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가 4월 월례회, 박문칠 감독의 영화 ‘MY PLACE’ 후기

2015-04-28 2

4월 월례회, 박문칠 감독의 영화 ‘MY PLACE’ 후기

 

13기 자원활동가 문정빈

 

다름같음의 품안에 드는 순간

때론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 수많은 이들은 ‘다름’을 ‘틀림’으로 오용한다. 이는 비단 실수일 뿐이지만 ‘다름’을 진정 ‘우리의 품’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틀림’으로 규정하는 우리의 사고를 방증한다. 수많은 다름을 ‘차이’가 아닌 ‘차별’로 풀어내는 순간. 이는 ‘같음의 품’ 안에 들지 못한 수많은 이들에 대한 폭력이 된다.

박문칠 감독의 영화 ‘my place’는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역이민 온 가족의 ’다른‘ 선택들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나는 캐나다에서도 alien 같았고, 한국에서도 alien 같았어요” 라는 주인공의 말에는 서러움이 응축돼 있다. 캐나다에서 그녀는 피부색이 다른 이방인이었지만, 한국에서의 삶은. 그 어떤 감정적 연대도 느끼지 못하는 진정 ’이방인‘의 삶이었다. 교육, 가족, 사랑, 직업. 그 모든 범위에서 ’정상‘을 획일화한 채 외부의 이들을 모두 ’비정상‘으로 취급하는 대한민국의 시각은. 분명 그녀가 살아내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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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자발적 비혼모로의 그녀의 삶도, 장애인도, 동성애자도, 굴뚝 위의 노동자도. 그 자체로 존재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 관념이. 그들을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게 한다. 어쩌면 그 관념이 생겨나는 순간. ‘당신을 이해한다’는 언어는 진정한 관용이 아닌 ‘다름’과 ‘비정상’에 대한 시혜적 태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사실은 몰랐다. 지독히도 불투명했던 지난 몇 년간의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그들과 같을 수 없었다. ‘다름’을 이해한다는 나의 말은, ‘당신과 다르지만, 당신이 될 수 없다’는 관용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보증금 100만원을 들고 서울을 헤매며, 한 달 에도 몇 명씩 사람이 죽어나가는 조선소에 동생을 보낸 후. 나는 뉴스 속의 철거민이 내가 될 수도. 굴뚝위의 노동자가 나의 동생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나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영화 ‘my place’의 ‘place’는 비단 물리적 공간이 아닌 사람 사이의 관계, 당신과 나의 연대, 그리고 ‘입장의 동일함’을 의미한다. 너무도 다른 대한민국의 실타래 속에서 ‘해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지난 4월 16일. 수많은 이들의 ‘연대’를 떠올려 보면 의외로 ‘희망’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도,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도. 막 퇴근을 한 직장인도. 너무도 다른 우리는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삭발을 하는 세월호 유가족의 영상을 보며 우리는 그 순간만큼은. ‘같은 입장’을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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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관계의 최고 형태’ 라는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처럼. ‘다름’이 ‘같음’의 품 안에 드는 순간은. ‘다름’이 ‘나’로 대체가능한 존재라는 ‘입장의 동일함’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럴 때 대한민국은 파편화된 ‘나의 공간’이 아닌 진정 ‘우리 모두의 공간’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민변이 나아가고자 하는 ‘희망’의 길과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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