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 인터뷰] 노동위의 든든한 일꾼 이종훈 변호사를 만나다

2022-05-02 11

[회원 인터뷰] 노동위의 든든한 일꾼 이종훈 변호사를 만나다

-인터뷰어: 류하경

-류하경: 이종훈 변호사님 안녕하세요? 회원들에게 간단한 소개 및 인사말 부탁드립니다 

이종훈: 반갑습니다. 법무법인 시민에서 일하고 있고, 민변 노동위원회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는 이종훈 변호사입니다. 제가 변호사가 된 이후에 벌써 강산이 절반 정도 변했네요.^^

-류하경: 이종훈 변호사님은 지금 법무법인 시민에서 일하고 계시지요? 어떻게 시민에 들어가게 되었는지요? 

이종훈: 2016년 연초, 로스쿨 재학 중에 겨울방학 민변 실무수습에 지원했습니다. 제가 나온 로스쿨에서는 2명이 신청했는데 1명만 진행 가능한 상황이었고, 학교 행정처에서 제비뽑기를 시키더라구요.^^ 운좋게 1/2의 확률을 뚫어냈고, 노동위원회로 지원을 했는데 법무법인 시민에 배속됐었죠. 취직하고 싶은 사무실에서 실무수습을 진행할 수 있게 돼서, 정말 열심히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느 날엔가 시민 선배들이 다 퇴근하셔서 민변 사무실로 가서 야근을 하기도 했었는데, 혹시 그날 저 때문에 제때 퇴근하지 못하신 상근자님이 계신다면, 뒤늦었지만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실무수습을 좋은 기억으로 마치고, 여름방학에도 괜히 찾아뵙고 인사드리고 하다가, 2017년 변호사시험을 마치고 사무실 선배들께 저 좀 써달라고 적극적으로 들이댔습니다. 제가 번거롭고 난감하셨을 텐데, 그래도 기꺼이 거두어주셔서, 지금까지 감사한 마음으로 충성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비뽑기에서 통과하고, 실무수습에서 이 사무실에 배치되는 등 제 준비와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했던 행운들이 겹쳐서 운 좋게 원하는 곳에 취업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류하경: 법무법인 시민에 대해 소개를 해주시죠. 

이종훈: 법무법인 시민은 1993년 1월 안양지역에서 처음으로 공증업무를 겸한 법률사무소로 설립된 이래 서울 서초동에 분사무소를 개설하여 각 구성원들의 효율적인 팀워크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법무법인 시민은 의뢰인들의 권리보호를 위해 각 분야별 소송업무를 수행하고 있고, 공증업무를 통해 효율적이며 간소화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또한 파산, 회생 등의 업무를 통해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 및 개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단순한 법률지식의 제공에만 그치지 않고 법률가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소명을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각종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소홀히 하지 않고 있습니다.

 

-류하경: 사무실에 일이 많은 편인가요? 

이종훈: 양은 상대적인 개념이라, 다른 사무실에서 일해본 적이 없어서 많은 편인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가 없네요. 일이 많은 사무실보다는 적고. 일이 적은 사무실보다는 많은 것 같습니다^^

 

-류하경: 주로 어떤 종류의 사건들을 수행하시나요? 

이종훈: 영역을 가리지 않고 모든 종류의 송무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무실에 비해 노동사건의 비중은 높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현재 담당하고 있는 사건들이 노동사건에 편중되어 있지는 않고, 이것저것 정말 많은 종류의 사건들을 하고 있습니다.

 

-류하경: 책을 많이 보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퇴근 후나 휴일에는 또 어떤 취미가 있으신가요? 여가를 어떻게 보내시는지 

이종훈: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민변 공부모임에도 참여하고 있고요. 편식하지 않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최근에는 학창 시절에 접하지 못한 자연과학을 공부해보고 싶어서 교양서라도 쳐다보려고 애쓰고는 있는데, 쉽지 않네요.^^ 

또 스포츠 경기 관람을 좋아해서(주로 농구), 간혹 직관을 가기도 하고, TV 중계로 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야근하는 날 중계 틀어놓고 할 때가 많습니다.^^ 한국 프로농구 출범 이래 25년째 안양 소재 프로농구단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류하경: 이종훈 변호사님은 민변 노동위원회 활동을 대단히 열심히 하시지요. 노동위에서 지금 어떤 활동들을 하고 계시나요? 

이종훈: 노동위원회 입법모니터링 팀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판례모니터링 팀과 교차로 격주에 한 번씩 노동법령 개정안에 대해 팀원들과 함께 검토하고, ‘입법추진/찬성/보류/반대/적극저지’로 초벌 의견을 세운 후에, 노동위 수요모임에서 보고 및 토론을 거쳐 노동위 전체 의견을 정립합니다. 정기국회 때나, 보다 장기적으로는 국회 개원 시, 정부 교체 시 등등에 민변 개혁입법특별위원회에서 다른 위원회들과 함께 “한국사회 개혁과제” 등의 제목으로 입법부와 행정부에 바람직한 노동입법 방향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입법모니터링 팀 팀원들과 주제를 바꿔가며 노동법 스터디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팀 활동 외에 정기적・개인적으로 하는 것은, 1년에 한 차례 「노동판례비평」에 실을 판례평석을 작성하는 일이나, 1년에 수 차례 ‘매일노동뉴스’ 칼럼을 작성하는 일을, 노동위원회 다른 변호사님들과 함께 나누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류하경: 노동위 외에 하고 계신 다른 민변 활동은 어떤 게 있나요?

이종훈: 공익인권변론센터 내 집회의자유 연구모임에서도 활동하고 있는데, 최근의 코로나 방역 상황을 빙자한 집회의 자유 침해 상황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시민사회단체들과 연대하여 감염병예방법 개정안 마련을 위한 논의를 진행 중입니다. 다만 민변 내 집회의자유 연구모임 활동 자체는 최근에 열심히 함께 하지 못하고 있어 송구한 마음이 큽니다.😥 

 

-류하경: 민변에서 수행했던 사건이나 업무 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게 있으시다면 이야기 좀 해주세요 

이종훈: 노동위 입법모니터링 팀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권리찾기 유니온’과 연대하여 “일하는 사람 모두의 권리”라는 슬로건을 기치로 내걸고,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및 플랫폼종사자들의 근로자성 인정 및 근로자성 입증책임 전환을 위한 입법운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팀원들과 함께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하고, 토론회도 나가는 등으로 열심히 했었는데, 결국 개정안 발의까지 이루어져서 뿌듯해하고 있습니다. 입법만 완료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또 노동위원회에서 일본 오사카노동자변호단과 교류하는 행사를 매년 하는데, 일본의 노동변호사들과 고민, 마음을 나누었던 것이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류하경 변호사님, 민주노총 법률원 변호사님들과 함께 대리인단에 참여하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 불법파견 2심 승소도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3심까지 확정판결로 승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일본 오사카노동자변호단에 참여하여 진행하고 있는 이종훈 변호사

 

-류하경: 원래 노동문제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계기는? 변호사가 되기 전 사회운동 활동이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종훈: ‘사회운동’이라고 거창하게 칭하기에는 부끄러움이 앞서지만, 대학생 시절 학회 및 학생회 활동을 조금 했습니다. 고분고분했던 10대 시절과 달리 무언가 주체적인 삶을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좋았고, 무엇보다도 재밌어서 열심히 했더랬죠.(웃음) 

처음엔 선의에 기초하여 열심히 활동하기만 하면 세상이 금방 바뀔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었던 것 같네요.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채고는, 사회의 본질적 구조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진보적 담론들을 접하고 탐색했는데, 혹자들은 ‘지식인의 아편’이라 일컫는 맑스주의 논변에 중독되었네요. 저는 지식인이니까요.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인간의 피땀 어린 노동이야말로 인류에게 사회와 문명을 허락하는 근본이고, ‘자본’으로 체화된 죽은 노동이 산 노동을 지배하는 것이 비인간적 억압과 사회적 부조리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질문에 답하려다 보니, 제가 익숙함의 함정에 빠져있었다는 자각을 하게 되네요. 다시 되새김질을 해봐야겠습니다.

 

-류하경: 어린시절 성장과정이 혹시 지금의 변호사님 활동과 연결이 되는지요? 학창시절의 이종훈은 어떤 성격의 사람이었을까요? 

이종훈: 기억은 사후적으로 각색되고 편집되기 마련이라, 지금의 불완전한 기억에 의존해서 답변을 드릴 수밖에 없겠네요.(웃음)

저는 꿈이 크고 겁이 많은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엔 반항심은 충만해 있으나 겁이 많아서 제대로 표출은 못하고, 어른들 말은 또 무지 잘 듣는 모범생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하면서도 겁이 많아 학점은 잘 챙겼던 것 같고, 활동의 무게중심도 현장에서 정면으로 부딪치는 싸움보다는 조용히 진보적 사회과학을 학습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진로를 고민하면서도 혁명가를 꿈꿨으나 겁이 많아 직업적 안정성은 또 포기하지 못해 변호사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늘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이 운동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부정의 부정을 거듭하다 보면 양질전환의 날이 오리라 믿고는 있습니다.(웃음)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해야 하므로. 

 

-류하경: 대학생 때 촛불집회를 하다가 기소되어 형사재판을 받은 적도 있으시지요? 그때 제가 변호를 했었는데 좋은 결과를 못 드려 송구합니다. 어떤 사건이었는지 이야기 해주세요.

이종훈: 2008년 여름, 대학생 시절이었고 이명박 정권 시절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로 촉발된 촛불집회에 자주 참석했어요. 그 이전에 결합한 운동들에서는 학생들의 사회활동이 광범위한 민중들과 함께 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2008년에는 뭔가 달랐던 것 같아요.

경찰의 과격한 진압에 분노하며 항의하다가…는 아니고(웃음) 도망치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연행되었고, 기소가 되어 2009년에 1회 공판기일이 진행되었습니다. 당시 민변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했다가 기소된 국민들에 대한 시국변론을 많이 맡아주셔서, 어떤 민변 변호사님께서 변호인이 되어 주셨지요. 그런데 1회 공판기일 이후에 법원에서 부르질 않아 저는 재판이 문제없이 끝난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법적 절차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그 이후 군대도 다녀오고 학부를 졸업한 이후 로스쿨 진학을 하게 되었는데, 2014년에 갑자기 법원에서 2회 공판기일 출석통지가 옵니다. 당시는 그래도 법을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라 알아봤는데, 알고 보니 제가 일반교통방해죄와 집시법위반죄(야간 옥외시위)의 경합범으로 기소됐었는데, 야간(“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 옥외시위를 금지하는 집시법 제10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이 진행 중이어서 공판의 진행이 중단된 것이었더군요. 다행히 저는 길을 적당히 잘못 드는 바람에 24시 이전에 연행이 되어서, 집시법위반죄 부분은 공소취소가 되고[헌법재판소 2014. 3. 27.자 2010헌가2 결정(집시법 제10조 ‘시위’ 부분 한정위헌) 참조], 일반교통방해죄 부분만 공판이 계속되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2009년에 변호인을 맡아주셨던 변호사님께 연락을 드려봤는데, 그 변호사님도 깜짝 놀라시면서 사건을 맡기 어렵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로스쿨생이었던 저는 호기롭게 이쯤이야 혼자 할 수 있다는 표정으로 5년 만에 만난 공동피고인들과 함께 법정으로 가서 무죄를 주장했는데, 법관이 애처롭게 그 정도도 혼자 못하냐는 표정으로 변호사를 선임해오라고 하더군요.^^ 다행히 공동피고인들의 아는 형님이 민변 변호사라고 해서 어렵사리 함께 변론을 부탁 드리게 되었고, 그 아는 형님이 ‘법률사무소 해우’ 시절의 2년차 류하경 변호사님이십니다. 변호인 선임계를 제출한 이후 제1심과 항소심, 상고심이 모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고 벌금형이 확정되었습니다. 로스쿨생이랍시고 그 과정에서 제가 직접 서면을 써서 제출했던 기억도 있네요.(웃음)

류하경 변호사님께서는 송구하다고 하시지만, 제가 6년차 변호사가 되어 되새겨보니, 2년차 시절 홀로 시국변론을 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지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리 대단한 시국사건도 아니었습니다만(웃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류하경 변호사님이 어떻게 하셨어도 유죄 판결이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류하경 변호사님도 그렇게 생각하실 거라고 생각하니, 괘념치 않으시면 좋겠네요.

노동시간 단축 역행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중단 촉구 법률가단체 1인시위 참여중인 이종훈 변호사. 국회 앞에 1인 시위 피켓을 들고 서있다.
노동시간 단축 역행하는 탄력적 근로시간제 확대 중단 촉구 법률가단체 1인시위 참여중인 이종훈 변호사. 국회 앞에 1인 시위 피켓을 들고 서있다.

-류하경: 변호사가 되면서 바로 민변에 가입하셨지요? 민변 가입 이유는요? 당시에 귀감이 된 선배 동료 변호사가 있었나요?

이종훈: 사람의 마음은 늘 갈대와 같은 것이라, ‘인권변호사’ 운운하며 자기소개서를 쓰고 로스쿨에 입학하였음에도, 재학 중에는 또 어떤 분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종종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다른 건 할 줄 아는 게 없겠더군요.(웃음) 내가 즐거이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야가 명확히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그 길에 이미 선배들이 일구어 놓으신 준거집단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했고, 마음이 편할 것 같은 곳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감히 귀감이라기보다는, 그저 함께 할 수 있어서 마냥 좋았던 선배 변호사님이 계신데요. 대법원으로 불려 가시면서 더 오래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고, 변호사 폐업신고까지 하시는 바람에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게 되어서, 아련할 따름입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답니다.

 

-류하경: 변호사의 사명과 덕목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이종훈: 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질문입니다.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떨 때는 사회적 정의와 권리의 수호자 같다가도, 어떨 때는 여느 서비스직과 다를 것이 있나 싶기도 합니다. 직업의 일종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닐 바에야, 변호사라는 것 자체만으로 어깨에 힘줄 일이겠냐 만은, 누군가의 인생에 있어서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중대사의 해결을 위임 받은 전문가라고 생각하면, 또 그 무게감이 적잖습니다. 자기겸허와 타인존중이 필요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만 해봅니다. 

 

-류하경: 지금 시기에서 민변의 역할과 가야할 길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종훈: 마찬가지로 저에겐 너무 과분한 질문입니다. 법적 승인 없이 정당성을 관철시키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면 운동의 영역에서도 법률가의 역할이 더 적극적이어야 할 것 같은데, 법이 태생적으로 사회적 안정을 위한 보수적 체계라고 보면 법적 루트로 모든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운동이 스스로를 한계 짓는 것이어서 법률가의 자중이 요구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렵습니다. 그리고 변호사는 사회적 운동에 있어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제3자의 지위에 있을 수밖에 없기도 한데,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능한지,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꼭 긴요한지 등등의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많은 고민과 토론이 필요한 부분 같고, 또 민변 변호사들끼리만 의논하고 정해서는 안 될 문제라는 생각도 합니다. 시민사회와의 쌍방향적 소통이 절실해 보입니다. 

 

-류하경: 개인적인 목표와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다면?

이종훈: 단기적인 목표와 계획은 저희 사무실 사장님들처럼 좋은 사장님이 되는 것입니다. 중기적인 목표와 계획은 재밌고 의미 있는 일을 많이 하면서도 시간이 많은 변호사가 되는 것이고, 장기적인 목표와 계획은 인간과 사회, 진보와 운동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을 발간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주제는 비밀입니다. 초장기적인 목표와 계획은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의 건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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