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기고 919 기후정의행진 참여 후기
민변 입사하고 기후정의행진 처음 다녀온 사람의 일기
변지은 회원
* 기후정의행진 참여자의 일기 형식을 취한 후기글로, 독백체로 쓰여졌습니다.

땀으로 쓰여진 기후정의행진 참여자의 경고

경고를 무시한 기후정의행진 참여자의 최후
언젠가 엄청 많은 사람들이 아스팔트 위에 드러누워있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기후정의행진의 다이인(Die-in) 퍼포먼스라는 것이었다. 엄청 멋지다고 생각했고, 나도 언젠가 꼭 한 번 저 아스팔트 위에 드러누워 봐야지 다짐했다.
다짐만 하고 이 핑계 저 핑계로 기후정의행진에 한 번도 참여하지 못한 채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민변 상근자가 되었다. 그리고 환경보건위원회를 맡게 되었다. ‘환보위 담당이 되었으니 올해는 기후정의행진을 가겠구나’ 생각하며 민변 생활에 적응해나가던 중, 환보위에 시민 제보가 한 건 들어왔다. 서귀포시가 생태하천을 매립하여 반려견 특화 해수욕장을 개발하고 있는데, 서귀포시가 매립한 생태하천에는 멸종위기야생생물, 해양보호생물들이 잔뜩 살고 있다는 제보였다. 환보위에선 어떻게 대응할까 고민 끝에 감사원에 공익감사청구를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곧 기후정의행진이 다가오니 기후정의행진 행사 때 환보위 부스를 내고 시민 300명의 서명을 받아보자고 의견이 모였다. 올해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에 들어간 단체는 어림잡아도 100곳이 훌쩍 넘었고, 부스로 선정될 수 있는 단체는 30여 곳뿐이어서 어쩌면 안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민변 환보위 부스가 선정이 되었다. 부스 선정 이후 환보위 안의 동물권소위원회 변호사님들이 총출동하여 서귀포시 공익감사청구 캠페인 준비를 기획부터 굿즈 스티커와 판넬 제작 실무까지 일사천리로 해주셨다. 내 역할은 그저 옆에서 감탄하며 “우리 변호사님들 정말 최고!”를 외치고 박수를 치는 것뿐이었다.

민변 환경보건위원회 부스 사전홍보 카드뉴스
드디어 9월 19일, 919 기후정의행진의 날 아침이 밝았다. 올해 기후정의행진 사전부스 운영 시각은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단 세 시간. 우리가 받아야 하는 서명의 개수는 최소 300개 이상. 1시간 당 100개의 서명을 받아야 했고 공익감사청구 연명부 양식에는 직업과 주소까지 써야했기에 시간 싸움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동시에 서명을 해야 시간 당 100개 이상의 서명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감사하게도 환보위 회원님들뿐 아니라 디지털정보위원회, 교육위원회 등 다른 위원회 회원님들과 상근자 동료들까지 이른 아침 사전부스 세팅부터 함께 해주셔서 아무 것도 모르는 신입 상근자 입장에서 큰 힘이 되었다. 특히 다년간의 서울퀴어퍼레이드 민변부스 주무 경력으로 기후정의행진 부스 굿즈 판매 위치 등 테이블 세팅을 진두지휘해주시고 홀연히 호르무즈 파병반대 집회로 떠나신 최새얀 상근변호사 선배님과, 이 많은 부스 짐들을 뚜벅이인 내가 어찌 혼자 옮기나 걱정하고 있을 때 부릉부릉 바이크를 타고 나타나 모든 짐을 옮겨주신 최재홍 변호사님께 큰 신세를 졌다.

바이크에서 짐을 내리는 최재홍 변호사님(왼쪽)과 전 환보위 간사 장범식 변호사님
‘부스 캠페인은 이렇게 하는 것’ 몸소 시범을 보이는 최새얀 상근 변호사님
오후 3시가 되어 사전부스를 정리하고 받은 서명 개수를 세어보니 어림잡아도 300개는 훌쩍 넘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에는 노란조끼를 입은 민변 집회시위인권침해감시단이 함께 했다. 올해 기후정의행진에는 총 7대의 트럭이 함께 했는데, 모든 트럭에 집시단이 붙어서 안전하고도 평화롭게, 즐겁게 걸을 수 있었다. 새삼 민변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느꼈다.

919 기후정의행진 사전부스를 마친 뒤 기념촬영
서울시청 쪽에서 출발한 행진 행렬은 광화문역, 종각역을 지나 경복궁역 앞까지 도착했다. 그리고 사이렌 소리에 맞춰 다이인을 시작했다. 다이인 퍼포먼스는 그 이름대로 죽은 자처럼 가만히 누워 기후위기 때문에 이미 사라져버린 생명들을 기리고, 앞으로 닥칠 기후재난들을 경고하는 의미를 담은 퍼포먼스인 것으로 알고 있다. 사이렌 소리에 맞춰 민변 깃발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가만히 누워보았다.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아스팔트의 온기가 온몸을 따뜻하게 데워주었고, 새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만이 시야에 가득 찼다.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사이렌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만히 누워있으니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울컥했다. 그 순간에 딱히 네팔 홍수를 떠올린 것도, 방산회사의 불꽃축제 때문에 죽임당하는 철새들을 생각한 것도 아닌데 그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왜였을까? 3분 간의 다이인 퍼포먼스가 끝난 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깃발을 들고 행진을 마무리했다. 민변 참여자들과 함께 모여 단체사진을 찍고 뒤풀이 장소로, 또는 각자의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뒤풀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일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기후정의행진의 여운과 질문이 여전히 남아있다. 아마 이 뉴스레터가 공개될 쯤이면 환보위는 감사원 앞에서 공익감사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을 것이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여러 환경, 동물권, 보건 이슈 관련 활동을 할 것이다.

다이인을 하고 있는 민변 행진단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회원 중 아직 기후정의행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내년 9월에 함께 해보시길 추천드리며 후기 글을 마칩니다.

행진을 마친 뒤 집시위인권침해감시단과 함께 한 단체사진
글쓴이: 변지은 회원(스무 살 반려강아지와 함께 새해를 맞이하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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