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자막과 화면해설은 배려가 아니라 권리다 ― 시각·청각장애인의 영화관람권을 확인한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

[성명]
자막과 화면해설은 배려가 아니라 권리다 ―
시각·청각장애인의 영화관람권을 확인한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
대법원은 2026년 9월 3일 시각·청각장애인의 영화관람권 보장을 구하는 장애인차별구제청구 사건에서 원심판결 중 원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하였다(2022다203507 판결). 우리 모임은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자막과 화면해설 등 정당한 편의를 제공하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이번 판결을 환영한다.
대법원은 영화관이 시각·청각장애인에게 화면해설·자막과 이를 수신할 수 있는 기기 등을 제공하지 않은 것이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상 금지되는 차별행위에 해당한다는 원심의 판단을 확정하였다. 특히 장애인이 영화라는 정보에 접근하고 이를 향유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개인의 자아발전과 사회참여뿐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대법원이 장애인의 영화에 대한 정보접근권과 이를 향유할 권리의 사회적·문화적 의미를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대법원은 원심이 화면해설과 자막 제공 범위를 300석 이상의 상영관과 전체 상영 횟수의 3% 로 제한한 점은 영화관 사업자의 재정적 부담만을 과도하게 고려한 것이라 판단하였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더 나아가 비장애인과 함께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할 방법을 충분히 살피지 않은 채 극히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편의를 제공하도록 한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는 취지이다. 이는 관련 법령상 정당한 편의 제공에 관한 구체적 기준이 미비하여 적극적 조치의 내용과 범위가 법원의 재량에 맡겨진 상황에서, 구제조치의 범위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인정한 원심의 잘못을 대법원이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적극적 조치의 구체적인 내용과 범위는 여전히 법원의 폭넓은 재량에 맡겨져 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파기 전 원심과 같이 적극적 조치의 범위를 지나치게 협소하게 정하는 잘못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은 사람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구제하기 위해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의 입법 목적에 따라 시청각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실질적으로 동등하게 영화관람권을 향유할 수 있도록 적극적 조치 범위를 전향적으로 인정하여야 한다.
한편 피고들은 원심이 화면해설·자막을 제공하여야 할 영화 상영관의 지역적 범위를 특정하지 않은 것은 적극적 조치에 관한 법원의 재량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적극적 조치의 범위를 정함에 있어 원고들이 특정한 노선을 이용할 ‘구체적·현실적 개연성’을 입증하도록 요구하였던 ‘시외이동권 판결’(대법원 2019다217421)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점에서 진일보하였다 평가할 수 있다.
이 사건의 선고 절차 또한 장애인의 사법접근권 보장의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대법원은 선고 과정에서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을 제공하고, 장애인 당사자가 판결의 내용과 의미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지리드(Easy-Read) 방식으로 판결 내용을 설명하였을 뿐 아니라, 이지리드 판결서를 제공하였다. 대법원에서 이지리드 판결서가 제공된 것 또한 최초의 사례이다. 이는 장애인이 재판에서 수동적인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재판의 내용과 절차를 충분히 이해하고 동등한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도록 사법접근권을 보장하고자 한 헌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 유엔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을 실질적으로 구현한 중요한 진전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시각·청각장애인에게 자막과 화면해설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 차별이라는 점과 장애인의 영화에 대한 정보접근권과 문화향유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여야 한다는 점은 사법적으로 분명히 확인되었다. 따라서 이 문제를 더 이상 장애인 개인이 소송을 통해 해결하도록 하여서는 안 된다.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한 정부는 영화관에서 자막과 화면해설이 전면적으로 제공될 수 있도록 장애인 당사자를 포함한 이해관계자와 협력하여 실질적인 정책과 지원체계를 마련하여야 한다. 국회 역시 필요한 입법과 제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나아가 파기환송심에서도 이번 대법원 판결의 취지에 따라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영화를 선택하고 함께 관람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적극적 조치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2026. 9. 4.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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