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공부모임과 월례회 2007년 회고

2007-12-25 55

민변 공부모임과 월례회 2007년 회고

민변 공부모임의 출범
올해 3월부터 민변에서 공부모임을 시작했다. 송호창 사무차장 등이 제안하고 집행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결정된 것으로 안다. 나는 공부모임을 만드는 과정의 논의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공부모임이 출범한 이후 그 취지에 공감하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출석해오고 있다.
진보진영이 두 차례 정권을 잡았으나 국민들의 열망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공부모임을 만들 당시에도 진보진영의 정권재창출은 요원해 보였고, 보수진영에 정권을 넘겨줄 것으로 예상되었었다. 결국 그 예상대로 되고 말았다. 위와 같이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진보진영의 준비부족도 중요한 원인의 하나임을 부정할 수 없다. 진보진영의 비전과 구체적인 정책 등을 장기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다양한 공부를 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에서 공부모임이 출발한 것으로 이해한다.
또한 법조실무에 매몰되어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책을 거의 읽지 못해서 한 마디로 무식해졌다. 사건의 굴레에서 벗어나 보다 넓고 높은 차원에서 인생과 사회를 사유해 볼 기회가 필요했다. 법조인이 된 이후 그런 여유를 갖지 못하였다. 사건 해결을 위한, 정책 결정을 위한 그런 실용적인 공부보다 앞선 단계의 인생과 역사와 예술과 철학과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근원적인 공부를 하고 싶은 욕구가 강렬했다. 공부모임은 회원들의 이런 욕구에 부응하기 위해 출범했다.

2주마다 책 1권씩 읽다
공부모임은 2주마다 책 1권씩을 읽고 자유 토론하는 형태로 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이시우 씨의 『민통선 평화기행』을 텍스트로 할 때에는 버스를 2대 대절해서 관련 단체의 안내를 받아 철원지역의 민통선 평화기행을 하기도 했다. 월례회와 겹치거나 휴가 중에는 좀 늦춰지기도 했다. 모임이 끝날 때 다음번 모임날짜를 정하는 형태로 진행해 왔다.
읽을 책은 구성원들이 의견을 모아 정한다. 간단하게 발제를 해줄 사람을 정하여 그 사람이 발제를 하고 자유토론을 한다. 개개 모임이 끝나면 후기를 정리해서 민변 홈페이지에 게재했는데, 후기작성자는 그 모임을 마칠 때 정했다.
공부모임은 올해 19회의 개최되었다. 19회의 모임 날짜와 읽은 책은 뒤에 정리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참고서적도 소개되었고,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저자의 경우에는 다른 책을 더 구입해서 읽기도 했다.

초청 강연으로 진행된 월례회
민변에서 회원들을 상대로 한 월례회는 전부터 있었다. 출석률이 저조하여 중간에 폐지된 적도 있었지만, 내가 사무총장으로 활동할 때 부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민변의 위원회가 돌아가면서 현안문제를 선정하여 발표한 후 토론하기도 하고, 외부 인사를 초청하여 강연을 듣기도 하는 등의 방법으로 진행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철저하게 외부 인사 초청 강연으로 진행했다. 민변 집행부는 주요 인사를 초청하여 강연을 듣고 질의응답 및 자유토론의 형태로 진행하고, 나중에 그 내용을 정리하여 책을 발간할 것을 구상했다. 그리고 초청강연자 선정 및 섭외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올해 외부 인사 초청 월례회는 10회 개최되었고, 영화 <우리 학교>를 단체 관람한 것도 일응 월례회의 하나로 보면 11회의 월례회를 가진 셈이다. 월례회 날짜와 강연자 그리고 참고로 구입해서 읽은 책은 뒤에 정리했다.

같이 공부하는 즐거움
공부모임에 참석하는 회원들은 대개 월례회에도 참석했다. 나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공부모임에 2회 불참했고, 월례회에는 4회 불참했다. 공부모임과 월례회로 인해 개인적으로는 법조인이 된 이후 가장 많은 (법률서적 이외의) 책을 읽은 한 해가 되었다.
공부모임에 출석률이 높은 회원들도 있고, 간헐적으로 참여하는 회원들도 있으며, 공부모임에는 직접 출석하지 않았지만 공부모임에서 정한 책을 구입해서 개별적으로 읽은 회원들도 있다. 회원이 아닌 사람에게도 개방되어 있어 교수 한 분이 몇 차례 참석한 적도 있었다.
유남영 부회장이 좌장 역을 맡고, 송호창 사무차장이 전체적인 진행 역을 맡았으며, 좌세준 변호사가 간사 역을 맡았다. 나, 김진욱 변호사, 강신하 변호사 등이 처음부터 꾸준히 출석하고 있고, 최근에 몇몇 회원이 고정적으로 출석하고 있다. 백승헌 회장님이나 민경한 변호사처럼 초창기에 고정적으로 출석하다가 최근에 뜸한 회원도 있다.
민변 공부모임은 고미숙 씨가 『공부의 달인』에서 말한 네트워크의 하나, 즉 사우(師友, 스승이면서 친구)들의 공동체로 볼 수 있다. 탈학교의 공부, 인생을 역전시키는 공부, 빈민계층도 자립시키는 인문학 공부, 그런 공부를 같이 하는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
공부모임이나 월례회가 끝난 후 2차로 자리를 옮겨 술 한 잔 마시는 것은 당연한 코스다. 역시 술을 같이 마시는 것과 그러지 않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술을 전혀 못하고 술자리가 부담스럽기만 하던 내가 왜 이렇게 변했나? 1달에 두 번 공부도 같이 하고, 술도 같이 먹을 수 있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즐거움인가?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고 토론을 하다
공부모임에서 올해 읽은 책들 및 월례회에서 초청한 강연자들은 그 분야가 매우 다양하다.
초끈이론을 다룬 과학책으로부터 시작해서 서양미술에 관한 책, 한시와 동양고전에 관한 책, 다양한 가치와 특히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들, 서양 중심 역사의 재해석에 관한 책들, 서양철학의 재해석과 새로운 코뮌주의의 모색에 관한 책, 민주주의에 관한 책들, 진보와 야만 그리고 원시사회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관한 책들, 우리 역사상 대표적 개혁정치가인 조광조를 재평가한 책, 우리의 전문분야인 법학분야의 미국헌법과 배심제에 관한 책 등등.
개인적으로는 『현금의 지배』를 끝까지 읽지 못했고, 『엘러건트 유니버스』는 끝까지 억지로 읽기는 했으나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서경식 씨의 『나의 서양미술순례』와 배심제 관련 『세계의 배심제도』는 내가 추천해서 채택되었고, 『미국헌법과 민주주의』는 이유정 변호사의 추천을 내가 공부모임에 전달하여 채택되었다. 서경식, 정민, 이진경, 고미숙 씨등의 경우에는 그들에게 매료되어 채택된 책 이외에도 다른 책들도 구입하여 읽었다. 신영복 선생의 『강의 – 나의 동양고전독법』은 신영복 선생이 계시는 곳으로 우리가 가서 직접 강의를 들을 것을 제안했지만 여의치 않았는지 채택되지 않았다.
너무 다양해서 일관성이 없고 산만한 것 아니냐, 좀 더 현실적인 분야에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다양한 분야를 훑은 것이 유익했다고 생각한다. 사고의 폭과 안목을 넓혀주었다. 조급해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5년 정도는 공부에 매진해야 할 상황이므로 차분하게 다양한 분야를 섭렵해도 좋을 것이다.

삶의 길섶에 숨어 있는 행운을 찾자
고미숙 씨의 『공부의 달인』에 삶의 길섶에 예기치 않은 행운이 숨겨져 있다는 말이 있다.
고미숙 씨 본인은 대학원에서 한국고전수업을 듣게 된 것이 그러한 숨은 행운을 찾은 것이라고 한다. 서경식 씨는 무작정 나선 유럽여행 중 벨기에 미술관에서 로베르 캄핀의 <캄비세스왕의 재판>이라는 그림을 본 이후 서양미술 순례를 하였다. 홍은택 씨는 의무로 살았던 인생의 전반전을 마치고 하프타임에 아메리카를 자전거로 횡단하는 여행을 하였다.
우리의 인생에도 그러한 행운이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다. 인생을 반전시키고, 삶을 즐겁게 하는 그런 행운을 공부모임에서 찾아보자.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적어도 5년 정도는 야인(野人)으로서, 자유인으로서 다양한 분야의 공부를 하고, 나무와 풀과 자연을 배우고 벗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민변에서도 평회원의 지위에서 필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머물고자 한다.

<공부모임 일자와 읽은 책>
① 3월 5일, 브라이언 파머 외, 『오늘의 세계적 가치』
② 3월 20일, 제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③ 4월 3일, 클라이브 폰팅, 『진보와 야만』
④ 4월 17일, 얼 쇼리스, 『희망의 인문학』
⑤ 5월 1일, 서경식, 『나의 서양미술 순례』
⑥ 5월 15일, 최장집,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같이 읽은 책 김동춘 『한국사회의 성찰』
⑦ 5월 29일, 브라이언 그린, 『엘러건트 유니버스』
⑧ 6월 12일, 정민, 『한시미학산책』, 같이 읽은 책 『죽비소리』, 『미쳐야 미친다』, 『비슷한 것은 가짜다』
⑨ 7월 7일, 이시우, 『민통선 평화기행』, 철원 민통선 순례, 같이 읽은 책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
⑩ 7월 19일, 이진경, 『철학과 굴뚝청소부』, 같이 읽은 책 『미-래의 맑스주의』
⑪ 8월 7일, 닐 비드마르 엮음, 『세계의 배심제도』, 같이 읽은 책 안경환·한인섭, 『배심제와 시민의 사법참여』
⑫ 8월 21일, 로버트 달, 『미국헌법과 민주주의』; 조지 레이코프, 『프레임전쟁』
⑬ 9월 4일, 삐에르 끌라스트르, 『폭력의 고고학』
⑭ 10월 9일, 마루야마 마사오,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
⑮ 10월 23일, 우석훈, 『88만원 세대』
⑯ 11월 6일, 신영복, 『강의 – 나의 동양고전독법』
⑰ 11월 23일, 니알 퍼거슨, 『현금의 지배』
⑱ 12월 11일, 이상성, 『조광조 – 한국도학의 태산북두』
⑲ 12월 26일, 고미숙, 『공부의 달인 – 호모 콩푸스』, 같이 읽은 책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월례회 일자와 초청 인사>
① 1월 29일, 이영미, <대중예술 속에 나타난 법>
② 2월 28일, 한홍구, <한국사회 진단 및 전망 찾기>
③ 3월 28일, 정수일, <문명은 충돌하는가>, 같이 읽은 책 『한국 속의 세계』 1-2
④ 4월 30일, 오한숙희, <부부성공시대>, 같이 읽은 책 『부부 살어? 말어?』
⑤ 5월 3일, 영화 <우리 학교> 단체 관람
⑥ 6월 27일, 서경식,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같이 읽은 책 『디아스포라 기행』, 『청춘의 사신(死神)』
⑦ 7월 24일, 박부권, <대학입시제도와 교육의 수월성>
⑧ 8월 28일, 김민웅, 『자유인의 풍경』, 같이 읽은 책 이수호 시집 『나의 배후는 너다』
⑨ 9월 18일, 손석희, <시사토론을 진단한다>
⑩ 10월 24일, 백낙청, <남북정상회담을 평가한다>
⑪ 11월 28일, 홍은택,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 같이 읽은 책 『서울라이더를 위한 안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