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생활을 마치며

2010-08-31 159


 


인턴 생활을 마치며




시간이 쏜 화살처럼 지나가 버렸다, 는 흔한 말이 너무 와 닿는 요즘입니다.  어, 어, 하는 사이에 아득할 것만 같았던 6개월의 반이 훌쩍 건너가더니, 내리막 3개월은 더 쏜살같이 흘러 버렸습니다. 이 후기를 쓰다 말고, 민변 인턴 면접 본다고 사 입었던 단벌 코트를 추억 되새김용으로 꺼내 보았습니다. 요새 날씨에는 너무 덥고 습해서 서둘러 벗어버리고 말았지만은요. 흔한 말이 왜 진리라고들 하는지 알겠더라니까요.

 이 옷을 입고 처음 면접을 보러갔던 그때의 심정은, 그래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서류 심사에 합격한 기쁨, 면접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조바심, 제 얄팍한(!) 인권 의식이 바닥나는 것은 아닌가에 관한 불안 등등,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인 묘한 기분이었지요. 그러한 마음은 OT를 하고, 정식으로 출근을 하게 되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느 회사 인턴과도 분명 다를 것이고, 주변에 경험자가 있는 것도 아니라 더더욱 감을 잡을 수 없었으니까요. 어떠한 작업을 어떻게 해 나갈 수 있을지, 어떤 사람들과 무엇을 하며 어울릴 수 있을지, 다소 막막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6개월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그러나,
접힌 장마다 좋은 추억들만이 남아 있습니다.

 위원회 소속 간사님, 변호사님들과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고 버벅거리며 모니터링 업무를 익혀갔던 첫 3월, 쭈뼛거리며 따라갔음에도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4월의 위원회 엠티, 촛불백서 비실명화 작업에 모든 인턴들과 올인했던 5월, 변론상담 업무에 그야말로 땀났던 여름.

 그 밖에 각종 교육 프로그램들과 인턴들만의 월례회, 여성 단체들과 MBC 방문 및 재판 방청 등, 다른 곳에서 할 수 없는 귀한 경험도 할 수 있었지요. 리서치 작업에 허덕거리면서 제 자신이 얼마나 모자란 지, 얼마나 더 많은 공부를 필요로 하는지를 뼛속까지(?) 깨닫기도 했고, 후견변호사님들의 사무실을 방문하고 함께 식사도 하며 즐거운 시간들도 가질 수도 있었습니다.

 …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처음 생각했던 그림과 달랐던 부분들도 있었고, 힘들었던 순간들도, 실망스러웠던 시간들도, 분명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모든 것을 다 알고 느끼게 된 이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가 다시 한번 2월의 그 날로 돌아가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 준다면, 주저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100% 행복하기만 했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다시 이 곳에서 시작하고픈 마음은 200% 진짜니까요.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반년 동안 부대끼며 친하게 지냈던 동기들 모두, 이제 다들 흩어져 저마다의 삶을 열심히 꾸려 나가겠지요. 자주 만나는 친구들도 있겠지만, 영 방향이 엇갈려 끝내 멀어져 버릴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좋은 추억은 언제까지나 살아 빛나는 것이니까요. 제 마음 속에 남게 될 그들은, 2010년 봄과 여름을 함께 했던, 영원히 젊은 그 모습 그대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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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은 화살처럼 지나가 버렸는데, 그다지 많이 나아지지도, 훌륭해지지도 못한 저는 그냥 남아 있습니다. 처음 거창하게 인턴 원서에 썼던 대로 “연수원에 가기 전 유예 기간 동안 민변에서 많은 것을 배워서 그 귀한 경험들을 사회에 나누는 일”을 하기에는 더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 압니다. 그렇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 시간이 흘러 보다 많은 것을 겪고 배운 후에 – 이번에야말로 진짜 도움 될 수 있는 몫으로, 민변에 다시 찾아 오겠습니다.

 저와 4기 인턴 모두에게, 이 곳은 배워서 떠나가는 곳이 아니라,
 끝내 돌아오고 싶은 곳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올 그 때까지,
잠시만 안녕히 입니다. (__)





– 글 / 여성위원회 이화진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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