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월례회 후기

2008-04-30 139

 

김상봉 교수, “새로운 공동체의 모색”






민변 월례회 초청 강연


2008년 4월 29일, 민변 월례회에서 전남대학교 철학과 김상봉 교수를 모셔 강연을 들었다. 민변에서는 김 교수를 소개하는 글과 함께 김 교수가 쓴 “그들의 나라에서 우리 모두의 나라로 -두 개의 나라 사이에 있는 5·18-”이란 제목의 글을 보내줬다.


김 교수를 소개한 글에 의하면 김 교수는 58년 개띠로서 우리 사회와 현실을 고유하게 설명해주는 이론이 없다는 생각에 학자의 길로 들어 독일에서 칸트철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리고 “부드러움과 격정을 오가는 특유의 말투와 작은 키를 무색케 하는 열정, 소년 같은 웃음으로 나름 두터운 여성팬을 확보하고 있는 훈남, 잘 웃는 동시에 불의에 대해선 화도 잘 내는 정의맨, 음악과 시와 포도주를 좋아하는 디오니소스”라고 표현하고 있다. 강연을 듣고 2차 자리를 같이 하면서 위 표현이 매우 적절하였음을 깨달았다.




우리 현실을 우리 언어로 해석·설명하기 위해 철학을 전공


철학을 전공한 계기와 관련하여 김 교수는 대학시절부터 우리 언어로 우리 현실을 해석·설명하지 못하고 모든 영역에서 남의 이론(서양이론)에 꿰맞추어 설명하려는 한국 지성사의 병폐를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5·18, 학벌, 통일 등의 문제는 서양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한국적 맥락에서 형성된 것이다. 이를 서양사회과학이론으로 설명하거나 해석하려니까 무리가 발생한다. 우리의 언어로 설명하기 위해 철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다.


칸트나 헤겔 등 서양철학을 전공한 철학자들의 글들은 대부분 쉽게 와 닿지도 않고 이해하기도 힘든 추상적인 개념들을 나열하여 난삽하기 이를 데 없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김 교수의 글과 강연은 쉽게 읽히고 우리 정서에 쉽게 전달되는 호소력이 있었다. 이러한 전달력은 칸트와 헤겔을 완전히 소화하고 자기 것으로 재해석해야 가능하지 않을까.




이정표에 서 있는 5·18의 해석


김 교수는 강연을 “5·18은 한 마디로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했다. 프랑스 대혁명을 한 마디로 자유, 평등, 박애의 시민혁명이라고 규정할 수 있듯이 5·18은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보편성을 획득하는가의 여부는 한 세대(30년) 후에 보편적 언어로 규정되어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기억하는가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한다. 기독교가 세계의 종교로 발전한 것은 예수 사후 30여 년 후에 사도 바울이 복음서를 써서 보편적 언어로 기술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도 그 사건만으로 끝났다면 자코뱅 공포정치에 대한 환멸만이 남았을지도 모르는데, 헤겔이 “프랑스 혁명을 통해 천상의 나라와 지상의 나라가 하나가 되었다”고 보편적 언어로 정립했기에 찬란히 빛나고 있다는 것이다.


홍세화 선생도 참석했는데, 파리코뮌의 2달이 마르크스에 의해 미래를 함께 도모하고 운명을 함께 한다는 약속에 기반한 해방공간으로 평가됨으로써 역사적 교훈을 남기고 있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김 교수는 5·18이 그러한 이정표에 서 있다고 한다. 국가폭력에 맞선 투쟁으로서 가해자에 대한 법적 처벌과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졌지만, 철학적·보편적 의미부여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정치적, 법적, 문화예술적 운동을 아우르는 ‘5월운동’으로 처벌과 보상이 이루어졌지만, 전승하고 계승하여야 할 내적 가치와 이념의 정립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보편적 언어로 5·18을 해석해내지 못하면 다양한 사건 중의 하나로 묻히고 말 것이다. 김 교수는 이런 절박한 현실인식에 근거하여 5·18을 새로운 공동체 모색의 이정표로 삼고 있다.




5·18에 대한 다양한 해석


그 동안 5·18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론이 개진되었다.


첫째, 폭도들의 난동으로 규정하는 견해이다.


둘째, 반독재투쟁으로서 민주화운동으로 규정하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시민항쟁으로서의 성격에 주목한다.


셋째, 계급투쟁적 성격을 강조하여 민중항쟁으로 규정하는 견해이다. 이 견해는 기층 민중의 참여에 주목한다.


넷째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의 광주를 절대공동체로 규정하는 견해이다. 1998년경 최정운이 처음으로 제기한 견해로서, 앞의 견해들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광주에서 시민들이 보여준 행위와 태도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최정운은 절대공동체를 개인의식이 공동체 속에서 지양되어 버린 것으로 파악함으로써 2002년 붉은 악마에서 5·18공동체의 재현을 보는 잘못을 범하였다는 것이 김 교수의 지적이다. 개인이 없고 공동체만 남게 되면 이를 이상적인 공동체로 볼 수 없으며 전체주의적 공동체로 빠질 위험이 있다.




새로운 공동체 계시로서의 5·18


김 교수는 5·18을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계시(啓示)로 파악한다. 한국 역사상 공화국의 이념전통이 없다는 것이 김 교수의 견해이다. 공화국은 국가가 공적 주체로서 구성원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정조가 죽은 이후 200년 동안 우리나라는 그런 적이 없다. 국가기구는 전체 구성원을 위해 존재한 것이 아니라 특정계급에 의해 전유되었다. 소수의 권력집단만의 국가였고, 그 외의 구성원들은 객체로 전락하였으며, 이들을 자발성으로 결속시킬 수는 없고 오로지 강제력, 국가폭력으로 묶어놓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지배계급의 요구와 민중들의 요구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충돌하였으며, 결국 두 개의 국가가 전쟁상태에 있어왔고, 현재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견해이다. 그러한 전쟁의 양상은 민중의 유리걸식, 도둑(예술작품에서 이상화된 것이 홍길동), 민란(대표적으로 홍경래), 동학, 3·1운동, 4·19혁명 그리고 5·18에 이어진다. 동학에 이르러 보편적 이념과 결합하였고, 3·1운동에 이르러 전위운동적 성격을 탈피하고 전체 민중이 부름 받았다. 4·19혁명은 우리 힘으로 정부를 전복한 경험이다.


김 교수는 4·19까지는 헤겔적 시각에서 자유를 위한 진보와 발전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설명이 가능하다고 한다. 자유는 시민적, 계급적 권리를 찾자는 의미를 지니며 이것은 곧 정의로 연결된다. 라틴어의 ius, 영어의 right, 독일어의 recht는 모두 권리(소유권), 법, 정의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이런 관점만으로 인간사회의 전망을 제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서양 국가들은 도둑이 강도질해서 자기들끼리 공정하게 분배하고 사는 것을 정의로 규정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권리를 아무리 보장한다고 해도 결국 배제되는 그룹이 있고, 법은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우하는 것을 정의로 보지만 모든 사람이 같다는 전제가 들어맞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권리, 자유의 이념으로 바람직한 공동체를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5·18은 이러한 자유의 이념을 헤겔적 의미에서 지양하고 진정한 만남에 기초하여 홀로주체성이 아닌 상호주체성에 입각한 새 공동체로 이념화한다. 5·18이 출발은 빼앗긴 권리와 민주주의, 즉 자유를 위한 투쟁이 동인이 되었으나, 거기에서 더 나아갔다. 김 교수는 5·18의 진행과정에서 보여준 시민들의 태도로부터 만남의 범주들을 추출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제시한다.


김 교수는 5·18 공동체의 상징(김 교수의 표현에 의하면 성육신한 사랑)으로서 헌혈(피, 즉 고난의 상징), 주먹밥(공동의 생존), 수류탄(공유된 능동성)을 든다. 그리고 만남의 범주로서 용기(자기 권리와 자유 및 존엄성을 위한 용기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기 위한 용기), 약속,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을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5·18 공동체는 참된 만남(홀로주체가 아니라 서로주체의 만남)의 현실태이자 이후 3천년 역사의 초석이라는 것이다.


5·18 당시 광주에서 기층 민중이 죽을 줄을 알면서도 끝까지 싸운 이유는 평생 살면서 처음으로 사람대접 받고 사랑과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증언이 있다. 사랑과 인정을 받는 만남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는 것이다. 자본의 절대적 지배가 관철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참된 만남의 공동체를 위한 새로운 항쟁을 준비해야 한다.




5·18 공동체를 일반화할 수 있는가


김 교수의 위와 같은 정열적인 강연에 이어 질의응답과 토론이 있었다. 제일 먼저 제기된 문제는 5·18 광주는 10일, 파리코뮌은 2달이라는 단기간이었기 때문에 공동체적 관계가 가능했지 보다 장기화되었다면 새로운 권력관계가 작동하였을 것이며, 따라서 이를 일반화하기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비록 10일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서 행해진 사례나 상황은 충분히 길었다고 답변했다. 성서에서 제시된 예수의 행적에 비하면 광주 시민들의 10일간의 행적이 훨씬 풍부하다. 200년 역사 중의 10일로 파악해야지 단순한 10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5·18 당시 보인 시민들의 유대는 전투 중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으로서 지나치게 과잉 강조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초반에 은폐하고 또한 참여하지 못한 자들의 부채감에서 과잉 강조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극한적인 전투적 상황에서의 전우애라는 측면을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적에 대한 윤리성은 시민혁명이나 프롤레타리아트혁명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부분까지 설명하려면 만남의 욕구에 기초한 새로운 공동체 이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 대한 평가와 법의 의미


나도 김 교수께 두 가지 질문을 했다. 첫째, 5·18의 박제화, 기념행사화, 상업화 등에 대한 우려가 있고 작년에 나온 영화 『화려한 휴가』를 두고 상업화라는 관점에서 논란이 있었는데, 이 영화에 대한 견해는? 둘째, 5·18공동체가 권리, 법, 정의(ius)를 지양하는 것으로 이념화했는데 참된 만남의 단계에서 법의 기능은 무엇인가?


김 교수는 『화려한 휴가』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표현매체에 따라 아름다움의 수준이 다르지만,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5·18을 회상할 수 있었다면 충분히 의미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영화는 어떤 아름다움의 수준일까 하는 점에 대해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육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에 적합한 장르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이 영화를 보고 가끔 쓸모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예술작품은 삶에 대한 이상적 형상화이기는 하지만 예술이 역사 그 자체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5·18 자체가 뛰어난 예술작품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참된 만남의 단계라고 해서 법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법은 자유와 권리라는 관점에서 모든 사람을 동등한 법적 주체로 보고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사람은 똑같지 않고 불균형하기 때문에 전제를 충족하지 못한다. 자본주의 시장이 교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교환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처럼, 법은 동등한 저울에 올릴 수 없는 것을 저울에 올린다. 우리 시대의 문제를 푸는 데 법적으로만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보다 인본주의적 방식으로 극복할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참된 만남의 진정한 의미


자기 자유와 권리를 위해 싸우는 용기보다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용기를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이타심을 본질로 보고 고급한 용기로 평가하는 것은 현실의 사람들이 대부분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또 자유와 권리 이념의 지양을 강조함으로써 전체주의로 흐를 우려는 없는가 하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우리 사회는 자유와 권리라는 관점에서도 아직 멀었고 또한 사회경제적 기초가 마련되어야 참된 만남의 공동체도 가능한 것 아니냐는 질문도 있었다.


김 교수는 참된 만남의 공동체가 이기심이나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헤겔적 의미의 지양은 그것을 간직하면서 그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사회경제적 조건이 갖추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계론적으로 그러한 조건이 갖추어진 후에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함석헌의 “신을 믿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다. 이웃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말을 인용했다.




박수를 보내며, 철학의 큰 흐름을 형성하길


5·18을 위와 같이 새로운 공동체의 계시로서 이념화하는 것은 철학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무리한 점이 없지 않지만 신선한 시도로 보인다. 그리고 글을 자기 용어로 쉽게 쓰는 것도 좋았다.


김 교수는 자기 자신을 서경식 씨와 비교하여 서경식 씨가 관찰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보고 냉철하게 증언하고 경고하는 입장이라면 자신은 행동자의 입장에서 역사를 살며 개입하고자 하는 입장이라고 했다. 그러한 삶의 자세도 바람직하다.


연구의 대상을 5·18에서 더 나아가 동학, 3·1운동, 제주 4·3항쟁, 4·19혁명 등 종적으로(김 교수는 이를 항쟁사를 통해 분열된 한국사를 깁는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참된 만남의 단계에서의 인간생활의 다양한 측면들과 법의 역학과 기능 등 횡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물론 만남의 범주나 새로운 공동체의 이념 자체도 더 정밀화할 필요도 있다.


김 교수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우리나라 철학계의 큰 흐름을 형성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