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앞 우익단체 폭력사건 사후처리경과

2008-06-25 119

지난 23일 밤 KBS 앞에서 벌어진 뉴라이트 단체의 조직적 폭력행위에 대한 대책과 현장에서 발견된 범행의 증거물을 처리하는 것과 관련하여 현장에 같이 있던 민변 소속 황희석 변호사입니다. 어제(24일) 오후까지의 경과를 알려드리고 자합니다.


아시다시피 23일 밤 HID, 고엽제피해자연합회, 어버이연합회 등의 소위 뉴라이트 단체회원들이 KBS 본관 앞에서 1인 촛불시위를 하던 시민을 둘러싸고 폭행한 사건이 있었고, 그 소식을 접한 촛불들이 집결하여 이를 물리친 바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쇠파이프, 각목, 소화기, 방독면 등을 실은 2.5톤 트럭 한 대와 휘발유와 시너를 담은 승합차 한 대가 발견되었습니다.



제가 이 소식을 접하고 현장에 도착한 시각은 밤 11시 40분경. 저보다 먼저 도착한 민변 소속 다른 2분의 변호사님이 계셨고, 사태를 파악한 저희들은 현장에 출동하여 동쪽 편에서 멀찌감치 쳐다보고 있던 여의도지구대 소속 모 경찰관 2명에게 위 폭력행위의 증거물을 압수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구대 소속 경찰관은 ‘우리가 저 차를 어떻게 끌고 가나? 지구대에는 둘 곳도 없다’ ‘이 사건은 이미 영등포경찰서 지능팀에게 접수되었으니 자신들의 소관사항이 아니니 그 쪽에 알아봐라’고 하면서 긴급압수를 거부하였습니다. 출동지시를 받은 그 경찰관 2명으로서는 당연히 긴급압수를 하여야 하지만, 무슨 지시가 있었던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표정을 보니, 참 불쌍하기까지 하였습니다만, 그건 그렇고 압수 자체를 거부하는 경찰관을 끌고 가서 압수하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영등포경찰서의 지능팀 전화번호를 알아내 지능팀장이라는 경찰과 통화를 하고서는 각목과 쇠파이프 등 위험한 물건이 실린 증거물을 압수해 갈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쪽 답변은 ‘그 물건이 범행에 사용되었거나 관련되었는지 아직 모른다’ ‘압수영장 없이 압수하려면 긴급압수 밖에 없는데, 긴급성이 없지 않으냐’며 발을 빼려고 하였습니다.


 


참고로 긴급압수란 범행 중 또는 범행직후의 범죄장소에서 긴급을 요하여 법원판사의 영장을 받을 수 없는 때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는 경우로서, 긴급성이라는 것은 범죄와 관련성이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음에도 압수영장을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뉴라이트 단체들이 각목을 이용해 시민들을 폭행하였고, 그 때 사용한 각목이 바로 현장에 남겨진 트럭에 실려 있던 것이 확실하며, 이를 압수하기 위하여 영장을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었음은 명백하므로, 저희 변호사 3명이 긴급압수의 요건에 해당된다고 설명해 보았지만, 이들 경찰은 검토해 보고 연락해 주겠다고 하면서 저희들을 마냥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30분이 넘도록 연락이 없어 기다리다 못한 제가 전화를 하자 영등포서 지능팀장이라는 자는 트럭과 그 안의 위험한 물건들이 긴급압수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압수하지 못하겠다는 답변만 한 채 그냥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그 시각이 밤 1시 40분경. 그렇게 2시간이 흐른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저희 변호사들은 각목과 쇠파이프 등의 증거물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폭력행위의 증거물로 사용되지도 않을 것이고 뉴라이트 단체들이 회수해 가거나 강제로 빼앗아 갈 수도 있으며,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유혈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우려하여 경찰에 의한 압수를 포기하고 촛불들이 직접 증거물로 사용하라고 경찰에 제출하는 소위 ‘임의제출’방식을 취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촛불들에게 설명하였으며, 촛불들도 모두 이에 동의하여 견인차를 이용하여 차량 2대를 영등포경찰서에 인계하기로 하였습니다.


참고로 임의제출이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도 피의자 기타인의 유류한 물건이나 소유자?소지자 또는 보관자가 임의로 제출한 물건을 영장 없이 압수할 수 있다”는 형사소송법 제218조에 따른 것으로, 뉴라이트단체들이 범행현장에 놔두고 도주한 범행도구는 명백히 피의자가 유류한 물건이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이를 소지하고 보관하게 된 촛불시민들이 임의로 제출하면 경찰들은 이를 영장 없이 압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의도지구대장이라는 경찰이 나타나 경찰서장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압수를 할 것인지 아닌지 지휘를 받을 테니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였고 그렇지 않아도 차를 견인하기 위하여 나타난 견인차가 무슨 이유인지 되돌아가는 바람에 잠시 더 두고 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3시까지 기다려 보았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할 수 없이 지구대 경찰관에게 어떤 결론을 내렸냐고 재촉하자, ‘경찰이 압수를 할 수는 없고, 시민들이 임의제출하면 받도록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이에 당초의 결정대로 임의제출하는 방식으로 증거물을 인계하기로 하고, 여의도지구대 소속 경찰에게 ‘견인차량이 느리게 갈 수밖에 없으니 경찰차가 앞에서 선도를 해 달라’고 요청하자, 이들 경찰도 동의하여, 마침 새로이 온 레카차를 이용하여 영등포 경찰서로 출발할 채비를 마쳤습니다. 물론 영등포서로 가는 도중 뉴라이트 단체들이 덮쳐 이 증거물을 탈취할 가능성에 대비하여 수십명의 시민들이 차량과 도보로 동행하기로 하였습니다.그러다 한가지 웃기는 일이 벌어졌는데, 마침내 출발하는 순간 당초 선도하기로 하여 레카차 앞에서 기다리던 경찰차가 사라지고 눈에 보이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행여나가 역시나’가 되는 순간이어서 쓴웃음밖에 나오질 않더군요.


 


아무튼 대부분의 시민들은 걸어서, 몇몇 시민들은 차량에 타고서 걸어가는 시민들과 증거물의 파손을 막기 위하여 서행하는 레카차의 속도에 맞추기 위하여 거북이 걸음으로 진행하면소 증거물 차량을 둘러싼 채 영등포서로 갔습니다.


 


그러나 영등포서에 도착하자 경찰이 순순히 위 증거물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가 무색하게 영등포서의 출입구는 3열이 넘는 전경들로 온통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영등포서 앞 길거리에 견인차를 세워두고 폭력행위를 고소하고 그 증거물을 제출하러 온 피해자와 그 변호사, 그리고 당시 상황을 목격하고 촬영한 증인들이라며 출입하려 하자, 경찰들은 저와 피해자 몇 명만을 들여보낸 채 나머지 시민들의 출입을 봉쇄하였습니다. 피해를 고소하고 증거물을 제출하며 당시 상황을 진술하러 온 증인들의 출입 자체를 막다니, 우리가 마치 경찰서에 행패 부리러 온 사람마냥 취급받는 순간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초 우리가 원했던 대로 피해자의 진술을 받고 견인차로 끌고 온 트럭과 그 안의 흉기들을 증거물로 제출하고자 이를 경찰서 안으로 들여놓으려 하자 이를 극구 막았는데, 더욱 가관인 것은 지능팀장이라는 자의 제지이유입니다. 아까 전화로 ‘이들 물건이 범죄와의 관련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긴급압수의 긴급성이 없다’며 긴급압수를 거부했었는데, 피해자가 임의제출하려 하자, 이제는 한 술 더 떠 “임의제출은 트럭과 물건의 소유자가 하는 것이지, 소유자가 아닌 시민들이 제출하는 것은 받을 수가 없다”며 저더러 “변호사님이 불법을 자행하면 안 되죠”라고 친절하게 준법정신을 일깨워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도 기가 막혀 임의제출하는데 왜 꼭 소유자만 할 수 있느냐며 형사소송법 규정을 얘기해봐도 도통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무식하면 용감하죠. 할 수 없이 쉬운 말로 “내가 당신을 칼로 찌르고 도망갔는데, 당신이 현장에서 주운 내 소유의 칼을 당신 소유가 아니라서 임의제출할 수 없다는 말이냐?”고 묻자, 이 경찰 하는 말, “그건 칼이쟎아요”라고 합니다. 일순간 웃을 수도 없고 해서, “좋다, 그러면 내가 칼이 아닌 각목으로 당신을 때리고 도망을 갔는데, 그 각목이 당신 소유가 아니면 당신은 각목을 증거물로 임의제출할 수 없냐?”고 묻자,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안된답니다. 이런 걸 보고 “소 귀에 경 읽기”라고 하죠. 혹시 광우병에 걸린 소는 아닐지…


 


그러는 사이 저와 함께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던 피해자와 몇몇 사람들은 밖으로 쫓겨났고, 트럭과 그 안의 물건을 임의제출 받으라고 고함을 지르자 물건만 남겨두고 경찰서 밖으로 나가라고만 합니다. 물론 당초 의도했던 대로 트럭과 그 안의 물건을 인계하면 되지만, 자칫 물건만 인계했다가는 나중에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갑자기 들며, 이대로 그냥 인계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시민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의견을 물으니 다시 KBS 앞으로 철수하자는 의견에 일치를 보았습니다. 누군가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것”이라고 말하였는데, 정말 그 말이 딱 어울리는 상황입니다. 그 시각이 이미 새벽 4시 가량. 또다시 KBS 앞으로 트럭을 견인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할 수 없이 많은 시민들은 걸어서 트럭을 호위하는 가운데 다시 KBS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남아 있던 시민들에게 영등포서에서의 상황을 설명하였고 촛불시민들은 아침에 날이 밝으면 언론사들을 불러 뉴라이트단체의 조직적 폭력행위와 경찰의 비호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로 하고, 그 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트럭과 그 안의 증거물을 지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는 트럭과 승합차를 힘으로 탈취하려는 시도가 있을 것을 우려하여 촛불시민들이 모인 장소의 양 옆으로 감시단을 세우고, 트럭의 앞뒤로 시민들의 차량을 세워 트럭을 운전해 갈 수 없도록 조치를 한 채 모두들 새벽의 찬공기 속에 뜬 눈으로 지새웠으며, 날이 밝자 대책회의 운영진과 모여 기자회견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어느덧 날은 밝고 언제 차가운 공기가 우리를 감싸고 있었던가 의심이 갈 정도로 금방 따가운 햇살이 내려 쬐는 10시를 앞두고 이 트럭과 그 안의 물건을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를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기자회견은 기자회견이고 경찰이 이를 증거물로 인계받지 않는다고 할 때 현장에 모인 촛불시민들이 이를 무작정 계속 지키고 있을 수만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 모두 공감하는 가운데 저는 “경찰이 임의제출을 받지 않으니 도리 없이 검찰청으로 가져가자, 만약 검찰청도 안 받겠다고 하면 검찰총장이 있는 대검찰청으로 가져가고, 검찰총장도 안 받겠다면 법무부장관한테, 법무부장관도 안 받겠다면, 할 수 없이 청와대로 가져가자”고 제안하였고, 이에 일단 기자회견이 끝나는 대로 관할검찰청인 남부지검으로 트럭을 가져가기로 모두들 뜻을 모았습니다.


 


10시에는 계획했던 대로 언론사들이 모인 가운데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사실 트럭 속에 각목과 쇠파이프 등이 실려 있다는 것은 트럭 적재함 문을 열어 알고는 있었지만, 트럭이 가득 차있어 어떤 물건이 얼마나 있는지는 몰랐으나, 기자회견을 하면서 트럭 뒷문을 열고 물건을 끄집어내자 쇠파이프도 여러 종류별로 나올 뿐만 아니라 쇠창살과 톱까지 참으로 별별 물건들이 다 들어 있었습니다.


 


그 사이 민변의 다른 변호사님들도 합류하여 뉴라이트단체 가해자에 대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죄의 고소와 영등포경찰서장과 담당 경찰관의 직무유기죄 등에 대한 고소를 위한 고소장 준비와 증거물의 임의제출 준비에 들어갔고, 기자회견을 마치자 다시 저와 민변의 이광철 변호사님은 시민들과 함께 아까 결의한 대로 차량에 나누어 타고 견인차를 이용하여 트럭과 승합차를 견인하고서 남부지검을 향했습니다.


 


남부지검 앞에는 역시 예상했던 대로 무슨 폭력배가 국가기관을 점거하려고 하는 양 양천경찰서 소속 경찰들이 경비를 서 있었고, 검찰청 직원들도 우르르 나와 있었으며, 저와 이광철 변호사 그리고 피해자들을 비롯한 시민들이 검찰청 안에 들어서자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이에 저희들이 “고소장과 증거물을 제출하러 왔는데, 막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먼저 검사와 면담부터 했으면 한다면서 저와 이변호사를 안내하겠다고 합니다. 동행한 시민들이 폭력배가 아니며 피해자와 당시 상황을 목격한 증인들이라고 설명하고 행여 시민들에 대한 위협행위가 없어야 한다는 것을 약속받고 검사와 면담하러 가 어제 밤의 상황을 설명하며 “도대체 이게 경찰이냐? 5공과 다른 게 뭐가 있느냐”고 묻자, 검사는 “임의제출하는 증거물을 안 받을 수 없다” “어제 영등포경찰서에서의 상황을 당시에는 보고받지 못했는데, 아침에 보고 받았고, 영등포서에다 임의제출물을 받으라고 수사지휘를 했으며, 트럭소유자를 불러 임의제출에 동의받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만약 임의제출을 받지 못하면 내가 직접 압수영장을 받아서 처리하겠다”고 약속하며 증거물을 영등포서에 제출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를 믿고 저희 변호사들은 시민들에게 다시 돌아와 상황을 설명하고 다시 영등포서로 가기로 결정하고, 폭력행위 피해자 2명과 이광철 변호사는 고소장을 재작성하기 위하여 이변호사의 사무실로 향하고, 나머지 시민들과 저는 레카차를 이용해 차량 2대를 끌고 영등포서에 도착하였습니다.


 


물론 막상 도착한 영등포서의 출입구도 전경들의 방패막으로 가로막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밤 상황과는 조금 다르게 이들은 트럭의 인수를 거부하지는 못하였습니다. 물론 “어제도 받으려고 했는데…”하며 계면쩍게 변명하려는 모습은 여전하였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영등포서에서도 다시 조금의 우여곡절과 말다툼을 거친 끝에 오후 2시를 넘겨 차량 2대와 그 속의 물건을 임의제출 방식으로 제출하였고, 그 와중에 비록 민변 소속은 아니지만 인권침해감시활동에 뜻을 같이하는 다른 변호사님 한 분도 동참하여 저로부터 나머지 작업을 인계받아 트럭 안의 물건을 일일이 압수조서에 기재하고 확인하는 작업과 고소장 작성을 마치고 영등포서에 도착한 피해자 2명의 고소인진술서를 작성하는 작업을 무사히 마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힘든 하루였습니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시민이 평화롭게 집회하는 가운데 들이닥친 뉴라이트 폭력배의 만행을 뻔히 알면서도 그 뒤처리를 고의로 거부하는 경찰 앞에서 아무리 법을 설명해 보았자 소용이 없다는 허탈감과 무력감이 더 힘들게 어깨를 짓누릅니다. 앞에서 제가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요? 제 생각에는 수사할 의지가 없는 것이지 무식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KBS 앞에서 밤을 지샌 시민들은 말로만 민중의 지팡이니, 포돌이가 어떠니 하면서 막상 시민이 위험에 처했을 때는 아예 모른 척 하는 경찰을 보면서 이들이 과연 말처럼 민중의 지팡이인지, 아니면 정권의 앞잡이인지 똑똑히 목도하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말 이 나라는 누구의 나라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