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국가인권위원회의 존재이유를 생각한다
[논 평]
국가인권위원회의 존재이유를 생각한다
새 정부 들어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라 함)의 존재 이유에 대하여 많은 논란이 제기되었다. 지난 5월 이후 수많은 시민들이 마구잡이로 연행되고 폭행당하는 현실 속에서 인권위는 유독 침묵하였다. 수사기관들이 정부의 수족처럼 움직일 때, 국민들은 마지막 희망으로 인권위를 바라보았고 100건이 넘는 진정을 제기했지만 인권위는 쉬이 답을 내놓지 않았다.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인권위는 정부 출범 초부터 대통령직속기구화와 구조조정 논란에 휩싸였다. 새로운 정부는 인권위의 독자적 위상과 역할을 그리 달갑지 않게 여겨 왔다. 그러나, ‘인권’은 보수나 진보 누구의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가치이며, 인권위는 국제적 합의와 국내적 결단에 의해 탄생한 우리 모두의 자산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도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정하고 있다. 따라서, 그것이 어떠한 권력이든 오로지 ‘인권’의 기준으로 권력기관의 인권침해를 감시하는 것이 인권위의 본연적 임무이고 존재이유이다.
인권위가 27일 촛불집회에 대한 경찰의 인권침해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민변은 인권위가 법에 정해진 인권기구로서의 역할을 방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이를 환영한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절반에 불과하다. 경찰청 간부 몇몇을 경고하는 것으로 사안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지난 촛불시위는 일회성 사건이 아니었으며 몇 달을 두고 계속된 국민들의 정당하고도 평화로운 집회와 의사표현에 대한 계획적이고도 폭력적인 진압이었다. 그 진압은 경찰수뇌부의 지시와 의도가 실리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폭행당한 시민들과 불교계는 물론 각 정당까지 나서 그 책임자인 경찰청장의 책임을 따졌음에도 정작 인권위가 경찰청장의 책임을 묻지 않은 것은 사안의 본질을 깊이 고민해 보지 않았거나 정치 현실과 타협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130여건의 개별 진정사안에 대해서도 판단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진정된 사안 중 이번 결정 외에도 △서울광장 원천봉쇄 등 노골적 집회방해행위 △사복경찰의 무차별적 사진촬영 △CCTV의 채증목적 사용 △변호인접견교통권침해행위 △속옷탈의 강요 등 유치장 내 인권침해 △색소물대포 살포 및 이를 이용한 무차별 연행 등 많은 사안들이 조속한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나아가, 인권위는 △집회단순참가자에 대한 48시간 구금 등 많은 인권침해 사안에 대해서도 직권으로 조사하여야 하며, 촛불집회에서의 인권침해를 야기한 본질적 원인인 △야간옥외집회금지규정을 비롯한 현행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의 인권침해성 그리고 △ 검찰의 촛불시민들에 대한 편파수사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자신의 책임을 방기하여서는 안된다.
뒤늦고도 부족하지만 고뇌에 찬 결정을 내린 인권위를 보면서 한편으로 우리는 동시에 김양원 인권위원의 자격 논란과 관련된 인권위의 무대책과 이를 항의하는 인권활동가를 경찰력으로 막아서는 인권위를 보게 된다. 어느 것이 인권위 본연의 모습인가. 인권위는 깊이 고민하여야 한다. 어느 누구의 눈치를 보면서 ‘인권’의 가치를 다른 것에 양보하기 시작할 때, 인권위는 앞으로 서 있을 곳을 찾지 못할 것이다.
2008년 10월 28일
회 장 백 승 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