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기고 2 : “더 이상 아이에게 곰국을 먹이지 않겠다”

2007-03-21 116

  “더 이상 아이에게 곰국을 먹이지 않겠다”  
  [한미FTA의 사법충격·2] FTA와 먹을거리

2007-03-21 오전 11:37:55    

  
美 쇠고기 검역 기준 완화할 이유 없어
  
  “곰국 좀 먹일까?” 아이들에게 뭔가 잘 먹여야 할 때면 아내가 곧잘 하는 말이다. “좋지!” 나는 늘 찬성이다. 곰국은 어린 시절부터 귀한 음식이었다.
  
  소뼈를 고아 먹고, 소의 갈비를 즐기는 것은 우리 민족만의 독특한 식생활이다. 이런 소뼈가 지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핵심 쟁점이 되었다. 미국은 뼈가 붙은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 금지하는 한국의 위생 검역 기준을 바꾸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한미 FTA는 물 건너간다고 한국을 압박했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미국의 광우병 관리 등급을 한 단계 높일 것으로 예상되자, 미국은 한국의 현행 위생 검역 기준이 국제 규정을 위반했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미국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다 아시다시피,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창설 회원국이다. 모든 회원국은 자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는 데에 적합한 수준으로 검역 조치를 할 권리가 있다(WTO 위생검역협정 제 5조).
  
  게다가 국제수역사무국의 기준보다 더 엄격한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으며 그 기준을 이유로 국민 건강과 생명의 보호 수준 변경을 요구당하지 않는다. 더욱이 그 기준의 준수가 원칙에 해당하지도 않는다. 그 기준보다 더 엄격한 조치를 취하는 것은 원칙에 대한 예외가 아니라 동등한 선택사항이다(WTO의 유럽연합-호르몬 사건 항소심 판결문 104절).
  
  뼈를 발라낸 살코기만을 미국에서 수입할 수 있다고 정한 현행 위생 검역 기준은 농림부의 현지 조사와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마련된 것이다. 농림부는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라 미국산 쇠고기를 대상으로 모두 8단계의 ‘수입 위험 분석’을 진행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위생 검역 기준이다. 이처럼 농림부의 과학적 근거가 있는 한, 한국의 현행 위생 검역 기준은 WTO 규정에도 적법하다(위생검역협정 제3조).
  
  국제수역사무국이 미국의 광우병 관리 등급을 한 단계 상향 조정한 것과 관계 없이, 한국은 계속 현행 수입 위생 조건을 유지할 수 있다. 일본이 미국의 압력을 뿌리치는 것은 이러한 통상법적 구조 때문이다. 만약 농림부가 국제수역사무국의 미국 광우병 관리 등급을 빌미로 위생 검역 기준을 바꿔야 한다면, 그것은 농림부의 조사가 과학적으로 엉터리였다는 말과 같다.
  
  농업 회생 싹을 자르는 한미 FTA  
  
  소뼈 논란을 보면, 한미 FTA가 우리 농업과 먹을거리에 얼마나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다. 한국이 수입 위생 조건을 개정해 주어, 광우병 발생국가인 미국산 소뼈가 한국에 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뼈 속에 들어있는 골수를 통해 ‘인간광우병(vCJD)’에 전염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한국은 뼈 없는 살코기만을 수입하기로 했다. 물론 살코기라고 100% 안전한 것은 아니다.
  
  한미 FTA의 충격은 광우병에 머무르지 않는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 위생검역위원회를 상설기구로 설치하자는 미국의 요구도 관철되었다. 이로써 미국은 한국의 위생 검역 조치에 좀 더 쉽게 개입할 제도적 통로를 확보했다. 게다가 지역 조항이라는 것도 관철돼, 비록 미국에서 동물 질병이 발생하더라도, 모든 미국산에 대해 일률적으로 위생 검역 조치를 취할 수 없고 해당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야만 한다.
  
  미국이 이토록 광우병 쇠고기 수입 금지와 같은 위생 검역 조치를 압박하는 까닭은 바로 이 지점이 미국 농업의 가장 큰 약점인 동시에 한국 농업의 잠재적 활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소비자는 그저 싼 값으로 먹을거리를 사 먹지 않는다. 갈수록 많은 소비자들이 식품의 안전성을 가격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농업의 장래를 담보하는 중요한 식품 안전 문제를 취급하는 곳이 바로 위생 검역 조치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광우병 발생 원인을 미국의 공장형 축산에서 찾고 있다. 어린 송아지에게 소의 분유와, 소의 피로 만든 영양제와, 동물 육골분 사료를 먹이는 축산 방식이 광우병의 출발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장형 축산이야말로 미국 축산업의 이른바 국제 경쟁력의 핵심이다. 이렇게 미국의 축산은 식품 안전 문제에 매우 취약하다. 그래서 미국은 위생 검역 조치의 기준에 집착한다.
  
  한미 FTA는 농업강국인 미국에게 과거 그 어느 FTA보다도 더 활짝 문을 열어 주고 있다. 그 결과 한국 농업은 식품 안전과 지속 가능성이라는 새로운 활로를 열어가는 데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렵게 됐다. 자,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도 아이에게 곰국을 계속 먹이려면 도시에 사는 이들부터 이런 식의 한미 FTA에 반대해야 한다.        
  

   송기호/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