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참사대책위][성명] 대법원의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선고에 대한 입장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대책위원회
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
<대법원의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선고에 대한 입장>
아무도 우리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대법원이 아리셀 참사 책임자 박순관의 징역 4년형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23명의 노동자가 숨진 중대재해참사의 책임자에게 징역 4년이면 충분하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대책위원회는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를 훼손하고 피해자들에게 또다시 절망을 안긴 대법원의 판결을 강력히 규탄한다.
천대엽 대법관은 오늘 법정에서 판결 이유에 대해 한마디도 설명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주문을 낭독한 뒤 도망치듯 퇴정했다. 23명의 노동자가 숨진 참사의 최종 판결을 내리면서 왜 1심의 징역 15년이 아닌 항소심의 징역 4년이 타당한지, 왜 항소심의 법리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는지 피해자와 사회에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대법원이 내놓은 판결 관련 자료에서도 이 판결이 갖는 사회적 의미와 법리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찾기 어렵다. 대법원은 판결을 내릴 권한만 있는 기관이 아니다. 그 판결이 어떤 법리에 근거하고 있으며 왜 정의에 부합하는지를 설명할 책임도 있다. 오늘 대법원은 그 책임마저 외면했다.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오늘 판결이 주심인 천대엽 대법관이 과거 직접 주심을 맡아 내린 산업안전 판례와 어떻게 양립하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는 점이다.
2021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 충돌사고 판결에서 대법원은 안전보건규칙에 따른 어떤 조치를 취했다는 사실만으로 안전조치 의무를 다한 것이 아니며, 산업현장의 구체적인 실태에서 예상되는 재해를 예방할 수 있을 정도의 실질적인 안전조치를 취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특히 동종의 산업재해가 이미 발생했던 사업장이라면 재발 방지를 위한 예방조치를 더욱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당시 주심이 바로 천대엽 대법관이었다.
그러나 오늘 대법원은 화재가 발생한 아리셀 공장 2층에 별도의 비상구를 설치할 의무가 없다고 본 항소심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항소심은 안전보건규칙이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과 건축물에 비상구를 설치하도록 규정할 뿐 층별 비상구까지 명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비상구 설치·유지 의무 위반을 인정하지 않았다.
묻지 않을 수 없다. 산업안전보건 규정을 형식적으로 준수했는지가 아니라 노동자가 실제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을 정도의 안전조치가 있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던 과거의 법리와, 오늘의 판단은 어떻게 양립하는가. 대법원과 천대엽 대법관은 이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대책위원회는 이번 판결을 사법정의를 훼손한 잘못된 판결로 규정한다. 대책위는 재판소원을 비롯해 가능한 모든 법적·사회적 수단을 검토하고 동원하여 이 판결의 부당함을 알리고 바로잡기 위해 싸울 것이다. 우리 사회를 기업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희생시키는 사회로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아리셀 참사의 피해자와 유가족의 피해를 회복하고,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마땅한 책임을 다하고 사과하도록 만들 것이다.
유가족들은 오늘 “사람이 23명이나 죽었는데 아무도 우리에게 사과하지 않았다”고 절규했다. 그리고 “이주노동자이기 때문에 우리를 차별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희생자 다수가 이주노동자였다는 사실은 참사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한다. 그것은 아리셀 참사가 한국사회에 켜켜이 쌓인 문제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 이주노동자에게 더 큰 위험을 떠넘기는 노동의 구조, 기업의 이윤 앞에서 노동자의 생명을 비용으로 계산하는 구조, 그리고 그것을 바로잡아야 할 사법이 마땅한 책임을 묻지 않는 구조까지. 아리셀 참사는 한국 사회의 모순을 한꺼번에 드러내고 있다. 유가족들이 이제는 아리셀과 박순관만큼이나 피해자를 외면하고 재차 피해를 강요하는 국가와 사회에 더 분노한다고 말하는 것에 이제는 국가와 사법이 답할 수 있어야 한다.
23명이 죽었다. 그러나 아직 아무도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사과를 받아낼 때까지, 이 참사의 책임을 끝까지 물을 것이다.
2026년 10월 20일
아리셀 중대재해참사 대책위원회
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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