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권모니터링] 말레이시아 정부의 국가보안법 폐지발표, 과연 진정성은 있는 것인가?

2011-11-30 236

[아시아인권모니터링]

말레이시아 정부의 국가보안법 폐지발표,

과연 진정성은 있는 것인가?

글_국제연대위원회 7기 인턴 오정민

말레이시아의 대표적인 악법으로 꼽히는 말레이시아 국가보안법

영국 식민통치 시절의 법률을 바탕으로 제정된 말레이시아 국가보안법(ISA : Internal Security Act)은 ‘국가 안보’라는 이름아래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억누르고 정부에 비판적인 세력을 체포, 구금하는 도구로 활용되어 왔다. 국가보안법은 “국가 안보, 필수적인 국가 서비스, 국가 경제의 유지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고 판단되는 사람을 영장 없이 60일간 구금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국가보안법이 정부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놓고 있다. 또한 구금 기간을 2년씩 연장할 수 있다는 규정은 “장관의 구금 명령이 있을 때에는 재판 없이 최대 2년 간 구금할 수 있다” 는 규정을 불명확하게 만들어 구금 기간을 무한정 연장하는 것도 가능하게 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 제정 이래, 정부에 비판적이거나 급진적인 사고를 가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언제 풀려날 지 모른 채 체포, 구금되었으며, 많은 경우는 구금 기간 동안 변호인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오랜 기간 가족과의 면회도 금지된 채 독방에서 생활하였다.

<사진출처> 왼쪽: http://malaysianindian1.blogspot.com/2008_09_29_archive.html

오른쪽: http://www.singaporedemocrat.org/articledissents.html

국가보안법으로 체포, 구금된 사례

지난 6월, 말레이시아의 진보성향 시민단체 NIEI(National Institute for Democracy and Electoral Integrity)에서 인턴으로 활동하던 한국인 여대생 송민영씨가 시위 현장을 조사하기 위해 야권 세력이 주도하는 반정부 시위 현장을 찾았다가 국가안보 위협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녀는 다음 날 풀려났지만 며칠 뒤 숙소 근처에서 다시 체포되어 쿠알라룸푸 부키트 감옥에 구금되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송민영 씨가 야당의 선거법 개혁 집회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혐의와 함께 위조 여권을 소지해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한 혐의도 있다며 송민영 씨를 다시 이민국 유치장으로 이송했다. 송민영 씨는 NIEI의 항의성명과 외교부의 조속한 석방을 요구를 통해 5일만에 풀려났으나 한국으로 강제 추방 당했다.

지난 1월, 말레이시아 경찰이 쿠알라룸푸 근처에서 열리는 사적인 이슬람 종교 모임을 급습하여 국가보안법을 이용해 50여명을 구금하였다. 구금되었던 사람들은 곧 풀려났으나 말레이시아 정부는 몇몇 외국인들을 다른 나라(정치적 종교 활동을 이유로 고문의 위협이 있는 나라들 – 시리아 포함)로 강제 추방하였다. 이처럼 말레이시아 국가보안법은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2009년 국가보안법을 이용해 반정부 성향의 정치평론가로 이름이 알려진 Raja Petra Kamarudin 에 대해 2년간 구금명령을 내렸다. Raja Petra Kamarudin은 ‘말레이시아 투데이’라는 뉴스포털을 운영하며 10여 년간 글을 써온 논객으로, 계속해서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려 말레이시아 정부에게는 매우 성가신 존재였다. 이에 말레이시아 내무부 장관은 “Raja Petra의 글은 이슬람교를 조롱하고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것으로 2년간 구금명령을 내리기에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이야기하며 그를 구금하였다. Raja Petra Kamarudin은 2008년에도 Najib Razak총리와 그의 부인이 몽골 모델 살인사건과 연루되어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올려 민심 선동혐의로 3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으나, 상급 법원에서 상고가 받아들여져 석방되었다.

Raja Petra Kamarudin

<사진출처>

http://www.inquisitr.com/3096/3096/

<사진출처>

http://www.hrw.org/news/2011/01/24/malaysia-action-improve-rights-falls-far-short

말레이시아 총리 Najib Razak의 국가보안법 폐지 발표

<사진출처>

http://www.themalaysianinsider.com/malaysia/article/najib-announces-repeal-of-isa-three-emergency-declarations/

“말레이시아 국가인권위원회 ‘수하캄’은 2004년부터 국가보안법이 ‘국가 안보’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는 점, 국가보안법과 관련된 법집행이 말레이시아 인권 상황을 해쳐왔다는 점, 비정상적 법 집행이 오랜 세월 계속되면서 하나의 관습화된 법률처럼 굳어져 폐해가 많다는 점 등을 사실로 인정하고 국가보안법의 전면적인 재검토와 개정 또는 폐지를 요구하였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에 의한 영장이나 재판 없는 구금은 계속되었고 국가보안법은 그렇게 개정 작업 없이 존속되는 듯 했다. 그런데 말레이시아 연방 성립 기념일을 하루 앞둔 2011년 9월 15일, Najib Razak말레이시아 총리가 국가보안법과 세 개의 긴급선언 폐지를 발표하였다. Najib Razak총리는 이 날 연설에서 이러한 역사적인 날에 국가보안법의 완전한 폐지를 발표하게 되어 기쁘다며 어떠한 개인도 정치적 이념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구금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번의 변화는 한층 성숙된 시민적 자유와 인종간의 화합을 보장할 수 있는 근대적인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며 국가보안법 폐지의 의미도 강조하였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국가보안법과 긴급선언의 폐지 외에도 집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 온 관련 법률들도 개정하기로 하는 등 일련의 개혁 조처를 내놓아, 집권 이후 가장 대담한 개혁정책을 발표했다는 평을 들었다.

진정성 있는 폐지 발표인가?

하지만 Najib Razak총리가 9월 15일 연설에서, 폐지되는 국가보안법이 테러리즘에 관한 두 개의 법안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밝히면서, 대체법안이 정부 반대 세력을 탄압하는 데 사용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포럼아시아는 말레이시아 정부가 이미 테러리즘 방지를 위한 법적 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굳이 테러리즘에 관한 법안을 제정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하며, 테러와 관련된 사건에서는 재판 없는 구금이 계속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였다. 말레이시아 야당과 사회단체도 국가보안법 폐지는 긍정적으로 보지만 구체적인 폐지 절차는 지켜봐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11월 13일과 14일 동부 말레이시아에서 말레이시아인 7명과 외국인 6명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체포, 구금되면서 Razak 총리가 약속한 개혁 조치들의 이행 여부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이에 엠네스티의 아시아 담당 국장 Sam Zarifi는 말레이시아 정부가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다시 사람들을 구금하면서, 말레이시아 정부가 발표했던 국가보안법 폐지 계획(2012년 폐지 예정)을 조롱거리로 만들었다며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겠다고 약속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실제로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참고 자료

♠ 말레이시아 국가 보안법 관련 자료

http://en.wikipedia.org/wiki/Internal_Security_Act_(Malaysia)

♠ 한국인 여대생 송민경씨 체포, 구금 관련 자료

http://malaysiansmustknowthetruth.blogspot.com/2011/06/ngo-arrested-korean-student-intern.html

http://itakeabreak.com/han2u/xe/1404

♠ 외국인 강제 추방 관련 자료

http://www.amnesty.org/en/region/malaysia/report-2011

♠ Raja Petra Kamarudin 관련 자료

http://www.amnesty.org/en/library/info/ASA28/006/2008/en

http://en.wikipedia.org/wiki/Raja_Petra_Kamarudin

http://malaysia-today.net/mtcolumns/42152-wikileaks-opposition-journalist-detailed-under-the-internal-security-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