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인터뷰] 배우에서 사회운동가로 – ‘문성근’, 그가 알고싶다

2011-04-01 206

[민변 인터뷰]배우에서 사회운동가로 – ‘문성근’, 그가 알고싶다






인터뷰_출판홍보팀 이재정 변호사
사진_출판홍보팀 유재선 6기 인턴
정리_출판홍보팀 이재정 변호사, 권미홍 6기 인턴, 김민성 6기 인턴


‘문성근’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것이 알고싶다>의 무표정한 얼굴과 차분하면서도 다소 딱딱한 말투였다. 직접 만난 그는 검게 그을린 피부와 희끗희끗한 머리 때문인지 프로그램 진행자나 배우라기보다는 이웃집 아저씨와 같은 인상이 더 강하다. 이 날 <백만 송이 국민의 명령> 회원이 10만을 돌파하여 기자간담회를 마치고 온 터라 표정이 더욱 밝고 부드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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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오늘 국민의 명령 회원이 10만이 넘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성근 대표(이하 문)> 기자간담회를 하고 오는 길입니다. 회원 수 10만 명이 돌파하면 ‘정당올레(백만 민란 회원들이 각 당사를 방문하면서 야권단일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뜻을 전하고 압박하는 순례를 명명한 말)’를 하기로 했었는데 4월 3일 민주당을 찾아가는 것이 시작입니다.


 


민변> 최근 이 운동 관련해서 인터뷰나 강연도 많으셨지요.


문> 인터뷰도 인터뷰지만 제안 설명회를 많이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작년 8월 시작한 운동이 점차 진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처음 제안서를 쓸 때는 제 삶을 통해 경험하고 고민해온 것들로 시작했습니다. 뼈대만 갖춘, 얼개만 짠 제안이었지요. 설명회를 거치는 가운데 청중들의 질의와 토론, 반론들이 보태져서 점점 내용이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한 시간이면 끝났던 설명회가, 회를 거듭하면서 보태진 내용과 고민들로 더 길어지고 있답니다.


 


민변> 백만민란 운동이 정확히 무엇인가요.


문> 우리나라 민주진보진영의 정당구조개편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는 정당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요. 국민들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참여를 통해 국민의 힘으로 바꿔줄 수밖에 없습니다. ‘민란’은 왕조권력, 지배 권력이 더 이상 자정할 수 없을 때 백성들이 봉기하는 것이지요. 이에 백만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더하여 운동의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백만’은 과거 긴급조치 1호를 발발시킨 장준하, 백기완 선생의 유신헌법 철폐를 위한 백만인 서명 운동에서 착안한 숫자입니다. 또한 야당 당원들의 숫자를 모두 합치면 45~50만 정도인데 그 두 배가 넘는 숫자로 정당을 넘어선 정치운동을 뜻합니다.


 


민변> 이 운동에 대해 국민들에게 어떻게 설득하고 계신가요.


문> 현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은 이미 충분합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더 보탤 필요도 없습니다. 5개나 되는 야당에, 큰 야당인 민주당이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이미지로 전체 국민의 뜻을 오롯이 받아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과연 되겠느냐”는 반응이 많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5년을 결정해야 하는 2012년 선거를 앞두고도 아무런 희망을 느끼지 못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설득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익히 보아왔듯이 정당들 내부 동력으로는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국민 100만 명이 모여서 명령을 하면 ‘그것이 가능성’이라고 말씀드립니다. ‘그것이 희망’이라고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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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돌아섰던 국민들이 이번 정권에 실망을 하게 되며 다시 돌아보십니다. 그렇지만 그 10년에 대한 실망감이 쉬이 해소되지는 않습니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이 자세입니다. 마음 닫고 떠난 연인한테 “나 진짜 반성 했어. 잘 할게. 저 HDTV 사줄게.” 이게 효과가 있을까요. 마음을 돌리는 게 먼저에요. 분열을 끝내야 해요. 단일 정당이 우선입니다. 이 공동체가 어떻게 가야할지 국민들은 이미 다 알고 있어요. 자유, 생태, 평화, 복지… 복지만 하더라도 현 정부를 겪으면서 제대로 학습하였지요. 중요한 것은 통합에 있지 정책에 있다고 보지 않아요.


 


민변> 이 운동에 대한 정당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진보정당들의 경우 민주당과는 공유하는 가치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지난 20년의 역사동안 민주당도 진보진영의 요구들을 단계적으로 정책 안에 받아들여 오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싶습니다. 큰 틀의 진보적 가치에 대한 합의는 충분히 도출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작은 정당들이 가진 생각 저변에 있는 불안, 공포의 감정입니다. 그래서 비민주 진보3대통합을 위한 움직임이 꾸려진 것이지요. 조직에 대한 불안은 연합정당본질을 유지한, 즉 정파를 보유한 채 단일정당이 되는 것으로 극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민변> 민란을 통해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문> 국민 다수가 정당에 들어가서 당내 인구 구성이 광역별 인구비례에 비슷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 구도는 민주당 스스로 해결할 수가 없어요. 국민들도 기성 정당들에 대해 답답해하고 있었지만 촛불만 들 뿐이었습니다. 촛불이 정당정치, 현실정치 참여로 이어질 수 없었습니다. 이제 방법은 민란입니다. 백만이 모여 미래에 만들어질 단일 정당을 설계합니다. 아주 아름다운 민주정당을. 점차적으로 합의를 모아가면서 이런 아름다운 정당이면 나도 적극적으로 활동하겠다는 서약을 받는 거죠. 기존의 정당으로 엮어질 수 없었던 요구들이 함께 모이는 겁니다. 현재의 정당 가입자 숫자인 45~50만의 두 배가 되는 백만이 모여서 만들어진 국민의 바다를 믿어야 합니다. 그 바다 안에서는 민주당의 지역 편향적인 당원구조가 희석될 것입니다.


 


민변> 통합의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요?


문> 국민 백만이 있으니, 바다가 있으니 배를 띄우라 이 것입니다. 당을 통 채로 갖고 들어오자. 그래서 당원명부를 연합된 단일 정당에 제출을 하되 기존의 당별 회원 명부는 그대로 관리를 하는 거죠. 그렇게 해서 다수당이 되는 겁니다. 노동과 복지 등으로 합의 할 수 있을 만큼 합의하자는 겁니다. 정파 등록제 상태에서 경쟁하는 것이죠. 이념을 버리라는 것도 아니고 조직을 흩뜨리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한 지붕 다섯 가족으로 모여서 한나라당을 밀어내자는 거지요. 그렇게 선거를 거듭하면서 당내에서도 진보의 세력이 입지가 점차 공고해지고 넓어질 것이라 봅니다. 저는 이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 생각하고 제안을 드리는 것입니다. 결국 분리를 끝내면서 얻는 이익으로는 첫째, 2012년 승리에 한층 가까워진다는 것, 둘째, 정당 구조가 정상화되고 셋째 지역주의가 극복된다는 것입니다. 비민주 진보통합은 민주당을 방치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지역적인 한계를 털지 못해요. 전국정당이 만들어지지 않겠죠. 그런 장점을 생각해보자는 겁니다.


 


민변> 인터뷰 전 확인한 홈페이지의 명령에 동참한 국민수가 10만 1029명이더군요. 처음 60명의 제안에서 시작해 큰 성과인데요, 이 성과로 어떤 활동을 계획 중이신지요.


문> 토론이나 개인적으로 만나 얘기를 해보면 결국은 민주당이 먼저 움직여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요. 민주당이 확연한 의지를 보여주기 전에는 작은 정당은 움직일 수 없어요. 그래서 일단 민주당에 집중적으로 요청을 드리는 것입니다. 민주당이 당론을 채택하는 4월 3일 올레를 통하여 압박을 시작할 것입니다. 별개의 움직임으로, 다가오는 선거에서 일단 야권단일 후보로서 총선을 단일 정당으로 맞이하는 게 좋겠다는 것을 지지하는 후보일 경우 최선을 다해 당선되도록 힘을 보탤 생각입니다. 정치라는 것이 선거중심이라 4월 27일 전에는 쉽지 않을 것도 같네요. 우리 제안에 동의하는 정당과 정치인,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에게 연석회의와 같은 소통체를 만들 것을 제안할 계획도 있습니다.


 


민변> 단일야권정당을 통해 총선 대선을 치르고 난 이후의 모습에 대해서는 어떤 구상이 있으신지요.


문> 외국의 례를 연구하고 있는데, 몇 되지 않는 사례지만 연구를 통해 우리의 정치적 풍토에 맞게 적용해야겠지요. 기본적인 운영은 정책전당대회 같은 것을 해서 정파별로 지지도를 따져서 그것이 지도부 구성이나, 비례대표 등에 반영되도록 하고 지역구 같은 경우 결선 투표제가 있는 국민 참여 경선형태는 어떨까 생각도 합니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정파간 분열로 당이 파국으로 갈까 제일 염려하고 있는데요. 국민의 명령으로 모아지는 참여들처럼 정파와 상관없이 접착제, 완충제, 심판자로서 깨지지 않게 역할을 할 분들이 분명 존재합니다. (의견을 가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깨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중간적 역할로 남아계시는 분들도 포함해서) 정파에 등록하지 않는 당원들이 50%는 될 거라고 봅니다.


 


민변> ‘희망과 연대’ ‘내가 꿈꾸는 나라’등 비슷한 고민들로 만들어진 동력들이 있는데, 이 단체들과는 어떤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문> ‘내가 꿈꾸는 나라’에 힘을 싣고 계신 분들 중 한 분인, 김기식님과 ‘빅 텐트’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때라 좋은 생각이라면서 동의했지요. 국민이 참여하지 않는 한 방법이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건 국민운동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김기식님은 시민사회운동을 한 분이기에 경험과 역사에서 고민들이 축적된 전문가입니다. 그에 반해 저는 시민사회운동이라고는 스크린쿼터 문화 연대밖에 없는 날라리지만, 시민들의 힘 바닥의 힘에 대해서만큼은 ‘노사모’ 활동을 통해서 절감하고 있습니다. 2012년의 같은 꿈을 꾸는 입장에서 앞으로도 다양한 형태로, 따로 또 같이 소통하고 함께 할 것입니다.


 


민변> ‘문성근과 정치’라고 하면 먼저 노사모와 국민참여당이 떠오릅니다. 그로부터 자유롭지 않으신 것이 사실인데요.


 


문> 2002년 노사모이후로 많이들 기억하시는데, 사실 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알게 된 후로 정치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김 전 대통령사이에 심부름을 많이 했지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판을 받던 당시, 군사재판정에 방청하러 들어가 9시부터 5시까지 진행되던 긴 재판을 속기한 기억이 있습니다. 필기구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어서 밖의 식당에 필기구를 맡겨두고 점심시간에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도록 기억한 것을 토해 메모하고, 그 메모한 것을 다시 맡겨두고 오후 재판을 방청하며 법정의 공판내용을 남기게 되었죠.(눈가가 촉촉해진다) 그게 유일한 기록이에요. 그 땐 4,5키로 살이 빠지도록 밤새면서, 울부짖으면서, 내가 한 줄만 더 기억해내면 그 사람이 사형당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쥐어 짜냈지요.


2002년 노사모 이후, 제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 대해 나무라는 분들이 있었지요. 참여 정부가 흔들리던 당시, 모든 사람이 도와야 하는데 너 는 뭐하냐는 식으로 말씀주시는 분들도 많았지요. 사실 노사모에 참여하게 된 것은 (노무현이라는 사람 자체의 매력도 있었지만) 아버지 ‘문익환 목사’ 때문이었어요. 아버지는 평생에 시비 거리가 없으신 분입니다. 유일한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80년대 ‘양김’의 분열이고 당시 아버지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셨지만 결과는 그리 되었고 지역통합야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지요. 그 고통을 우리는 지금도 겪고 있어요. 양 김이 끝나고 지역감정을 무너뜨리는 데 목숨 걸겠다고 선언한 그 사람(노무현)이 대통령후보를 하겠다더군요. 그 분을 돕는 것이 아버지 문목사께서 후회하시던 그 일에 대한 사죄라는 생각으로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역할은 딱 그 까지라 생각했습니다. 제 아버지 문익환 목사는 쉰아홉에 투옥하신 이래 일흔 여섯에 돌아가시는 동안 12년 감방생활을 하셨습니다. 나와 계셨던 게 5년 반밖에 안돼요. 그런 삶을 사신 분인데 나는…. (말을 줄이며 잠시 멈춘다) 나는. 아버지 사진을 못 걸어 두고 있습니다. 살 수가 없어요. 사진 속 얼굴을 계속 뵈면. 그 죄송한 마음으로 참여하게 된 겁니다.


시간이 흘러 노대통령 투신하고 그 후,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되었죠. 2012에 어떻게 할 건지, 어떡하면 우리가 민주정부를 세울 수 있을지. 상황을 보면서도 2002년 함께한 사람들 중엔 어떤 식으로든 제안할 사람이 없더라는 겁니다. 다 정파에 소속되어 있었고 결국 정파 분열 안에 있거나, 같은 당이라도 경쟁을 하고 있었지요. 저는 현실 정치 개입하지 않은 터라 그 다툼과정에 빠져있었고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입장이었지요. 봉합을 제안 할 수 있다는 것이죠. 해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그렇게 (정치 참여하지 않고) 바깥으로 돌았던 게 이 시점에 이렇게 쓰일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영광이죠.


 


민변> 민란의 원동력으로 승리를 하게 되면 그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계시게 될까요.


문> 이 운동의 제안자로 상당기간 책임을 져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2012년 이후에는 시민정치운동 조직으로 유지·발전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미국의 무브온처럼. 그 모습 끝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내년 선거 국면 그리고 어느 단계까지는 이 조직체가 기능하고 활동하는 데 제 몫을 다할 생각입니다.


 


 


민변> 사실 인터뷰를 위해 연락처를 알아보던 과정에서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처음에 지인인 방송국 연예피디를 통해 알아보다가 결국은 시사프로그램 피디를 통해 전화번호를 전해 받았습니다. 순간 연예피디의 수첩에는 존재하지 않는 문성근이라는 배우에게 어떤 타이틀. 어떤 이름을 부여해야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웃음) 어떠신가요.


문> 사실 저는 배우일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예전엔 연기를 좀 더 잘하기 위해서 정말 나를 못살게 굴면서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조금씩 연기의 맛을 느끼게 되고 이제는 나른할 정도로 편안합니다.


2002년 직전부터 정치와 얽히기 시작했고 그 이전엔 일부러 도망 다니듯 연극에 미치기도 했는데.. 이제는 이냥 저냥 그렇게 살아온 게 고마워요. 쓸모가 남아 있어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이번만 하더라도 배우이기 때문에 ‘민란’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을까요. 저같은 배우나 영화감독 같은 직군의 사람들은 체제의 무게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상상력이 있습니다. <웰컴 투 동막골>이나 <JSA>, <황산벌> 같은 영화 얼마나 뛰어난 상상력이에요? 모든 걸 뒤집어 볼 수 있다는 거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 ‘왜 그래야 하는데’ 라는 의문을 가져본단 말이죠. 그렇지 않으면 이 업계에서는 뒤처지거든요. 그게 일상화 되는 거지요. ‘민주당은 안 될 거야.’에서 ‘왜 안 되는 거야?’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게 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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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얼마 전 조선일보 앞에서 장자연 사건에 대한 1인 시위를 하셨는데요.


문> 이전에 연예인 노조 등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로 문제제기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죠. 그런데 이 사건은 피해자 당사자가 문건을 남기면서 억울하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에요. 피해자가 이런 방식으로 직접적으로 밝히는 건 처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이전의 경우엔 개인 차원인 경우가 많은데 비하여, 이 사건은 회사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로비를 했다는 것이 차이점이죠. 또한 과거에 간헐적으로 드러났던 경우는 제작자나 감독과 같이 연예인에 대한 1차 권력자의 문제였지만 이번에는 IT와 금융업, 언론사까지 관여된 문제입니다. 권력이 감추는 문제를 찾아내 날카롭게 비판을 하고 사회에 공동체의 건강을 담보해야할 언론이 로비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피해자가 문서를 지장까지 찍어서 남겼습니다. 근데 기소된 사람은 그저 매니저 두 명이에요. 무슨… 이게… 어떻게 이럴 수 있나요. 이건 여자가 성상납을 강요받았어요. 억울해서 죽었어요. 이게 어떻게……. 결국 젊은 여성이 목숨을 끊으면서 사회에 비명을 질렀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민변: 우리 사회가 너무 쉽게 잊고 덮어버리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것은 아닌지.. 다시 공론화 했는데도 또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게 안타깝습니다) 국민들은 언론 기관이 관계되어 이렇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덮어져 버린다면, 결국 우리사회가 얼마나 무너져 내렸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민변> 문성근님께 민변은.


문> 민변.. 저에겐 동지죠. 피고인 가족으로서…. 늘 (아버지께서) 재판을 받으셨으니까. 맨날 지는 변호사(웃음)……..(옛 생각이 떠올랐는지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먼 곳을 응시했다. 긴 여운이 남았다.) 늘 고맙고 든든합니다.



민변>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문> 우리역사는 시민이 이끌어온 역사라고 생각해요.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시민이 일을 해왔죠. 동학농민운동부터 따져보면, 점차적으로 왕정에서 민주공화국으로 체제가 변해왔으니 참여의 정도가 점점 깊어진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대의민주주의제도를 서구에게 이식받았기 때문에 시민이 주인으로서 더불어 어울려 사는 나라라는 의미를 가진 말 임에도 늘 그동안 정치권에 맡겼습니다. 2002년도 일종의 선거혁명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뽑아놓고 손을 놓았지요. 촛불과 노무현대통령의 서거를 겪으며 또 몇 달을 촛불을 들었는데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거리에서 계속 끝장토론을 했어요. 결론은 항상 대의제도에서는 정당을 강화에서 선거에서 이기는 것 밖에는 없다고 했지요. 그게 6.2 선거에 나타났지만 선거에서 이기는 것만으로는 지속가능하지 않아요. 시민이 ‘깨어나고 공부해서’ 그리고 ‘조직을 강화해서’ 이겨야 지속가능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촛불의 결론입니다. 시민으로서 투표는 당연한 것이고, 이젠 정당을 강화해서 지속가능한 것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이번일은 “되는” 운동입니다. 조금만 더 힘을 모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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