려를 표한다.
산재사망 사건의 양형 실무에서 유족 합의는 집행유예로 직결되는 결정적 변수로 기능해왔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선고된 사건의 다수가 집행유예에 그친 배경에도 합의가 자리하고 있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형벌로서의 위하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된 주요 경로가 합의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 실무를 특별감경인자라는 규범의 지위로 격상시킬 경우,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에 사전 투자하는 것보다 사고 후 합의금을 지급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경영상 판단을 뒷받침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양형위원회 스스로 “양형기준은 수범자인 경영책임자에 대하여 경영상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밝힌 만큼, 이 감경인자가 현장에 어떤 신호를 주게 될지 깊이 숙고하여야 한다.
양형위원회가 제시한 근거에 대하여도 다음과 같은 의문이 있다. 첫째, “과거 다수의 양형 사례에서 유족과의 합의를 양형에 반영”해 왔다는 사정은 기존 관행의 확인일 뿐, 그 관행을 규범화할 근거로는 부족하다. 둘째, 살인·강도 등 다른 범죄군과의 형평이 거론되나, 중대산업재해치사는 개인 간 범죄가 아니라 조직적·구조적 의무 해태로 노동자의 생명이 침해되는 범죄로서, 일반 형사사건의 합의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다. 셋째, “유족들이 충분한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논거는 손해의 전보를 민사책임과 산재보험 제도가 아닌 형벌 감경을 통해 달성하려는 것으로, 배상 자력이 있는 기업일수록 가벼운 형을 받게 되는 불균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생명 침해 범죄에서 처벌불원 의사표시의 주체가 생명을 잃은 피해자 본인일 수 없다는 근본적 한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별감경인자와 집행유예 주요긍정사유의 결합이 ‘합의와 사후 조치가 있으면 집행유예’라는 공식으로 운용될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의 예방적 기능은 상당 부분 약화될 우려가 크다.
4. 피해자 측 사정 관련 감경인자의 문제
‘사고 발생 경위에 특히 참작할 사유’라는 특별감경인자에는 피해자가 스스로 위험 장소에 출입한 경우, 음주 상태에서 작업한 경우, 안전장치를 해제한 경우 등이 열거되어 있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위반죄의 본질은 개별 노동자의 행태가 아니라, 그러한 행태가 사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체계를 구축할 경영책임자의 의무 위반에 있다. 상급자의 지시가 있는 경우를 제외한다는 단서만으로는, 명시적 지시 없이 작동하는 작업 관행과 구조적 압박을 충분히 포착하기 어렵다. 위험의 구조적 원인이 피해자 개인의 과실 문제로 치환되지 않도록 감경인자의 요건과 해석 지침을 보다 엄격히 정비할 필요가 있다.
5. 결론
양형기준은 법관을 위한 참고자료에 그치지 않고, 노동자의 생명이 이 사회에서 어떤 무게로 다루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규범이다. 이번 기준안이 종전 양형 관행의 정리에 머무른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이 바꾸고자 했던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우리 위원회는 양형위원회가 향후 의견수렴 및 최종 의결 절차에서 ① 중대산업재해치사의 기본영역 하한을 법정형의 구조적 차이가 반영되도록 상향하는 방안, ② 특별조정을 통한 사실상의 형량 상한 설정을 재고하는 방안, ③ ‘처벌불원 또는 실질적 피해 회복’의 특별감경인자 및 집행유예 주요 긍정사유 설정과 피해자 측 사정 관련 감경인자를 재검토할 것을 촉구한다. 노동 현장의 죽음을 줄이고자 한 입법의 취지가 양형기준을 통해 온전히 구현되기를 기대한다.
2026년 9월 23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위원장 김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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