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변화와 개혁을 거부하는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 행사에 대하여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는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권 행사에 대하여 참담함을 금치 못한다>
8월 12일 열린 대법관제청 자문위원회에서 강금실 법무장관과 박재승 대한변호사협회장이 회의 도중 퇴장하고, 자문위원직을 사퇴하는 등 대법원장의 대법관 제청절차가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당초 대법관제청 자문위원회는 대법원장의 제청권 행사와 관련하여 그 동안 폐쇄적으로 그리고 서열위주로 행해진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 인사관행을 타파하고 우리사회의 변화된 현실과 사회적 다양성을 담아내기 위한 대법원 나름의 고민의 산물이라고 이해되었다. 그에 따라 국민과 언론, 시민사회단체 등은 사법부가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뜻을 자문위원회라는 기구를 통해 반영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그러한 기대 하에 대한변협은 회원들의 의견수렴절차를 거쳐 개혁적인 인사로 평가되는 대법관 후보 2인을 추천한 바 있고, 시민사회단체들도 개혁성, 도덕성, 전문성 등을 겸비한 것으로 평가된 6인의 후보를 시민사회단체와 법조계, 학계, 법조기자 등의 추천과정 등을 거쳐 발표하였다. 자문위원회의 논의나 각계의 후보추천 활동 등은 모두 사회적 다양성을 반영한 대법원의 구성과 나아가 이를 통한 사법개혁의 추진 등을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을 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장은 이러한 국민과 언론 및 시민사회단체 등의 기대를 헛되게 만들고, 대법관제청 자문위원회를 당장의 소나기를 피하는 식의 요식적인 기구로 전락시켜버렸다. 즉, 대법원장은 자문위원회에 3인의 대법관 후보를 추천하고 토론을 요청했으나 대법원장이 추천한 후보들은 모두 법원 내부의 기수와 서열 그리고 성적에 따른 기존의 폐쇄적이고 관료적인 인사관행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는 인사들뿐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퇴파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다.
대법원장은 변화와 개혁을 요구해온 국민들의 여론을 승진구조에 의거한 사법관료제의 유지를 위해 무시해버리고 말았다. 이는 대법원장 스스로 변화와 개혁이 두렵고 사회변화에 대해서는 둔감하기 그지없다는 사실을 자인한 것이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사회가 엄청나게 다양한 구조로 변화하였음에도 여전히 과거 독재정권 시절부터 이어져온 사법관료제의 전통을 수호하고야 말겠다는 대법원장의 반시대적 의지에 우리는 매우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사법부가 변화를 선도하는 곳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변화의 뒤꽁무니 정도는 따라와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사법관료제의 유지보다 국민의 의사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왜 대법원장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가. 계속해서 변화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그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변화를 추구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는 결과로, 즉 타율에 의한 사법개혁으로 나타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법원장은 사회적, 가치적 다양성을 반영한 대법원의 구성과 사법관료제의 개혁이라는 관점에서 대법관 제청권을 행사하여야 할 것이다.
2003. 8. 13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최병모
첨부파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