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의 활동] 미얀마 군부독재에 대한 단상

2014-03-20 532

 미얀마 군부독재에 대한 단상

 

 

글_김하나 변호사

최근 한 방송인이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독재가 왜 잘못된 건가요?’ 라는 발언을 하여 큰 논란을 일으켰다. 호기롭게도 이 방송인은 ‘플라톤의 철인정치’, ‘1인 지배 체제를 구축한 로마가 더욱 발전했다.’는 독창적인 논거로 독재를 정당화하였는데,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이 1970년에서 1980년대 뼈아픈 군부독재를 경험하였음에도 한 지식인이 이러한 발언을 하였다는 것을 넘어 이에 동조하는 대중 또한 존재한다는 점이다. 한국이 독재가 왜 잘못된 것인가를 반문하는 사이 비행기로 약 6시간 떨어진 나라 미얀마에서는 미얀마변호사네트워크(Myanmar Lawyers’ Network) 소속 2명의 변호사 우찌민(U Kyee Myint)과 짜오민라잉(Zaw Min Hlaing)이 미얀마 군부독재의 실태,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한국과 미얀마는 오랜 군사독재를 경험하였다는 점에서 많이 닮아 있지만, 한국이 문민정부로의 권력이양에 성공한 것과 달리 미얀마는 여전히 군부독재 치하라는 점에 차이가 있다. 아웅 산 수 치(Aung San Suu Kyi)의 나라로 더 잘 알려진 미얀마는 오랜 기간 영국의 식민지였고, 해방 이후 1962년 3월 네윈(Ne Win)의 쿠데타를 시작으로 군부통치가 시작되었다. 1988년 장기화된 군부통치에 맞서 민주화 혁명이 일어나고, 이후 1990년 5월 총선거에서 미얀마 최대 야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NLD, the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이 큰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총선 승리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민족동맹은 군부를 몰아내는데 성공하지 못하였고, 또 다른 형태의 군부통치가 현재의 떼인 세인(Thein Sein) 정권까지 이어지고 있다.

 

군부독재 실태와 헌법 개정의 필요성. 얼핏 보면 살아 숨 쉬는 민중의 삶과 미얀마 헌법을 병렬적으로 고찰하려는 지루한 학문적 시도처럼 보인다. 그러나 수십 년간 지속되고 있는 미얀마 군사독재 체제가 헌법규정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면, 미얀마 군부독재의 실태와 2008 미얀마 헌법에 대한 고찰 및 개정방향을 논하는 것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한변협이 주최하고, 공익인권법재단 공감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주관 하에 2014. 2. 19. 개최된 2008 미얀마 헌법 개정에 대한 국제 심포지엄은 이러한 문제점을 확인하고 추상적으로 인지하고 있던 미얀마의 정치현실 및 정권의 문제점을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심포지엄은 크게 3가지 구성이 되었는데, 기조발제인 Plenary Session에서는 미얀마와 동일하게 군부독재를 경험한 한국과의 비교 고찰을 위해 한국의 민주화 과정과 현 미얀마 민주주의 운동을 소개한 후 헌법 개정의 당위성을 살펴보았고, Session 1과 Session 2에서는 구체적으로 2008 미얀마 헌법의 문제점을 통치구조와 기본권 제한의 측면에서 각 나누어 다루었다.

 

한국과 미얀마가 군부독재를 경험하였다는 사실은 같으나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독재체제가 헌법에 제도화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은 유신체제라 할지라도 장기집권을 정당화하는 대통령 연임규정, 독재를 원조할 수 있는 통일주체국민회의와 같은 헌법 기구, 간선제 규정 등에 대한 개헌이 제한적으로 이루어진 반면 미얀마는 군 최고사령관이 ①연방의회, 도의회, 주의회 의원의 25%를 지명할 수 있는 의원지명권, ②국방부, 내무부, 국경부 장․차관 임명시 후보자 결정권(3개 부처 이외의 장․차관 임명시에는 군 최고사령관과 협의하여야 한다.), ③국가비상사태시 군 최고사령관이 입법, 사법, 행정을 장악하며, 군 최고사령관의 행위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 등 군부의 우월한 지위가 헌법에 명문으로 규정되어 있다.

 

더불어 최근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는 헌법규정은, 아웅 산 수 치를 겨냥한 조문으로 일컬어지는 대통령 피선거권 규정이다. 미얀마 헌법은 피선거권에 관하여 ‘본인․부모․배우자․자녀․자녀의 배우자가 외국에 종속되거나 외국 국적을 가져서는 아니 되며, 외국 국적에 따른 권리와 특권을 향유할 자격을 가져서는 아니 된다.’ 는 독특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데, 배우자와 두 자녀가 영국 국적을 보유하고 있는 아웅 산 수 치는 이 조항을 이유로 피선거권을 갖지 못한다.

 

즉,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 영향을 미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미얀마 대중의 큰 지지를 받고 있는 야당의 당수가 대선에 출마하지 못하는 사태가 헌법규정으로 정당화되는 것이다. 야당인 민주주의민족동맹은 개헌을 통하여 아웅 산 수 치가 대선에 출마할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개헌에 성공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이다. 개헌에 필요한 정족수는 재적의원의 2/3이상의 찬성이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군 최고 사령관이 연방의회 의원의 25%를 지명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개헌 저지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미얀마 헌법 중 통치구조 관련 규정뿐만 아니라 기본권을 관련 규정에도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데, ①무죄추정의 법칙, 죄형법정주의 등의 시민․정치적 권리와 노동3권, 소수자(소수민족 포함)보호를 위한 규정 등은 누락되었고, ②평등권을 규정하고 있으나, 동시에 종교성직자의 선거권을 제한하거나, 군 총사령관의 우월한 지위를 확인하거나, 피선거권에 비합리적인 규정을 삽입하는 등 평등권과 반하는 내용을 삽입하여 기본권 상호 조항 간 내용이 상충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③가장 우려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 ‘국가안보 및 기타 목적을 위해 입법된 법령에 위배되지 않는 한’ 제한이 가능하다는 모호하고 광범위한 규정을 두고 있어 공권력에 의한 지나친 기본권 제한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가 있으면 바꾸고 고치는 것이 제도이건만, 2008 현재 미얀마 헌법은 산재한 문제 조항들이 있음에도 개헌에 이르는 과정조차 교묘하게 저지해 놓았고, 바로 이러한 점이야말로 현 정권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치부이다. 각 Session 이후 토론 과정에서 미얀마 NLD 한국지부장 내툰나잉이 이 같은 문제점들을 언급하며 상기된 목소리로 ‘개헌이 아닌 제헌을 해야 할 형국’이라고 지적한 것이 빈말이 아닌 셈이다.

 

군부통치를 경험하고 있는 나라의 인사들은 가택연금, 각종 고문과 감옥살이, 오랜 기간 타국을 떠돌며 조국의 민주화를 외치고 있는데, 민주화를 이룩했다고 자부하는 나라에서는 독재가 뭐가 나쁘냐는 물음과 독재정권 하에서 이룩한 경제성장을 운운하며 독재를 회상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지금 그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 자유가 당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다. 심포지엄 말미에 미얀마에서 온 귀한 손님들과 난민 지위로 한국에 머물고 있는 미얀마 NLD 한국지부장 내툰나잉은 진심을 담아, 미얀마 개헌 더 나아가 민주화를 이룩할 때까지 한국의 관심을 호소한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나 당연한 것들의 소중함을 잊지 않도록 군부독재의 행태를 더 알려달라고 호소해야 하는 쪽은 우리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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