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 아동위][논평] 청소년의 참정권을 잇달아 침해하는 국가기관들의 최근 행보를 규탄한다 – 선관위의 모의투표금지 결정 및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교육기본법 개정안에 관하여

2020-02-12 3

[논 평]

청소년의 참정권을 잇달아 침해하는 국가기관들의 최근 행보를 규탄한다

선관위의 모의투표금지 결정 및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교육기본법 개정안에 관하여

 

1. 18세 청소년의 선거권을 보장하는 「공직선거법」이 지난 2019년 12월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여 2020년 1월 14일 시행되었다. 이로써 2020년 4월 15일로 예정되어 있는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대한민국의 헌정사상 최초로 18세 청소년이 참여하는 선거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와 자유한국당이 최근 청소년의 참정권을 침해하려는 조치를 잇달아 내놓으면서 이번 선거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우리 위원회는 선관위와 자유한국당의 이러한 행보가 청소년 선거권 보장의 공직선거법 개정입법 취지에 역행하고, 청소년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점에서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

 

2. 먼저 선관위는 지난 2020년 2월 6일 보도자료를 통해 선거권자인 18세 이상 학생을 대상으로 한 정당 및 후보 모의투표(이하 ‘모의투표’)와, 선거권자가 아닌 18세 미만 학생을 대상으로 한 모의투표를 모두 금지하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1). 선관위는 전자에 대해서는 「공직선거법」 제86조에서 금지된 행위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고, 후자에 대해서도 행위양태에 따라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한 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2)고 밝혔다.

 

그러나 ① 「공직선거법」은 제86조 제1항 제3호에서 ‘선거권자의 지지도를 조사하거나 이를 발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데, 학교에서 실시하는 교육 목적의 모의투표를 일반적인 지지도 조사 및 발표 행위와 비교할 때 그 목적과 행위 태양에서 본질적으로 구분될 수밖에 없다는 점, ② 선거권이 있는 학생들에 대한 모의투표에 지지도 조사 및 발표의 성격이 인정된다고 해도 이는 모의투표라는 교육 행위의 성격상 수반될 수밖에 없는 부수적인 효과에 불과하고 이러한 효과 자체를 우려해 모의투표 그 자체를 금지시킨다는 것은 과도한 제한이라는 점, ③ 위 모의투표에 지지도 조사 및 발표의 성격이 우려된다고 해도 모의투표의 결과를 선거결과 발표 전까지 외부에 공표하지 않는 등의 대안적 방법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위 조항을 근거로 18세 이상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모의투표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비례의 원칙을 위반하여 선거권자의 선거권과 교사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해석이다.

 

또한 18세 미만의 학생들은 공직선거법상 선거권자가 아니며, 따라서 이들을 대상으로 모의투표를 실시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공직선거법상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모의투표를 ‘공무원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 보는 것은 위헌적인 확장해석이다. 또한 위와 같은 선관위의 유권해석은 2018년 모의투표에 대한 선관위의 과거 유권해석과도 배치된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부 중고등학교에서 모의투표를 실시하려고 하자, 선관위는 ‘특정 후보자에게 유·불리한 행위가 없도록 유의하며, 관할 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신고한 실제투표용지와 유사하지 않은 투표용지를 사용하며, 투표마감시간 이후에 모의선거 결과를 발표한다는 조건을 충족하면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선관위는 2년만에 무엇을 근거로 입장을 바꾼 것인가. 더구나 미국, 캐나다, 독일, 일본 등의 국가에서 선거권자와 비선거권자를 대상으로 한 모의투표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사례까지 검토해보면, 결국 「공직선거법」 제86조와 제85조를 들어 모의투표를 사실상 모두 금지하기로 한 선관위의 결정은 헌법을 위반하여 「공직선거법」을 무리하게 확장해석, 적용한 위헌, 위법적인 공권력 행사이다.

 

3. 한편 박인숙 등 10인의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은 지난 2020년 1월 31일 학교 안에서 학생이 특정한 정당이나 정파를 지지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교육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위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학생이 학교 안에서 다른 학생을 대상으로 무분별하게 선거운동을 함으로써 교육활동과 학습에 잘못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어 위 법률안을 발의하였다고 밝혔다.

 

위 법률안에서는 ‘특정한 정당이나 정파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하여 다른 학생의 학습을 방해하는 학생의 행위’를 금지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선거운동은 국민주권 행사의 일환일 뿐 아니라 정치적 표현의 자유의 한 형태로서 민주사회를 구성하고 움직이게 하는 요소이므로, 선거운동의 허용범위는 아무런 제약 없이 입법자의 재량에 맡겨진 것이 아니고 그 제한입법의 위헌 여부에 대하여는 엄격한 심사기준이 적용된다3). 또한 선거운동의 자유는 원칙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선거운동자체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형태의 법률은 학생의 선거권과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위 법률안은 선거권자인 학생의 선거운동의 자유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면서도 그 금지되는 행위를 ‘다른 학생의 학습을 방해하는 학생의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학생의 학습을 방해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위 법률안만으로는 전혀 알 수 없다. 금지되는 행위가 무엇인지 전혀 알수 없게 되면 학생들은 어떤 행위가 허용되는 행위이고, 금지되는 행위인지 알 수 없어 학교현장에서의 선거운동 자체를 위축시키게 될 것이다. 또한, 학교현장에서는 불명확한 위 법률을 근거로 하여 선거운동 일체를 금지하는 학칙을 제정하는 등의 방법으로 학생의 선거운동 및 정치적 의사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금지할 수 있다. 따라서 위 법률안은 본질적으로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학생의 선거권과 표현의 자유를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으로서 위헌의 소지가 다분하다.

 

4. 또한 선관위의 결정과 자유한국당이 발의한 위 법률안은 국제인권규범에도 반한다.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은 제25조에서 선거에 관련된 권리가 청소년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는 인권이라는 점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위 규약이 보장하는 선거에 관련된 권리는 단순히 특정 선거에 투표할 권리에 그치지 않는다. 선거에 관련된 권리의 구체적 내용에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 및 정보접근에 관한 권리가 포함되며, 그 모든 권리는 차별없이 보장되어야 한다. 즉 국제인권규범은 국가에게 청소년의 투표할 권리 뿐만 아닌 정치적 표현의 자유, 선거운동의 자유 등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차별없이 보장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선관위의 결정과 위 법률안은 더 나아가 현재 선거권이 없는 청소년이 정치에 참여할 권리까지도 침해한다. 선관위의 결정에 따르면 선거권이 없는 청소년은 선거 절차를 미리 접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을 수 없다. 그리고 자유한국당의 법률안에 따르는 경우 자신의 사소한 표현과 행동이 타인의 학습권을 방해하는 것인지 여부를 검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결국 선거권이 없는 청소년들은 사실상 정치에 관하여 의견을 개진하거나 표현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이는 아동의 견해를 모든 영역에서 존중하는 것이 아동의 권리이자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에도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5. 사회적 편견은 차별과 혐오로 이어진다. 이번 선관위의 결정과 자유한국당의 법률안은 청소년을 개별 인권의 주체가 아니라, 그저 미성숙하고 비청소년에게 쉽게 휘둘리는 존재로만 바라보는 그들의 편견이 청소년의 권리를 철저하게 배제하는 차별로 이어진 전형적인 사례이다. 우리 위원회는 청소년에 대한 명백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고 있는 선관위와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엄중히 규탄한다.

 

나아가 우리 위원회는 선관위와 자유한국당 의원들를 포함한 국가기관들에게 청소년 선거권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선거권은 선거권자가 자유로운 의사표시 및 그 의견의 교환을 통해 형성된 결정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을 때 진정한 의미를 가진다. 선관위의 결정과 위 법률안처럼 청소년의 정치참여의 권리를 제한하는 방향의 정책 추진은 청소년의 온전한 선거권의 행사를 가로막는 행위로서 결국 청소년 선거권의 본질을 훼손할 것이다. 선관위를 비롯한 국가기관들은 향후 정책수립 과정에서 청소년의 선거권을 비롯한 참정권을 어떻게 실질적으로 보장할 것인지를 우선적으로 숙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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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관위의 보도자료에서는 ‘교원이 선거권이 있는 18세 학생을 대상으로 정당 또는 후보자의 지지도를 조사 또는 발표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나와 있으나, 맥락상 이는 18세 미만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모의투표의 가능 여부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2) 선관위에서는 근거의 규정을 명확히 명시하지 않았으나, 공직선거법 제85조, 제9조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3) 헌법재판소 1994. 7. 29. 선고 93헌가4,6(병합)

 

2020212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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