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 긴급조치…… ‘정의’를 고민한 변호사들이 있었다 ─ 과거사위 서중희 위원장

2016-09-1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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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9일(금), 법무법인 동화 사무실에서 서중희 변호사를 만났다. 민변에 가입한 지 만 10년 차가 다 되어가는 그는 현재 과거사청산위원회(이하 과거사위)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가끔 평소에 수줍음 많던 사람이 카메라 앞에서 180도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서글서글하고 순한 인상에 스스로를 ‘수줍음이 많다’고 소개한 서중희 변호사도 비슷했다. 처음에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고 고개를 내젓다가 이내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과거사위가 주력하고 있는 ‘위안부’ 문제와 긴급조치 등에 관한 뼈 있는 이야기를 풀어냈다. 대화 사이사이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연방 울리는데도 말을 멈추지 않았다. 신입 회원들에 대한 조언의 말과 과거사위 홍보 뒤에는 친절하게도 사진을 찍으라며 사무실 책상에 앉아 골무를 끼고 짐짓 포즈도 취해주었다.

지금부터 ‘수줍지만 친절한 카메라 체질’ 서중희 변호사를 만나보자.

 

인터뷰/정리_자원활동가 이재임(출판소통팀)

 

백면서생서중희 변호사, 입을 열다

김서정(이하 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직업과 민변 이야기는 빼고요. 혹시 본인과 가장 닮은 소설, 희곡, 영화, 만화, 드라마 속 캐릭터가 있을까요?

서중희(이하 서): 직업과 민변에 대한 이야기를 빼고 나니까 생각나는 단어가 없더라고요. 이런 데에 감이 별로 없어서. ‘백면서생’, 이 정도가 어울릴 거 같아요. 조용하고 말수가 많지도 않고 수줍음이 많아서 ‘백면서생’, 저한테 이게 딱 맞는 단어 같아요. 아내에게 저와 닮은 캐릭터를 물어봤더니 <아기공룡 둘리>의 ‘고길동’을 말하더라고요. 어떤 점에서 닮았는지는 모르겠어요. 또, 사무실 직원 한 명한테 물어봤더니 고양이 ‘가필드’를 이야기하더라고요.

: 생김새가 닮으셨어요.(웃음)

서: 아무튼 저는 수줍음이 많고, 나서는 것보다는 뒤에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 저희가 오늘 인터뷰를 위해 ‘고급정보’를 입수했습니다. 다음 세 가지 질문에 3초 안에 답해주세요. 첫 번째, 조영선 변호사는 나한테 술로 안 된다, 내가 민변 최고 주당이다! O, X, 하나, 둘, 셋!

: (망설임 없이)X입니다. 조변님은 날마다 술이에요. 쉬지 않고 먹어요. 새벽까지 먹어요. 그리고 다음날 눈 퉁퉁 불어서 와요. 같이 마시면 제가 힘들어요.(웃음)

: 워크숍 때 소주병을 품에 안고 돌아다니셨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 아, 물론 술 좋아합니다. 좋아하지요.(웃음) 공부할 때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 별다른 게 없어서 주말이면 작정하고 폭음을 했죠. 술을 마셔보니 먹을 만 한 거 같아서 계속 마시다 보니 막걸리를 마시면 취하기 전에 배가 부르고, 소주를 마셔야 적당히 취할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산에 갈 때도 조그만 소주(팩 소주)를 사서 혼자라도 올라갑니다.

: 두 번째 질문입니다. 나한테 조영선 변호사란? 하나, 둘, 셋!

: …아따 거시기하네.(웃음) 만난 지 오래됐어요. 사법고시 공부할 때 신림동에 ‘약수사’라는 절에서 처음 만났거든요. 조 변호사를 처음 만났을 때는 얼굴이 시커먼 양반이 호리호리해서,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호리호리했습니다. 술도 좋아하시고 해서 친해지게 됐고. 조 변호사가 먼저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저는 조 변호사보다 늦게 합격한 뒤에 둘이 사무실도 같이 하게 됐죠. 전생에 질긴 무엇이 있나, 채권채무 관계였을까?(웃음) 아무튼 인연이 오랫동안 이어진 것 같습니다. 아까 답한 ‘거시기’에는 온갖 것이 포함된 겁니다. 예를 들면 ‘애증’이라든가.(웃음)

: 마지막입니다. 나한테 ‘마눌님’이란? 하나, 둘, 셋!

서중희-변호사

: (인터뷰 전체에 걸쳐 가장 크게 웃음)이분도 참 대단한 분이에요. (황급히)제가 몸과 마음을 바쳐 사랑하는 분입니다. 무서워요. (웃음)

특히 애 낳고 무서워졌어요. 아들이 연년생 둘이거든요, 쌍둥이는 오히려 고만고만해서 괜찮은데, 연년생은 동생이 형한테 절대 안 지려고 해요. 연년생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는 아이들한테 순서를 잡아줘야 하고 아이들 대장 노릇을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애들 키우면서 목소리가 커지고. 아무튼 제가 사랑하는 분으로 정리할게요. 매우 매우 사랑한다고.

과거사청산위원회, 역사를 새로 만들어나가다

김: 비교적 조용한 회원으로 활동하시다가 최근에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며 과거사청산위원회(이하 과거사위) 위원장까지 되셨어요. 위원장으로서 과거사위를 자랑한다면?

서: 과거사위의 역사가 일단 좀 오래되었죠. 다른 위원회는 잘 모르겠지만 과거사위는 2003년에 만들어져서 올해 13년 차입니다. 사회의 굵직굵직한 이슈에 대해서, 특히 과거사와 관련된 이슈에 대해 변호사님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긴급조치와 ‘위안부’ 이슈에서는 소기의 성과를 보이고 있죠.

과거사위 활동을 하다 보면 국가와 국민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서 시간적 흐름을 이해하게 되고, 역사적 안목을 키우게 돼요. 과거사 문제라는 게 단순하게 “이게 아닌데요!”하고 외친다고 해결이 되는 문제가 아니고, 안목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과거사위, ‘위안부문제 관련 소송을 제기하다

김: 이제 최근 과거사위에서 활발하게 대응하고 있는 ‘위안부’ 이슈에 대해 여쭤볼게요. 현재 과거사위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제기한 소송은 정보공개청구 소송 2건, 헌법소원 1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1건으로, 총 4건입니다. 이 중 헌법소원은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임을 확인하는 12.28 한일합의가 위헌임을 확인해달라는 소원인데요. 12.28 한일합의에 어떠한 헌법적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서: 일단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과거에 헌법재판소 판결이 하나 있죠. 일본의 기본적 입장은 ‘1969년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것이 끝났다’라는 입장이에요.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청구권 협정 당시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봤어요. 그리고 청구권협정 중 3조는 분쟁해결조항인데, 내용을 보면 ‘이 협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외교적으로 해결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분쟁을 통해서 해결하고, 이 결과에 대해서는 승복하자’는 거예요. 그러니 청구권 협정 3조에 의해 국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외교적으로 다시 협상을 하고 분쟁 해결절차를 나아가야 하는 ‘작위 의무’가 있다는 것이죠.

‘위안부’ 강제 동원은 일본군이 위안소를 운영하면서 조선 식민통치기구를 통해 위안부를 모집하고, 이들을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성폭행한 국가 범죄적 행위예요. 국가는 그런 범죄행위에 대한 손해 배상 책임을 져야 하고, 이것을 해결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요. 그리고 국가가 ‘위안부’ 강제 동원으로 인한 피해 보상 협의를 하려 한다면 피해자들의 절차적 참여권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12.28 합의에서는 이 참여권이 보장되지 않았습니다.

이게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어요.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에 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나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신체적 자유에 대해 회복을 구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할 것인데, 국가와 개인은 분명히 법인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이를 대신해서 행사할 수 있는지도 문제고요. 국가가 외교적으로 재외국민을 보호해줘야 하는데, 외교적 조치를 다 했는지도 살펴봐야 해요. 기본적으로 국가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요구하고 있는, 일본 정부와 이 문제를 외교적으로 잘 해결해야 할 작위 의무가 있음에도 12.28 한일합의를 통해 부작위를 선언해버렸던 것도 위헌적인 행위이죠.

김: 헌법소원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각각 ‘위헌’ 판결과 원고 승소 판결을 받을 경우 현실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떤 부분에서 도움이 된다고 보시나요? 또 ‘대한민국’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손해를 배상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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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간중간 질문을 메모하는 서중희 변호사의 손.

: 이번 12.28 합의가 헌법적으로 위헌 무효라고 한다면 합의 자체가 아무런 효력이 없는 거죠. 국가는 여전히 2011년 헌법재판소 판결대로 일본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외교적 협상과 분쟁 절차에 나서야 할 의무를 다시 지게 됩니다. 12.28 한일합의를 통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분쟁 절차에 나가지 않고 ‘해결됐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불법행위라는 것이거든요. 민사상으로도 국가의 행위는 불법행위라는 것이고, 불법 행위라면 당연히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것이고요. 어쨌든 헌법소원과 대한민국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에서 각각 ‘위헌’ 판결과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내면 ‘12.28 한일합의는 무효다. 국가는 다시 분쟁해결을 위한 협상에 나아가야한다’는 것을 사법적으로 확인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손해보상을 한다는 건 이번 합의가 잘못되었다는 뜻입니다. 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것이고, 국가가 이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을 위해서 본 정부와의 협상에 성실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기본적으로는 그런 의미인 것 같아요. 박근혜 정부의 일본 협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사법적으로 확인하는 의미가 있는데, 이번 정부에서는 판결이 쉽지 않을 것 같네요.

배상청구권에 대해서도 헌법 재판소가 2011년에 언급해놓은 게 있어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배상청구권은 재산권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침해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신체의 자유에 대한 사후적 회복의 의미를 가진다.” 단순히 배상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잃고 인권을 침해당한 소녀들의 고통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라는 뜻이겠죠. 인간의 존엄과 가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에 대해 늦게나마 회복해준다는 의미고요. 한 많은 인생에 대한 보상입니다.

: 나의 신체가 국가의 소유가 아니고, 나의 권리와 존엄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굳이 한국의 정부가 ‘나’를 멋대로 대표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더라고요.

: ‘국가가 나서서 개개인의 권리를 처분할 수 있는가’하는 부분에서 견해의 차이가 있어요. 국가가 외국과 협상할 때 ‘국가 일부를 이루는 개인의 권리 일부를 처분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어요. 하지만 국가와 개인의 법인격은 서로 다르거든요. 법률의 관점에서는 똑같은 인격체이기 때문에 개인이 동의하지 않은 이상 타인의 인격, 타인의 권리를 함부로 처분할 수 없어요. 이런 관점에서는 국가가 나서서 개인의 권리에 대한 부분을 합의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관점이 있어요.

‘나의 신체 권리가 국가에 소유되지 않는다’는 분석은 나와 국가를 동등한 인격체에서 보는 관점 같고, 또 이게 맞겠죠. 어차피 피해는 내가 입었는데 제삼자가, 일부 관료가 나서서 나의 피해에 대해 ‘더는 묻지 않겠다’고 합의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식으로든 피해자 본인이 스스로 나서서 결정하고 참여하는 절차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번 협상이나 과거의 협상은 그런 것이 전혀 없었죠.

과거사위 긴급조치 변호인단’, 여기까지 왔다

: 그 외에도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및 성폭력 문제, 긴급조치 문제 등 다양한 과거사 문제가 있습니다. 과거사위에서 이제까지 해왔던 활동 중 ‘긴급조치 변호인단’은 오랫동안 이어져온 활동이지만 그만큼 신입 회원들은 잘 모르고 있을 것 같아요.

: 과거사위는 특정 과거사 이슈가 마무리되지 않는 이상 그 이슈에 대해 계속해서 활동하는 거니까요. 긴급조치 변호인단은 벌써 10년 동안 활동하고 있습니다. 긴급조치는 아시다시피 유신독재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항거하는 민주 인사들과 유신 정부에 대한 저항을 탄압하기 위한 조치들이죠. 형사소송법을 거의 무력화시켜버리는 초법적인 조치였어요. 국왕이 칙령으로써 통치할 수 있는 그런 정도예요. 그런데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시면서 폐지되었고 피해자들이 ‘억울하다, 무죄로 만들어달라’ 했더니 형벌법이 폐지되었기 때문에 면소 판결을 내려 끝내버렸습니다. 유죄도 아니고 무죄도 아닌 어정쩡한 판결이 면소 판결입니다. 여전히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남아있는.

기본법 보장 규정에도 어긋나고 형사소송법 제반 법칙도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지금 헌법에 비춰 봐도 위헌이고, 유신헌법에 비춰 봐도 위헌이에요. 그래서 재심을 청구하게 된 거죠. 헌법재판소에서도 위헌 무효 소송을 제기했고요. 2010년 10월경 대법원에서 최초로 긴급조치 1호에 대한 위헌 결정을 내렸어요. 그때까지 법원들은 긴급조치 재심 사건에 대해 계속 면소 판결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긍정적인 판결이 나온 겁니다.

위헌 결정 뒤로 구금된 기간 형사 보상을 청구하고, 민사 소송으로 손해 보상 청구까지 들어갔어요. 사실 법리상으로는 대법원의 면소 판결이 형사법에 규정이 되어 있거든요. 법원은 형사소송법에 맞게 판결했고, 형식적 법치주의만 따지면 그게 맞긴 하죠. 하지만 ‘긴급조치가 위헌 무효인가’라는 판단을 이제까지 안 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던 거예요. 긴급조치가 무효라는 것에 사법부의 판결을 끌어냈다, 변호사가 사회를 발전적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방향으로 일조했다, 그런 흥분감으로 계속 끌고 오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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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질문에 답하는 서중희 변호사의 뒷편으로 긴급조치 관련 재심판결 모음집이 책장 한 칸을 채우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한 뒤로 대법원이 긴급조치가 위헌 무효 판결을 받은 것에 대응하는 새로운 논리를 개발했습니다. ‘과거의 긴급조치가 위헌 무효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긴급조치를 발령한 논리는 유효하다. 긴급조치에 기초해서 사람들을 잡아들이고 기소하고, 유죄판결을 내리고, 수감생활을 시킨 공무원이 뭘 잘못했냐.’ 이런 거죠. 그러면 ‘대통령이 위헌무효인 긴급조치를 내린 것은 잘못 아닌가요?’ 하니까 ‘그것은 대통령이 통치권 행사의 목적으로 한 것이고 정치적인 책임을 질 문제이지, 개개인에게 행해진 불법행위에 대해 법률적 책임을 질 일이 아니야.’라고 주장해요. 긴급조치는 위헌무효인데, 그에 따른 법률적 행위는 정당하다는 이상한 논리가 되어버렸어요. 지금의 대법원은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를 펴고 있고. 그게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예요. 성과와 아쉬움을 함께 가지고 있죠. 이 부분은 판례 변경이 필요한 사항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재임(이하 이): 그런 대법원의 입장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고, 여기에 대해 반박할 논리는 아직 없나요?

: 이런 논리를 반박하는 논리를 개발하려고 여러 변호사가 노력하고 있는데, 대법원이 아니라고 막고 있으니까 상당히 어려운 것 같습니다. 대법원의 구성을 진보적으로 바꾸거나 적절하게 조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서울대학교를 나오시고 판사를 하신 남성분들, 기본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분들이 대법관이 되거든요. 대법원이 사회의 다양성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자기 구미에 맞는 사람을 대법원장에 앉힐 가능성도 있고요. 여러 가지 점에서 과연 우리 사법제도가 정당한 건지 의문이 있어요.

법률이 정당하고 정의에 부합하는지 고민하는 변호사 집단이 있었다

: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당대사, contemporary history)’라는 말이 있죠. 과거사위의 활동은 지금의 인권 관점에서 과거의 사건을 평가하고 정의를 회복하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100년, 200년 뒤의 누군가가 현재의 역사를 연구하고 어떤 사건의 역할과 의의를 평가할 때 과거사위 활동이 어떤 평가를 받기를 원하시나요? 혹은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 같으신가요?

: 어렵습니다. 어쨌든 저희가 정치를 하는 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부국강병’ 이런 건 정치인들이 이야기하는 관점인 것 같고요. 법조인으로서 ‘당대사’를 말한다면 과거의 권력행사가 정당한 이유와 절차에 따른 것인지에 중점을 두고 보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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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위는 여러 과거사 사건에서 인권이 정당하게 지켜졌는지, 인권침해가 일어났다면 그것이 정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것인지를 따지고, 부당한 인권침해가 일어났다면 침해된 인권을 회복하는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요.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자의적이고 독재화된 권력에 의해 일어났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죠. 과거사위의 활동은 그런 권력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고, (정의를) 회복하려는 법률적 시도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긴급조치가 당시에는 권력에 의해서 시행되었고 검사와 판사들이 기소하고 유죄판결을 했지만, 이제는 긴급조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이것이 위헌 무효였다는 것이 사법적으로 밝혀진 거잖아요. 잘못을 밝혀냈다는 것에 의의가 있어요.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법률이 정당하고 정의에 부합하는지 고민해보는 변호사 집단이 있었고, 그것이 과거사청산위원회였다.’, 이런 정도의 평가를 받지 않을까요? 어떻게 평가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좌빨’이니 어쩌니 욕을 하더라도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필요한 조직 활동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무언가’, 그것을 해라

: 2006년 10월 30일에 가입하셨고, 한 달 지나면 만 10년차가 되시네요. 축하의 박수! (웃음) 10년을 활동해보니 이제 가입하는 신입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 민변 가입할 때 어떤 특별한 활동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건 아닌 것 같아요. 처음엔 우리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며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고, 저는 이분들의 보이지 않는 조력자 역할을 하는 것 정도가 제가 생각한 행동반경이었어요. 그런데 민변을 들락날락하기 시작하니까 달라지기 시작했죠.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하루를 보낼 수 있어요. 그렇지만 ‘내일 뭘 하지’ 생각하면서 하루를 보낼 수도 있는 거예요.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도 나이는 계속 먹겠지만, 저는 익숙하던 대로만 지내면 인생이 별로 재미가 없을 것 같거나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사회적으로 부조리가 드러나거나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말만 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나중에 내 삶을 반추해봤을 때 내 살아온 모습에 대해서 나름의 자긍심이 생기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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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변호사들에게 조언한다면…… 일단은 뭔가를 해라. “네 가슴속에서 우러나와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그 ‘뭔가’를 일단 해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이왕이면 과거사위를 하면 더 좋고요. 과거사위 활동은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워주고, 좋은 선배 변호사들도 만날 수 있고, 여러 시민단체와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생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 같아요. 역사적 관점도 얻을 수 있고, 사서나 역사적 서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특히나 좋아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과거사위 선배들은 술을 사달라고 하면 분명 좋아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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