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무원칙한 강제추방을 중단하라!

2003-12-04 183

정부가 11월 17일부터 시작한 ‘체류 4년 이상 이주 노동자 강제추방’ 정책이 이주 노동자들의 농성 그리고 영세업체들의 급작스런 인력 부족 등으로 큰 문제가 되더니, 스리랑카 출신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이주노동자들을 절망으로 몰아넣고 있다.

정부는 고용허가제를 통하여 외국 인력의 합법적 사용과 취업을 위한 체류 자격을 보장하고, 그러한 절차를 밟지 않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정부의 취지를 이해하고 있으며, 그것이 제대로 시행될 경우 이주노동자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도 수긍하고 있다. 또한 이주노동자는 우리나라 고용시장의 인력 수급 현황을 고려하여 ‘보충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점에도 원칙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만으로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와 노무를 제공해 온 이주노동자들을 무조건 추방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1991년이래 산업에 필요한 단순 기능 인력을 외국으로부터 들여왔고, 그 후 13년 동안 합법적인 외국 인력 정책을 세우는 대신 기형적인 ‘산업연수생 제도’를 통해 미등록 노동자를 양성하여 왔다. 또한 그렇게 양성된 불법체류자를 저임금 노동력으로 손쉽게 사용하는 상황을 전사회적으로 묵인해 왔다. 그 과정에서 유입된 이주노동자들은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들어오면서 송출비리 때문에 많게는 수 천 만원의 빚을 져야 했고, 한국에 들어온 이후에도 기형적인 무규범 상태를 악용하는 사용자들로 인해 열악한 근무환경과 조건을 견뎌야 했다. 따라서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었다는 이유로 이들을 하루아침에 내모는 것은 결국 이들을 이용할 만큼 이용해먹고 빚만 잔뜩 짊어진 채 돌아가라는 반인권적 처사에 다름 아니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고용허가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로, 고용 시장 현황과 필요한 인력 수요에 대한 엄밀한 조사와 실제 중소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노무의 성격과 규모가 산출되어야 할 것인데, 현행 법률 부칙에서 적용하고 있는 ‘4년 미만 체류자’라는 기준이나 강제추방 조치를 하면서 ‘제조업만 제외’하여 무조건 추방한다고 하는 것은 그러한 고용허가제의 본래 취지와도 맞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먼저 필요한 외국 인력의 규모와 업무의 성격에 관한 엄밀한 조사와 합리적 의사결정이 있어야 할 것이고, 만약 그 결과 큰 문제가 없다면 기존 체류자들에게 취업의 우선 기회를 주는 것이 타당하다. 그들은 종래 우리의 잘못된 인력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일 뿐 아니라 한국어와 한국 실정에 익숙하여 산업 발전과 사회의 다양성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렇게 장기적인 체류를 허용하면 가족들도 이주하여 영구 이주하면서 사회문제가 된다고 우려하나, 가족 유입이나 영주 문제는 출입국 관리·국적 정책의 원칙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일 뿐 아니라, 그러한 문제가 무조건 외국인력을 단기 로테이션으로 돌린다고 하여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정부가 고용 허가제의 내용·규모 등에 관한 구체적 계획이나 자료를 가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체류 기간이라는 획일적인 잣대로 임시 체류 자격을 제한하고, 대상에서 제외된 노동자들에 대해 비인간적인 검거·추방 조치를 하는 것을 극력 반대한다. 고용허가제는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이미 법령에 규정되었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따라야 하는 목적이 아니라, 합리적인 외국인력 정책과 일단 도입된 이주노동자들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합리적인 자세를 촉구한다.

2003. 12. 4.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최 병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