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위] 제 12회 민변 미군위-자유법조단 오키나와 지부 평화교류회 후기 – 박수빈 회원

2019-04-19 3

2019 제12회 평화교류회 – 평화, 체력, 미래

– 박수빈 회원

 

평화교류회는 벌써 12회를 맞았습니다. 그만큼 한국 변호사님들과 일본 변호사님들 사이에 이어져 온 인연의 깊이가 느껴지는 교류회였습니다. 이번 교류회에는 약 30명의 일본 변호사님이 참석해주셨는데 오키나와 뿐만 아니라 도쿄, 돗토리에서 오신 변호사님들도 계셨습니다. 또 아이들도 7명이나 참가했는데, 이 아이들에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어떻게 기억될까 하는 궁금증도 남겼습니다. 민변측에서도 일정에 따라 약간의 변동은 있었지만 약 30명의 인원이 참여했습니다.

첫날 2019년 3월 29일 금요일 영화 <1991, 봄>을 단체 관람하고, 다음날 30일 아침 대추리마을을 둘러본 뒤 평택 미군기지를를 탐방하고, 서울로 돌아와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관람하였습니다. 31일에는 민변 회의실에서 열띤 세미나가 이어졌고 다음날 출국하는 일정이었습니다. 매일 매일 열띤 수다와 늦은 시간까지 뒤풀이가 이어졌는데, 가까운 거리라고 하더라도 비행기로 이동하고, 버스로 먼 길 이동하는 일정에 피곤하실 법도 한데 다들 체력이 대단하시다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인 이유로, 전 일정에 참여하지는 못했는데 처음 교류회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그래도 나름의 감상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그에 앞서 교류회 준비로 고생해주신 김종귀 변호사님, 오민애 변호사님, 오현정 변호사님, 허진선 간사님께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교류회 첫날 – 영화 <1991, 봄> 단체 관람, 감독과의 대화

2019. 3. 29. 15:50경 오키나와분들이 인천공항에 도착하셨습니다. 역대 최대 인원의 환영단(이한본, 김종귀, 권정호, 김인숙 변호사님 및 김영수 부장님, 최봉태 변호사님 및 지인 한 분, 통역을 도와주신 하마무라 센세)이 오키나와 자유법조단 여러분을 맞이하였습니다.

백충변호사님과 변호사님의 가족은 하루 일찍 도착해서 오현정, 김유정 변호사님과 박천우님과 함께 시간을 보냈고, 됴쿄에서 오신 야마기사와 센세를 비롯한 변호사님들은 김진형 변호사님과 함께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을 방문하셨습니다.

각자의 일정을 수행한 뒤 모두들 호텔에 짐을 풀고 종로 인디스페이스로 이동해, 1991년 있었던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과 24년이 흐른 2015년 봄 최종무죄가 선고되던 해의 기록들과 강기훈의 기타소리가 흐르는 영화인 권경원 감독의 <1991, 봄>을 오키나와 자유법조단 변호사님들과 민변 변호사님들이 함께 관람했습니다.

사실, 저는 둘째 날이 되어서야 일정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영화라는 것은 누구와 함께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누구와 나누느냐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미 영화를 봤다는 이유로 빠지지 말걸 하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권경원 감독님이 일역본 자막을 세심하게 준비해주셔서 자유법조단 여러분이 무리없이 영화를 감상하실 수 있었습니다. 감독님과의 대화도 무척 좋았다는 후일담을 전해들었습니다. 듣기로 굉장히 늦은 시간까지 화목한 뒤풀이가 이어졌다고 합니다.

 

둘째날 – 대추리, 평택미군기지, 식민지역사박물관

대망의 둘째날, 아침 8시 30분에 라마다호텔 로비에서 모였습니다. 교류회에 처음 참여하는 것이다보니 모든 분들이 낯설고 긴장되는 시간도 잠시, 평택가는 길 버스에 나란히 앉게 된 이노우에 센세와 대화를 나누며 조금씩 교류회의 의미를 찾아가는 기분이었습니다.

대추리에 가는 길, 심재환 변호사님, 권정호 변호사님, 고유경 자문위원님께 각각 평택미군기지가 이전해오는 과정에서의 대추리 마을 분들의 투쟁이야기, 평택미군기지의 형성배경 등 사전지식 쌓기를 위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기존에 있던 주한미군 기지를 재배치하면서 평택미군기지가 확대재편성 된 것이 현재의 평택미군기지입니다. 미군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미군부대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듣기도 하고, 사드와 관련한 소송을 진행하기도 하고, 미군기지내 환경오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으면서도 실제 미군기지의 역할이나 그 구조, 형성 과정 등에는 조금 무관심했지 않나 하는 반성이 들었습니다. 특히 평택미군기지가 주소지를 대한민국 기준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사용하는 zip code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떤 의미로는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이지만 대한민국이 아닌 땅의 의미가 무엇인지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지점이었으니까요.

미군이 이전하기로 한 그 평택기지의 확장대상인 토지에는 인구밀집도가 높은 마을들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대추리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대추리 마을회관을 찾아 임윤경 평택평화센터 사무국장님으로부터 대추리 마을에 대한 이야기와 평택미군기지에서 최근 불명의 고농도 폐수를 불법으로 방출하여서 평택시는 환경부로부터 과태료처분을 받는 일이 발생하였다는 사실 등 평택에 거대한 규모의 미군기지가 들어서면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본 변호사님들께서는 미군기지 관련한 소음소송에도 관심이 많으셨는데, 이와 관련해서 한국 법원의 판결례를 궁금해하셨고, 마침 해당 소송을 진행한 적이 있는 오현정 변호사가 이에 대한 답변을 이어나가기도 했습니다. 일본, 특히 오키나와와 대한민국은 미군기지가 세워져 있고, 그로 인한 공통의 문제들을 안고 있어서 비단 전쟁으로부터의 평화뿐 아니라 국민, 시민의 일상생활의 평온을 바라는 마음까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뒤이어 대추리역사관에 가서는 이장님께 대추리 사람들의 투쟁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대추리마을 사람들은 925일을 투쟁하다가, 마을을 빼앗기고 주거지가 없는 땅으로 쫓겨났습니다. 받은 것은 수용된 토지에 대한 헐값의 수용보상금과 투쟁하느라 구속된 이장님의 석방 뿐이었습니다. 국가는 쫓겨나가는 마을주민들에게 장소는 옮겨가게 되더라도 대추리라는 마을 이름을 계속 쓰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주민들은 아직도 대추리라는 마을 이름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을 어르신들의 생전 마지막 소원인, 대추리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는 그 소원이 이루어지기란 아직도 요원한 상황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장님 말씀을 듣고 산책겸 대추리마을을 들러본 뒤 회관으로 돌아와 식사를 마쳤습니다.

식사는 대추리마을 어르신들께서 준비해주셨는데, 세상에나 맙소사 너무 맛있어서 두 번이나 덜어먹었습니다. 맛있었던 건 저 뿐만은 아니었는지,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오가타 상, 야마자키 상, 통역을 맡아준 아리메 상 모두 한 번 씩 더 챙겨먹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일본어, 영어, 파파고를 동원한 대화였지만 음식에 대한 열정은 우리 모두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 모두 버스에 올라 평택기지로 향했습니다. 임윤경 사무국장님의 안내에 따라 버스로 평택기지 근처로 이동했습니다. 용산기지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휘향찬란하게 지어진 평택기지를 보고 있노라니 이곳이 세워진 장소가 원래는 많은 마을이 있었고, 사람이 살던 곳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마치 국경선처럼 담벼락과 철조망이 쳐져있고,큰 평수의 가족형 숙소가 호텔처럼 늘어져 있었습니다. 단체로 조금 걸으며 기지를 둘러볼 예정이었지만 갑자기 내린 비 때문에 얼른 버스에 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쉬웠지만, 그 의미만은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서울로 돌아와 식민지역사박물관도 방문했습니다. 일본분들과 함께 식민지역사박물관을 가는 것도 처음이지만, 그 전에 식민지역사박물관 자체를 저도 처음 방문한 것이라 몰랐던 사실들이나 새로운 자료들을 많이 볼 수 있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친일인명사전 작성을 위한 초기 메모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둘째날 저녁, 이른 아침부터 서울-평택-서울을 오가는 일정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 근처 해담채에서 만찬을 가졌습니다. 김종귀, 오민애 변호사님의 부드러운 진행이 빛났던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교류회에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처음 교류회에 참여하는 저와 같은 변호사님들이 많이 계셔서 약간은 어색한 기분과 교류회를 통해 얻게 된 여러 새로운 깨달음들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교류회를 이어오고 계시는 중견 변호사님들의 교류회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고, 한-오키나와, 한일법조인들의 평화를 위한 연대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교류회를 위해서 김인숙 변호사님을 비롯한 한국의 변호사님들께서는 일본어를, 일본 변호사님들께서도 나름으로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서로 통역이 없더라도 영어, 일본어, 한국어를 섞어가며 어떻게든 조금 더 가깝게 대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온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2회 동안 교류회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소통에 대한 모두의 노력이 바탕이 된 것이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3차까지 이어진 뒤풀이는 거의 새벽 1시가 되어서야 마무리되었습니다. 전날도 늦은 시간까지 뒤풀이를 하셨다고 들었는데, 일본이건 한국이건 너나할 것 없이 다들 체력이 대단하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왠지 아플 것만 같은 기분이라 비실거리며 집에 돌아갔는데, 다음날라는 너무 생생한 양국가의 변호사님들을 보면서, 평화를 지키는 데는 열정에 더해서 체력도 있어야겠구나 하고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셋째날 – 열띤 세미나

셋째날이 밝았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민변 대회의실은 강연을 듣는 한일 양측 변호사님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특별 강연으로 서재정 국제기독대학 (일본)정치·국제관계학 교수님께서 ‘트럼프 독트린’과 동아시아 평화-신현실주의와 신중상주의 사이의 위기와 기회‘라는 내용으로 강연을 해주셨고, 한국과 일본의 각 중견 변호사님들의 날카로운 질의가 이어졌습니다.

뒤이어 류광옥 변호사님께서 한국의 전자소송을 주제로 설명을 해주셨는데, 일본에 곧 전자소송이 도입될 예정이라 이와 관련한 일본 변호사님들의 관심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 이어진 세미나에서는 김남주 변호사님이 ‘남북대화·북미대화 어디까지 왔나’를 주제로 발표해주셨고, 남북관계, 북미관계에 대한 타카기 기치로 센세가 ‘헤노코 신기지 건설문제를 둘러싼 움직임’에 대하여 발표를 해주셨습니다. 통역을 위한 기기가 다소 부족한 탓에 일본분이 말씀하실 때는 한국 변호사님들이 기계를 들고 2인 1조로 통역을 듣고, 한국분이 말씀하실 때는 일본 변호사님들이 기계를 들도 통역을 듣는 불편함이 있기는 했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 기계를 주고받으며 열심히 발표와 토론을 이어나갔습니다. 헤노코 신기지를 건설하는 문제로 현민투표가 시행되었고, 무려 70%이상의 반대표가 나왔다는 사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오키나와에서 헤노코 신기지 건설을 저지하고자 하는 법정투쟁에 앞장서고 있는 여러 변호사님들이 이번 교류회에 참여하고 계시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장 열띤 토론이 있었던 시간은 역시 ‘미일의 군사적 일체화를 전면 해금한 아베정권’이라는 주제의 타카기 기치로 센세의 발표였습니다. 일본의 전력을 가지지 않기로 한 헌법 제9조(평화헌법) 개헌과 관련하여,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여야 한다는 논의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 변호사님들은 “일본의 평화헌법 관련 논의는 후퇴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일본 변호사님들은 한국 국민들의 ‘군대’에 대한 인식은 어떠한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놓으며 토론에 불을 붙였습니다. 몇차례 질문과 답변이 오가면서 논의가 대략 일단락되었는데, 이번 교류회의 가장 화려한 지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잠깐의 휴식을 가진 뒤 오키나와의 백충변호사님의 ‘2018년에 실시된 일본변호사연합회 조사보고’, ‘미군관계 경비의 부담 – 배려예산을 중심으로’ 두 주제와 관련된 발표가 있었습니다. 앞선 발표 들이 길어질 것에 대비하여 대체적으로 서면으로 대체하셔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어내셨습니다. 사실, 발표 그 자체보다도 평화교류회에 오래 참가해오신 한일 변호사님 양측 모두가 백충변호사님을 아끼고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세미나가 이루어지는 순간 중 가장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후 박진석 민변 미군위원회 위원장님의 ‘방위비분담 특별협정(SMA)의 문제점’에 관한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미군주둔비용과 관련된 일본과 미국의 논의는 다른 듯 비슷했고, 적어도 미군의 주둔비용을 주둔지에 ‘전가’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또한 그 교섭 과정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히 유사성이 있었습니다. 이번 한국과 미국의 방위비분담금 협상으로 이루어진 분담금은 유효기간 1년으로, 곧바로 올해 다시 협상을 재개해야하는 상황입니다. 한국과의 협상 내용을 일본과 협상할 때 지렛대로 삼고, 일본과의 협상 내용을 한국과 협상할 때 다시 준거로 제시하는 미국의 주둔비용 관련 전략은, 한국과 일본 국민의 공동 관심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함께 들었습니다.

각 나라의 소송보고가 이어졌는데, 한국측에서는 오현정 변호사님이 ‘사법농단의 실태와 과제’를 중심으로, 김종귀 변호사님은 ‘강제징용 판결의 주된 쟁점’을 발표해주셨습니다. 전날 방문했던 대추리 주민들의 숙원사업인 대추리명칭변경신청에 대한 거부처분에 관한 취소소송에 대해서는 신의철 변호사님이 발표해주셨습니다. 오키나와 측에서는 가토 유타카 센세가 ‘헤노코신기지 건설을 둘러싼 오키나와현과 국가 간의 계쟁 현황’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매립승인취소처분과 관련된 소송, 오키나와 현이 국가를 상대로 암초파괴금지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점, 매립승인철회처분과 관련한 집행정지 사건 등 다양한 계쟁상황에 대해 설명해주셨고, 헤노코 신기지 건설과 관련해서 마쓰자키 아키후미 센세가 화이트보드에 헤노코 기지가 건설예정인 곳 지형을 알려주기 위해 그림을 그려 설명하는 열의를 보여주셨습니다.

사이토 유스케 센세는 ‘기지내의 인권침해 대응 – 메도루마 국가배상사건’을 설명해주셨는데, 일본의 저명한 문학상 수상자 메도루마 슌씨가 헤노코 신기지 건설에 항의하는 활동을 하던 중 미국 해병대 기지 캠프 슈와브 소속 일본인 경비원에 의해 신체를 구속당한 뒤 총을 든 미국병사에 의해 감금되었고, 변호사접견마저 거부당한 채 8시간동안 구금상태에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미군으로부터 인도통지를 받고 늦어도 2시간 내에 슌씨를 맡을 수 있었다고 보인다면서 해상보안관이 이를 넘어 인수를 지연시킨 것에 대한 국가의 과실을 인정하여 위자료를 인정하였다고 합니다. 그 외에 헤노코 해상에서는 신기지 건설과 관련한 항의행동이 이어지고 있는데, 마쓰자키 아키후비 센세는 ‘헤노코 해상 선박전복사건의 국가배상 청구사건’에 대해 설명해주셨습니다. 이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해상보안관들이 항의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타고 있던 배(러브코)에 무리하게 승선하여 배가 전복되는 사고가 있었고, 이에 대한 국가배상사건이 진행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대추리와 평택기지, 헤노코의 신기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 속에, 그 곳에 살아있는 사람들의 평화를 향한 열망을 이어 생각할 수 있는 세미나였습니다.

 

나가며

마지막 일정이었던 고려삼계탕에서의 만찬에 이어 3차까지 엄청난 체력을 과시하며 교류회는 막을 내렸습니다. 끝까지 참여하지 못하고 중간에만 함께한 점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다음 교류회를 향한 아련한 마음을 남길 수 있었지 않았을까 혼자서 위안해봅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낯설기도 하고, 일본분들과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막상 열어보니 평화를 향한 열망도, 오키나와(일본)과 한국이 처해있는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처음 교류회라 지나치게 엄숙한 감상이었을까 싶은 반성도 들지만, 평택과 대추리, 헤노코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에서 깊은 슬픔을 느꼈습니다. 여기, 사람이 삽니다.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이요. 그런 말을 되새기는 교류회였습니다.

교류회에 대한 기억을 되돌려보다보니 이렇게나 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즐거웠었구나, 기억에 남는 일이 많았구나를 오히려 알게 되었습니다. 중간 중간 여러 변호사님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재밌는 게 많았는데 다 적지 못해 못내 아쉽습니다. 많이 즐거웠습니다. 방문해주신 오키나와 자유법조단 여러분, 도쿄에서 오신 여러분, 돗토리에서 오신 변호사님, 그리고 함께 시간을 공유해주신 민변 변호사님, 준비하느라 뛰어다닌 모든 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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