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엄과 명예회복을 외면하고 국제인권의 흐름에 역행하는 법원의 판결을 강력히 규탄한다.

2021-04-21 3

 

[논 평]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엄과 명예회복을 외면하고 국제인권의 흐름에 역행하는 법원의 판결을 강력히 규탄한다.

 

1. 오늘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5민사부(재판장 민성철)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면제를 이유로 원고들의 소를 각하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 지난 1월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4민사부(재판장 김정곤)는 또 다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인도에 반하는 중대한 인권침해사건에서 최종적 수단으로 선택된 민사소송에까지 국가면제를 적용하는 것은 재판받을 권리를 보장한 우리 헌법질서 및 국제인권규범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천명하면서 손해배상판결을 선고하였고, 일본 정부가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판결이 확정되었다. 세계인권의 역사에 기념비로 남을 지난 판결과는 달리, 법원이 국제인권의 흐름에 역행하면서까지 일본국에 면죄부를 준 이번 판결에 대해서 우리는 강력히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법원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가지는 의미, 즉,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회복이라는 점과 실효적 권리보장을 위한 국제인권조약에 대하여 세심하고 진지한 고찰 없이 오로지 ‘국익’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그 책임을 입법부와 행정부에 떠넘기고 최후의 인권의 보루로서 사법부의 책임을 방기하였다는 점에서 매우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위 판결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2. 첫째, 법원이 일본국에 면죄부를 주기 위하여 반인도적인 범죄로서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문제에 대해 심리도 하지 않고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달리 2015. 12, 28. 한·일합의를 권리구제수단으로 보고 피해자들의 의사까지 왜곡하여 그 근거로 삼은 것은 매우 비겁하고 위헌적이다.
법원은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구체적인 위법성을 심리도 하지 않고 2015. 12. 28. 한·일합의(이하 ‘2015한일합의’)를 대체적인 권리 구제 수단으로 보아 화해치유재단의 현금 지원사업이 진행되어 생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중 상당수가 이를 수령하였으므로 위 합의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사에 명백히 반하는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2015한일합의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될 수 없다고 수차에 걸쳐 발표하였고 헌법재판소도 2015한일합의에 대하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입은 피해의 원인이나 국제법 위반에 관한 국가책임이 적시되어 있지 않고 일본군의 관여의 강제성이나 불법성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하면서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한 법적 조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이 사건 소송절차에 참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재판부가 굳이 2015한일합의를 대체적인 권리구제 수단으로 보고, 국가면제 법리 채택의 주요 근거로 제시한 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 일부 생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화해치유재단에서 현금 지원을 받았다고 하여 마치 합의가 수많은 피해자들의 의사에 반하지 않은 것처럼 판단한 것은, 재판부의 막연한 억측일 뿐 아니라 공권력의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가해자의 책임과 피해자의 권리를 심각하게 오인한 것으로 피해자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도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다.

둘째, 법원은 국제법 준수의 필요성을 설시하면서도 실효적 권리보장을 규정한 국제인권조약의 준수 의무에 대해서는 전혀 심리하지 않았다.
오늘날 국제인권법은 심각한 인권침해에 대하여 피해자의 구제에 관한 권리를 규정함과 동시에 국가가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천명하였다. 특히 유엔총회에서 2005년 만장일치로 채택된 「국제인권법 및 국제인도법의 중대한 위반 행위에 대한 피해자 구제 및 배상 권리에 관한 기본 원칙과 가이드라인」은 개별 국가가 반드시 보장해야 하는 피해자의 권리를 제시하였는데, 그 중 첫 번째 원칙은 피해자의 ‘사법에 접근할 권리’이다. 이는 인권침해 피해에 대한 실효성 있는 구제를 받을 권리로서 주요 국제인권조약 및 지역인권조약 뿐 아니라 개별 국가도 헌법을 포함한 국내법을 통해 보장하고 있다. 각 국가는 국제인권조약에 기초하여 국가면제 이론에 도전하는 판결을 하였는데, 이탈리아 대법원의 2004년 판결(Ferrini 사건), 이탈리아 헌법재판소의 2014년 판결(No.238/2014), 미국 법원의 1980년 판결(Letelier vs. Chile 사건) 등은 심각한 인권침해가 법정지국 내에서 이루어졌다면 국가면제가 적용되지 않고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지난 1월 8일에는 아시아 최초로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이 사건과 동일한 일본군 ‘위안부’ 사건에서 국가가 국제공동체의 보편적인 가치를 파괴하고 반인권적 행위로 인하여 피해자들에게 극심한 피해를 가하였을 경우까지도 최종적 수단으로 선택된 민사소송에서 재판권이 면제된다고 해석하여 재판 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부당하다고 보고 대한민국 법원에 재판관할권이 있다고 판결하였다. 지난 4월 7일에는 9개국에서 총 410명의 법률가가 위 판결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법원은 국제법을 준수하고 새로운 예외의 창설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국제인권조약이나, 국가면제 이론에 도전하는 각 국가의 판결을 무시하고, 이미 내려진 결론에 짜 맞추기 위해 편향된 판결을 하였다.

셋째, 법원은 국가면제를 적용하여 재판권 행사를 제한하는 일이 우리 헌법질서에 명백히 반함에도 이를 재판규범으로 인정하여 판단하였다.
국내법원이 국가면제를 국제관습법으로 인정하여 재판규범으로 삼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법리가 우리 헌법 질서에 부합하여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국을 상대로 한 배상청구권은 헌법상 보장된 재산권일 뿐만 아니라 그 배상청구권의 실현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신체의 자유를 사후적으로 회복하는 의미를 갖는 것이고, 그 배상청구권의 실현을 가로막는 것은 헌법상 근원적인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침해와 직접 관련이 있다고 판시하였다. 이는 소송을 통한 배상청구권의 실현이 우리 헌법 제1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사후적인 회복에 해당함을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도 법원 스스로 국가면제를 적용하여 우리 법원의 재판권 행사를 제한하였다. 법원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기본권 침해에 대한 권리구제를 본안에 관한 판단도 하지 않고 사전에 차단함으로써 헌법 제27조에서 보장하는 재판청구권을 부인하고,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훼손한 것이다. 국가면제를 적용하는 것이 우리 헌법질서에 명백히 반함에도 그러한 법리를 재판규범으로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3.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었다는 주장만 반복하면서 명시적으로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일본 최고재판소는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일본 법원에 재판을 청구할 권리가 없다고 판시함으로써 법원의 빗장을 걸어 잠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원이 국가면제를 적용한 것은 국제인권법 질서에서 보장되고 있는 피해자의 ‘사법에 접근할 권리’ 내지 자국 법원에서 ‘재판 받을 권리’를 영구히 배제하는 것과 다름없다. 법원은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피해사실에 대한 충분한 심리도 하지 않고 최후적 구제수단으로 선택된 이 사건 소송의 의미를 간과한 채 우리 헌법질서에 명백히 반하는 국가면제를 적용함으로써 일본국에 면죄부를 주었다. 어느 곳에서도 권리를 구제받지 못한 채 사법부가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줄 것을 간절히 기다리던 피해자들의 절박한 호소를 또다시 외면한 것이다.

 

4. 또한, 이번 판결은 인도에 반하는 범죄에 대해서도 국가는 무조건적으로 면책된다는 잘못된 선례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그리고 지난 1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이 힘에 의해 지배되어온 국제질서를 극복하고 숭고한 인권의 가치를 천명하기 위해 발전시켜온 국제인권법의 역사적인 성과를 무시하고 후퇴시켰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오늘 나온 판결은 헌법의 요청사항에 반하고 시대적으로도 국제인권법의 발전에 부합하지 않은 판결로써 역사에 오명으로 남을 것이다.

 

5. 오늘 판결에 대해서는 피해자들과 의논하여 빠른 시일 내에 항소 절차로 나아갈 것이고,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인권회복과 역사정의 실현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일본 정부는 오늘 판결과 무관하게 지난 1월 8일 판결의 내용을 수용하고 피해자들에게 불법행위의 책임을 전제로 한 사죄와 배상절차를 이행해야 할 것이다.

 

2021년 4월 21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김 도 형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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