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주기 추모 집회 참여기

2015-04-28 2

세월호 1주기 추모 집회 참여기

 

– 오현정 회원

 

다시금 416일입니다.

 304명의 영혼들을 황망하게 떠나보냈지만 진상 규명은 아직 멀어 보입니다. 국가 공권력은 진실을 요구하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거칠게 막아섰고, 보수 언론은 ‘세월호 피로감’ ‘경기 침체’ ‘국민의 혈세’ 운운하며 유가족들을 매도했습니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고 명명해도 이상하지 않은 어려움을 뚫고 가까스로 구성된 세월호 특위의 활동은 그 기능을 대폭 제한하는 정부 시행령안으로, 유가족들에 대한 보상액 그리고 세월호 인양 비용을 앞세운 선정적인 언론 보도들로 또 다시 끊임없이 가로 막히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삭막한 현실 앞에서 유가족들은 추모가 아닌 투쟁을 선언하였고, 4월 16일 발을 옮기기 어려울 정도로 시청 광장을 가득 매운 시민들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만들어낸 열기로 세월호 1주기 집회가 막을 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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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 금요일에는 민주주의국민행동,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가 기획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도전’ 행사가 열렸습니다. 4160개의 촛불이 모여 세월호 형상과 ‘Reveal the truth’라는 문구를 만들어, ‘사람이 만든 가장 큰 불꽃 이미지’라는 기네스북 기록에 도전하였습니다. 4160명의 사람들과 함께- 침몰하던 세월호, 그 속에서 스러져간 아까운 목숨들을 마음으로 그려보며, 그들을 구하지 못한 국가와 우리의 책무를 무겁게 느끼며, 진실의 침몰을 막기 위해 이렇게 슬픈 도전이나마 해야한다는 사실에 비통함을 느끼며 동시에 촛불을 점등했습니다.

 

4월 18일 토요일 집회는 오후 세시 시청광장에서 시작되어, 광화문 누각 앞에서 연행되고 있는 유족들 곁으로 가자는 외침에 따라 광화문으로 황급히 발길을 돌렸습니다. 광화문 광장으로 통하는 길이 차벽으로 단단히 막혀 있기에 다 함께 청계천으로 방향을 틀어 행진하던 사람들은 또 다시 차벽에 가로막히자 뿔뿔이 흩어져 작은 골목들로 분산되었습니다. ‘군중’으로서의 자취는 이미 사라진 종로, 인사동 좁은 골목 어디를 가도 광화문으로 통하는 모든 길들은 경찰 버스들로 이미 꽁꽁 막혀 있었습니다. 광화문역 출구가 한 두 개 정도 열려 있다는 소식에 결국 지하철을 탔고, 광화문에 당도하고 나니 오후 다섯시가 지나 해가 저물기 시작하였습니다.

세월5

 

아마 시청에 모였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광화문까지 와 닿지 못했겠지만, 광화문 광장에도 서서히 인파가 몰려들어 세월호 인양, 시행령 폐기, 폭력 경찰 규탄의 구호를 외쳤습니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는 뚫고 나가보려는 시민들과 경찰 간의 충돌이 긴장감을 더하고 있었는데, 경찰이 캡사이신을 뿌리고 물대포를 동원하기 시작하면서 갑작스럽게 일대가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차벽 사이 작은 틈이라도 비집고 들어가 길을 만드는 시민들 덕에 유족들이 있는 광화문 바로 앞 차벽까지 진출했고, 차벽에 올라선 젊은이들이 물대포를 맞아내며 깃발을 휘두르는 와중에 연행자 수도 늘어나고 접견을 가는 민변 변호사님들의 발걸음도 바빠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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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의 아픔에 연대하겠다는 사람들을 477대의 차벽으로 물 샐 틈 없이 가로 막고, 채증 장비와 고성능의 물대포, 캡사이신으로 무장한 어마어마한 수의 경찰 병력은 집회‧시위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안전 문제에 대비한다기보다는 시민들을 범법자로 만들 준비를 아주 치밀하고 단단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과잉 진압으로 충돌을 야기하고는 시민들에게 불법 시위 참가자라며 엄포를 놓는 역설적인 장면은, 대한민국에 정말 집회‧시위의 자유라는 것이 있는지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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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이 광화문 누각에서 광장으로 박수를 받으며 빠져나오고 마지막 발언을 함으로써 토요일 집회가 막을 내렸습니다. 저는 새벽까지 집회에 같이 참여했던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면서 진지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소소하기도 하고 중요하기도 한 우리네 사는 이야기들을 흠뻑 나누다가 심야 버스 막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한겨레 21>에서 정리한 세월호에 관한 기록들을 읽었습니다. 까슬한 언어들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을 느끼며 버스에서 내려, 아주 작은 소리, 아주 작은 움직임도 예민하게 느껴지는 새벽을 건너 집에 돌아오면서 저는 닿을 수 없는 슬픔들과 분노들에 대해 상상해보았습니다.

이른 아침 갑자기 기울기 시작한 배가 점점 가파르게 기울어 캐비닛이 사람을 덮치고 창밖으로 차디찬 바다가 넘실대는데,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이 되풀이 되고, 다만 차고 딱딱한 핸드폰 액정을 두드려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야겠다는 다급한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면 – 승선할 때에는 바다를 보며 설레어했을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본 바다는 믿을 수 없이 성큼 다가와버린 죽음의 공포 그 자체였을 것이고, 남겨진 사람들에게 바다는 사랑하는 이를 집어삼킴 괴물이 되어버렸을 터입니다.

세월7

물에 불어 알아보기 힘든 아이들의 시신을 안아본 뒤에 혹은 바다 속 어디를 떠돌고 있을지 수천수만번도 상상해 본 뒤에, 침몰 당시 아이들을 기다리며 쿵쿵대는 가슴을 안고 불안과 절망 속 간절한 희망을 품고 한 자라도 놓칠 새라 귀 기울이던 관료들의 보고가 윗사람들의 실책을 감추기 위한 기만과 생색으로 가득 차 있었으리라는 단서를 발견하게 되었다면. 꼬리들만 처벌되었을 뿐 정작 책임져야 할 자들은 고작 감봉 처분을 받거나 오히려 버젓이 더욱 요직으로 가버린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결정적 순간이 지워진 자료와 기록들, 자꾸만 바뀌는 말들 속에서도 드러나는 의혹의 물음들은 어쩌면 사고가 고의로 발생했을지도 모른다고 웅성거리는데,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버젓이 모순되는 진술들을 더 이상 캐묻지 않고 황급히 수사를 마무리해버렸다면. 그리고 1년이라는 시간을 싸웠음에도, 진실을 요구하자 돈을 들이밀고, 정의를 외치자 차벽으로 가로막은 채 불법으로 몰아가는 이 미친 세상에 맞서고 맞서고 또 맞서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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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캐한 캡사이신 냄새와 물로 범벅된 도로 위에서도 살아서 함께 하고 있으므로 시원하게 욕이라도 하지만, 집회를 마치고 서로 손길을 모아 술잔을 부딪치는 소리에도 꺄르르 웃으며 소소한 대화 속에 실낱같은 희망을 건져 집으로 돌아가지만, 영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열일곱 열여덟의 청춘들-인생에서 가장 섬세한 마음으로 꿈꾸고 희망을 그려볼 수 있는 그 아름다운 나이에 삶을 박탈당한 아이들과 그들의 선생님들, 부모님들은 아직 바다에 있습니다. 울고 웃고 분노하고 즐거워하며 미워하고 사랑하기도 하며 투닥투닥 지금 우리 곁에 함께 살아가고 있어야 했던 304개의 소우주가 파멸된 거대한 검은 구멍… 들여다 볼 용기도 나지 않을 만큼,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시꺼먼 그 심연을, 그 모든 것들을 앞에 둔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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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침몰과 함께 우리는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것을- 인간의 존엄이라는 지고의 가치를 잃어버렸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인간 존엄을 잃었다는 것-우리의 삶이 아름답고 숭고해질 수 있는 기반을 잃었다는 사실조차 잊은 사회에서 인간으로서의 삶은 지속될 수 없기에, 우리는 그것을 되찾아야만 합니다. 그것을 되찾으려고 절실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의 용기에 한 걸음 한 걸음, 한 마디 한 마디씩 보태어, 좀 더 따뜻한 가슴으로 끝까지 함께 싸울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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