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밖의민변]-부부강간죄 어떻게 보아야 하나

2001-11-27 95

– 헌법상 부부 사생활권·신체자유 보호해야 –

부부강간죄의 도입을 반대하는 주된 논지는, 부부간의 성관계는 본질적 부분으로 남편이 설령 아내를 폭행으로 관계를 맺었다 하더라도 구타, 강요죄 등의 다른 죄명으로 처벌하면 되고, 부부강간을 인정하면 오히려 내밀한 사생활 영역에 국가의 간섭을 불러들이고, 남용의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부강간죄를 인정하지 않는 논리는 영미법국가에서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으나 지금은 완전히 폐지된 ‘marital rape exemption’을 지지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커먼로 국가에서 부부간 강간죄를 면제한 ‘marital rape exemption’의 이유로 종종 인용되는 영국의 Matthew Hale 경의 글은, 부부강간죄를 인정하지 않는 논리가 얼마나 남성중심적이고 여성종속적인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결혼은 남편에게 어떤 경우에든(동의를 받았든 폭력에 의하든) 아내와 성관계를 할 권리가 있으며, 만약 아내가 거부하면 남편의 이러한 특권이 침해되며, 아내는 결혼과 동시에 육체적인 자기결정권에 대한 모든 권리를 남편에게 포기했으며, 아내는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20세기에 들어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변화되고 헌법상 평등권이 보장된 사회에서도, 여전히 아내강간 면책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새롭게 포장되어 나온 이론이 ‘사생활 보호’와 ‘남용의 위험’ 이론이다. 아내구타에 있어서도 한때 국가는 가정문제라는 이유로 개입을 꺼렸고, 이 때문에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초래하여 이제는 모든 국가가 가정폭력에 적극 개입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내강간의 문제도 사생활보호를 이유로 외면하면, 결국 남편의 사생활은 보호하겠지만, 아내의 보호는 외면된다. 실제로 기혼여성의 경우 낯선 사람에 의한 강간보다 남편에 의한 강간으로 훨씬 더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우리의 경우에도 나왔다.

아내를 강간하면 어떤 경우에도 강간죄가 아닌 물리적 수단에 따른 폭행 등에 대해서만 문제삼아야 한다는 논지는, ‘사생활 보호’라는 포장을 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커먼로의 ‘marital rape exemption’의 존재이유와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서구의 여성운동은 ‘marital rape exemption’을 없애는데 주력했고, 아내강간을 처벌하지 않는 사회는 기혼여성의 지위를 남편에게 성적으로 종속시키고, 기혼여성의 사생활권과 신체의 자유 등 헌법상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며, 기혼여성을 차별하는 것이 된다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시키는데 성공했다.

그 결과 미국의 모든 50개 주에서 커먼로의 ‘marital rape exemption’을 폐지했으며, 아내강간죄를 명문규정화하여 처벌하고 있다. 독일에서도 강간죄의 성립범위를 ‘혼인외의 성교’로 못박아 처를 강간죄의 객체에서 제외한 적이 있었지만, 1997년 법을 개정하여 결혼여부에 관계없이 강간죄 성립을 인정하고 있다. 이탈리아, 영국, 독일, 프랑스도 부부강간죄가 도입되었다.

미국의 여러 주의 대법원은 ‘부부강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기혼여성과 미혼여성을 차별하는 평등권 침해이며, 기혼여성에게 자신의 신체의 고결함을 유지할 권리, 출산에 대한 통제권리, 성적자기결정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배우자 강간에 대한 입증의 어려움이나 남용의 위험을 방지하는 보장책으로, 미국에서는 배우자 강간은 별거중, 명백히 성관계를 거부한 경우, 이혼소송 중이거나 접근금지기간, 이혼의사를 표시한 경우 등에 주로 인정하고 있으며, 반드시 친고죄로 하고 있고 고소기간은 10일에서 3개월 등 짧은 기간으로 하고 있다. 배우자강간죄의 법정형을 일반강간죄보다 달리 완화하는 경우도 있다.

배우자간의 강간죄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여성을 차별하고 남성에 종속시키는 사회이다. 1999년 유엔인권이사회가 한국정부에 보낸 2차보고서에 대한 심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아내강간이 범죄로 성립되지 않는 점에 대해 우려를 표시한 바가 있다.

배우자 강간을 처벌하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우리 형법의 강간죄 규정에 배우자를 강간의 객체에서 제외하는 문구가 없기 때문에 별도의 배우자강간죄 규정의 신설이 불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대법원이 1970년에 실질적 부부관계가 있는 배우자간의 강간을 배척한 적이 있고, 검찰에서도 배우자 강간죄로 기소를 전혀 하지 않고 있어, 사실상 우리의 경우에는 ‘배우자강간죄 면책특권’이 인정되는 것과 다름없다. 따라서 형법의 규정만으로 배우자강간을 처벌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배우자강간죄의 별도 규정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