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한나라당의 KBS수신료 분리징수안은 즉시 철회되어야 한다

2003-11-25 205

한나라당은 2003. 10. 24. 자로 KBS수신료의 분리 징수를 내용으로 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제출하였다. 한나라당은 KBS 방송을 시청하지 않는 시청자에게까지 수신료를 강제납부케 하는 현행 방송법 규정은 불합리한 것으로서, 시청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KBS가 국민을 위한 공영방송의 올바른 기능과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수신료의 분리 징수가 필요하다는 것을 개정안의 제안 이유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개정안은 근본적으로 수신료의 기본 성격에 대한 잘못된 전제에서 입안된 것임을 우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수신료는 KBS 방송을 시청하는 것에 대한 대가로 지급하는 수수료나 시청료가 아니다. 수신료는 공영방송이라는 제도를 존속, 유지시키기 위해 필요한 재원 조성을 위하여 KBS 방송의 수신 여부를 불문하고 텔레비전 방송 수신을 위한 수신기를 소지한 자는 모두 그 납부 의무를 부담하는 특별부담금인 것이다. 이러한 수신료의 기본 성격 및 그 합헌성에 대하여는 이미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도 명백히 판단된 바 있다(1999. 5. 27. 선고 98헌바70 결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KBS수신료가 KBS 방송을 수신하는 자만이 부담하여야 할 수수료인 것처럼 전제하고, KBS 방송을 시청하지 않는 시청자들은 이를 부담하지 않는 것이 마땅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명백히 수신료의 존재 의의를 왜곡하여 여론을 호도하려는 시도에 다름 아닐 것이다.

또한, 공영방송의 올바른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는 것과 수신료를 분리 징수하는 것이 어떠한 연관성을 가지는 문제인지를 전혀 납득할 수 없다. 공영방송이 그 공익적 기능을 다하기 위하여는 무엇보다 재정적인 독립성이 확보되어야 함은 불문의 사실이다. 또한, KBS의 재정구조는 이미 공영방송으로서는 지나치게 광고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도 모두가 동의하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나마 수신료 징수의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마련되었던 수신료 통합 징수마저 아무런 대안 없이 방송법 개정으로 금지하겠다는 발상은, 공영방송의 독립적 재원 조성을 법률로써 금지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고, 그 결과는 명약관화하다. 이미 60%의 재원을 광고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공영방송은 수신료를 제대로 징수하지 못함으로 인한 재원 부족분을 보충하기 위하여 광고수입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고, 그 결과 방송의 공익성보다는 시청률과 광고주를 의식한 공영방송의 상업화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결국 국민적 통합과 국민 대중의 민주적 의견수렴을 위한 필수 제도로서 우리 사회가 선택한 공영방송이라는 제도 자체의 존재 의의와 공익성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것임은 재론을 요하지 않는다.

월 2500원의 KBS의 수신료는 여타 외국의 공영방송 수신료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10-20%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서, 시급히 이를 인상하여 공영방송의 재정적 독립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 대하여 그간 학계나 방송계에서 이견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이번 개정안은 이러한 일치된 견해와는 정반대로 그나마 최소한의 수준인 수신료마저 제대로 징수할 수 없도록 법제화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도대체 어떠한 의도로 마련되었으며,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개정안인지 깊은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번 한나라당의 방송법 개정안 제출이 KBS의 신임 사장 선임 과정과 <한국사회를 말한다>를 비롯한 일련의 KBS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한나라당의 계속적인 정치 공세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한나라당의 그러한 정치 공세가 정당한 이의 제기라고 보지 않으며, 나아가 특정인이나 특정 프로그램에 대한 한나라당의 시각이 어떠하든 간에, 그것이 공영방송 제도의 근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이번 방송법 개정안을 정당화 할 수 있는 어떠한 근거도 될 수 없는 것임을 분명히 지적하고자 한다.

한나라당은 공영방송의 올바른 기능과 역할을 말하면서도, 그러한 기능을 담보할 수 있는 공영방송 재원의 독립성 확보, 수신료 정상화, 수신료의 징수 효율성 제고 등과 같은 문제들에 대하여는 아무런 대안의 제시도 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중대한 문제들에 대한 총체적이고 성실한 검토 없이 ‘KBS 방송을 보지 않는 자는 수신료도 낼 필요가 없다’는 식의 단편적이고 왜곡된 발상에 기초하여 제출된 이번 개정안은, 공영방송의 존립 기반이 되는 재정의 독립성을 심대하게 침해하여 공영방송의 실질적인 해체를 초래하고 광고료를 지불하는 상업자본에 대한 공영방송의 종속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실로 위험하고도 무책임한 제안이다. 한나라당은 국정의 절반을 책임지는 국회의 제1당으로서 이번 방송법 개정안이 초래할 수 있는 그와 같은 중대한 위험을 지적하는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즉시 방송법 개정안을 철회하기 바란다. 또한 차제에, 공영방송의 독자적인 재원 확보와 그를 통한 독립성의 강화를 담보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방안은 무엇인지, 그 대안의 모색에 보다 성실하고 발전적인 자세로 노력하는 책임있는 제1정당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다시 한번 촉구한다.

2003. 11. 25.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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