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의 활동] 노동절 집회 후기 ‘너무나 화창했던, 너무나 치열했던 5월의 하루’

2012-05-10 160

[노동절집회 후기]


너무나 화창했던, 너무나 치열했던 5월의 하루



글_ 조일영 변호사
 


2012. 5. 1. 13:40. 서울역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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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날이 아닌데도 서울역 광장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한껏 멋을 내고 모처럼만에 나들이를 떠나는 사람들 가운데 마치 하나의 섬처럼 형형색색의 깃발을 들고 무리를 지어 모여 있는 또 다른 사람들의 모습은 매우 대조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약 10년 만의 노동절 집회참여였다. 대학교 새내기 시절 선배님들의 손에 이끌려 집회에 참여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외치는 구호나 요구조건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더 많은 싸움을 해나가야 할 것이라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14:00 남대문 앞 거리



집회는 예년과 달리 곧바로 행진으로 시작되었다. 선두에는 자본과 정권에 의해 살해된 22명 동지들의 영정사진을 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섰고, 이어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서비스노조의 뒤를 따라 민변과 노노모가 깃발을 나란히 하였다. 서울역광장에서 시청광장까지 이어지는 왕복 8차선의 길 중 나머지 한 쪽 전부를 차지하고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거리의 풍경들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걷는 것은 나로 하여금 색다른 기분이 들도록 만들었다. 눈높이에 따라 보는 것이 달라진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 우리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다양했다. 비록 짜증 섞인 눈초리를 하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기는 하지만 중간 중간 환호와 응원을 보내주는 시민들도 있었다. 방송용 차량이 우리와 조금 멀리 떨어져있는 탓에 잘 들리지는 않았으나 간간히 트로트 노래를 개사한 노래도 틀면서 시민들에게 우리의 요구사항도 알리고 덕분에 비교적 밝은 분위기 속에서 행진이 이루어 질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좀 더 적극적으로 구호를 외치면서 행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예전에 대학생 때는 8박자 구호나 노래에 맞춰서 하는 구호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구호를 외쳤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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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 도중 주변을 돌아보니 다양한 단체의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그 중 특히 나의 눈에 띈 것은 바로 사넬노조. 서비스노조에 속해 있는 곳이었는데, 그 이름만큼이나 그 깃발아래 있는 사람들도 왠지 럭셔리(?)해보였다. 청년유니온과 같이 이 전에는 없었던 노조가 이제는 많이 조직되었다는 사실에 고무되었다. 앞으로도 다양한 노조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또한 그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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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0 시청 광장

집회장소인 시청 광장은 푸른 잔디로 뒤덮여 매우 푹신했다. 무대 오른편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스피커에서 귀에 익숙한 민중가요들이 흘러나와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었다. 노래패의 힘찬 합창으로 막을 연 집회는 민중의례로 시작되었다. 뜨거운 태양이 장렬하는 가운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다 같이 부르고 엄숙하게 묵념을 하니 분위기는 다시 숙연해졌다. 이 날은 박원순 서울시장도 집회에 함께 참석했다.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는 시장의 참석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앞으로도 서울시 차원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해 노력한다고 하니 계속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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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의 본격적인 첫 번째 순서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모습을 그린 퍼포먼스였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동지들을 관에 직접 넣을 수밖에 없는 해고노동자들의 슬퍼하는 모습과 달리 그 것을 외면한 채 각자의 길만 바쁘게 걷는 사람들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묘사한 내용이었다. 어쩌면 나도 그들 중 한 명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졌다. 뒤에 이어진 발언에서 나오기도 한 말이기도 한데 그 것은 퍼포먼스였지만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바로 지금 우리에게 펼쳐지고 있는 현실이었다.



다행히 앉아있던 곳에서 일어나 잠깐 밖으로 나오니 무거운 마음을 떨쳐낼 수 있었다. 집회 주변에는 행진 때와 마찬가지로 정말 다양한 단체에서 설치한 부스들이 많이 있었다. 모두 매우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었는데 서명을 받는 곳도 있었고, 그림을 설치한 곳도 있었으며 책을 파는 곳도 있었다. 그 중 특히 ‘반올림’에서 파는 김성희 작가의 신간 ‘먼지 없는 방’은 인기가 많았다. 또 직접 제주에서 올라와 ‘구럼비를 죽이지 말라’라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파는 친구들도 있었고, 반값등록금 때문에 오히려 피해를 입게 된 학우들을 돕기 위해 모금에 나선 대학생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앞서 행진할 때도 느낀 점이기도 하지만 그 날 받은 수많은 양의 전단지만큼이나 많은 수의 단체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현재 우리 사회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목소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집회는 민주노총 위원장의 발언으로 점차 무르익어 갔다. 그는 이번 집회가 단순히 노동절 집회로서가 아니라 장차 8월에 있을 총파업을 결의하는 자리로서 의미를 가진다고 하였다. 앞으로 대선을 앞두고 또 한 차례 험난한 투쟁이 펼쳐질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이어서 심상정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와 안효상 진보신당 공동대표 등의 지지발언이 이어졌고 연대를 형상화 한 내용으로 각종 단체들의 깃발을 꼽은 배를 무대 위로 띄우는 퍼포먼스가 이어지면서 집회는 막바지로 치달았다.


 


마지막 순서로 결의문 낭독을 하면서 집회는 끝이 났다. 이 날 우리가 내세운 것은 ‘비정규직 철폐’와 ‘정리해고 중단’, ‘노동법 전면 재개정’ 세 가지였다. 개인적으로 민변의 변호사로서 처음으로 참여한 집회였는데 세 가지 내용 모두 장차 노동 변호사를 꿈꾸는 나에게 있어 큰 의미로 다가왔다. 앞으로 노동자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조금 더 고민하고 조금 더 치열하게 살아야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하면서 집회장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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