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와 과거청산 토론회 후기

2009-10-28 133

 

 


이승주 (민변 인턴 3기 / 사법감시)


사법부의 과거청산 관련 토론회에 다녀왔습니다.




1. 한국 사법 암흑의 날




1975년 4월 8일 인민혁명당이라는 반국가단체를 조직한 혐의로 기소된 8명에 대한 사형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계사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재빠르게, 판결확정 후 18시간만에(평소에는 느릿느릿하면서) 8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대법원 스스로 ‘한국 사법 암흑의 날’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참여정부 때 온갖 방해를 뚫고 과거사법을 통과시켰고,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진실과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입니다. 2005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과거사 위원회는 그동안 상당히 많은 사건들을 조사하였고, 인혁당 사건이나 납북어부 사건 등에 대해 재심청구를 통하여 무죄판결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러나 아직 시정되지 않은 잘못된 과거는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진실과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의 활동기간은 내년(2010년) 4월이면 끝이 나게 됩니다. 과거사정리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현 정부하에서 과거사위원회가 존속될지도 의문이고, 존속되더라도 지난 5년과 같은 기능을 할지도 의문입니다.






2. 토론회의 시작에 앞서




토론회는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의문사 유가족 대표의 일갈로 시작했습니다. 지금 유가족들은 진실화해위원회 앞에서 농성중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조사하기에 힘든 것 다 이해한다. 하지만 활동기간이 끝나갈 때까지 조사개시조차 하지 않고 있는 사건이 부지기수이다. 조사에 한계가 있다는 것과 아예 시작조차 하지도 않은 것은 명백히 다른 것 아닌가”,




“종기에만 집착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종기가 나지 않게 할 수 있는지를 말해달라.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는 그만 듣고 싶다”






3. 납북어부 간첩조작사건의 수사, 재판절차상의 문제점과 사법과거청산




본격적인 토론회는 이호중 교수님의 발제로 시작되었습니다. 이호중 교수님의 발제내용은 ‘납북어부 간첩조작사건의 수사, 재판절차상의 문제점과 사법과거청산’ 이었습니다.




이호중 교수님은 납북어부 간첩조작사건의 숫자는 수십건에 이르지만, 그 과정과 태양은 놀라울정도로 똑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납북어부 간첩조작사건은 우선 어업 중에 납북되었던 사람이 귀환하면 국가기관에서 ‘저자는 납북당시 간첩지령을 받고, 사상교육을 받아 귀환한 것’이라면서 그를 불법적으로 연행해 비밀장소에 구금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이 과정에서 가족, 변호인 면담은 당연히 불가능하고, 끔찍한 고문이 이루어집니다. 고문을 통해 수사기관이 원하는 진술을 확보하면 그제서야 검사작성 피의자신문조서에 그 진술이 기재되고, 법원에서는 별다른 증거없이 피신조서상의 자백진술만으로 유죄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유죄가 인정되면 국가에서는 대대적으로 간첩을 잡았다고 공표해서 공안분위기를 조성합니다.




발제중에 몇 가지 끔찍한 가혹행위 사례들도 발표되었는데, 가령




“83년에는 안기부 인천분실 수사관들이 수시로 발가볏거서 구타, 잠 안재우고 벌세우기, 야전침대 다리로 구타 등 별의별 고문을 다하여 죽기 살기로 반항하자 두 사람이 팔을 붙잡아 엎드려 놓고 구타하여 엉덩이가 터져서 팬티가 다 물들도록 피를 흘리기도 했다. 나중에는 손바닥이고 발바닥이고 모두 퉁퉁 붓고 진물이 흘러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고문을 견디지 못해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하려고 소변보는 척하며 밖으로 나와 경찰관을 뿌리치고 옥상으로 기어 올라가다가 붙잡혀 그 이후에는 계속 수갑을 채워 놓아서 밥도 개밥먹듯이 먹고 소변도 소변통을 가져다주어 조사실 안에서 해결해야 했다”(정영씨의 국정원진실위에서의 진술. 정영씨는 간첩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5년 복역하다가 출소. 과거사위원회 조사결과 간첩사건이 조작으로 결론남)




“포승줄로 손을 묶더니 양쪽 기둥에 쇠막대기를 걸고서는 양손을 그곳에 매달아 몸이 그 쇠막대기에 대롱대롱 매달린 꼴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매달아 놓고서는 수사관이 야전침대 각목으로 사정없이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약 20분간 가슴이고 다리고 마구 구타하여 나중에는 피를 토할 정도였습니다. 수사관이 때리면서 ‘이런 새끼는 본을 보여줘야 해’라면서 때렸습니다. 그렇게 맞다가 결국 기절하게 되었습니다. 깨어나보니 참 창피한 이야기지만 제가 똥을 다 쌌더라구요. 그러더니 보안대 놈들이 군인팬티를 갖다 주면서 갈아입으라고 하고는 주는데, 똥 씻을 물도 주지 않아서 그냥 팬티에 쓱쓱 닦았습니다”(서창덕 씨의 진실화해위원회에서의 진술. 서창덕 씨는 징역10년형을 받고 수감생활을 하였고 진실화해위원회에서 간첩사건이 조작된 것으로 결론)




읽어보면 어떻게 인간이 저럴 수 있냐는 분노가 치밀어오릅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지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정영사건의 1심 재판의 배석판사였던 신평 교수는 “당시에는 이 사건이 이상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또 안기부나 보안사에서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한 사건에 대해서는 법원이 감히 뭐라고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이에 이호중 교수님은 “법원은 총체적인 권위주의 권력 하에서 검찰의 영장담당부서 정도로 격하되고 검찰의 공소장과 글자 하나 틀리지 않게 판결문에 범죄사실을 기재하는 소위 자판기 판결 내지 앵무새판결이 양산되었으며 검찰의 구형이 그대로 법원의 형선고로 이어지는 정찰제 판결이 무더기로 생산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보기관이나 검찰이 행정부 소속 공무원으로서 권위주의 정권의 파수꾼 역할을 하였다면, 사법부는 이를 막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를 위해 명목상이나마 ‘사법권 독립’이라는 강력한 방어권도 주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 사법부는 스스로 사법권 독립을 포기해버리고, 검찰이나 국가기관에 책임을 회피하는 비겁한 태도만을 보여왔습니다. 이는 비판받아 마땅하고, 아무리 반성을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누구는 아무런 방어권도 없이 목숨을 걸고 정의를 위해 싸우다가 교수형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사법부는 어땠을까요. 물론 누군가에게 목숨을 걸고 싸우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법부에게는 최소한의 위상과 명분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목숨을 걸기야 했겠습니까. 그래, 사법부에서 국가보안법 사범을 무죄로 판결한다고 정부에서 담당 법관을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그냥 옷 벗고 관찰대상이 되는 정도겠지요.




그 정도 용기도 없다면 좋습니다. 누구나 고문 받는 것을 무서워하고, 군사정부에 대항하는 것을 무서워하니까요. 용기가 없는 것이 죄는 아닙니다. 하지만 사형판결 내릴거를 무기징역으로 내리는 것 정도도 못합니까. 인혁당 사건에서 죽어간 8명에 대해 꼭 사형판결을 내려야 했을까요. 사형판결 내리지 않았다고 정부에서 법관들에게 해코지라도 했을까요. 아 물론 사표는 내야 했겠지요. 남들은 목숨 걸고 싸우는데, 사람목숨과 바꿔가면서 자리보전을 위해서 싸우시는 분들 참 행복하셨을 것입니다. 최소한의 조치도 하지 않은 사법부에겐 정말 변명의 여지도 없습니다.




더욱이 근래에는 신영철 대법관‘님’의 ‘지도’하에 다시 과거의 안좋은 모습으로 회귀하려는 경향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신영철 대법관님의 시계는 거꾸로 흘러가나봅니다.






4. 검찰 공안부의 과거와 현재




이호중 교수님에 이어서 김남준 변호사님이 검찰 공안부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발제를 하셨습니다. 김남준 변호사님은 검찰은 준사법기관으로서 기능하도록 만들어진 것인데, 역사속에서는 정권유지를 위한 도구로서 기능했다고 비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능의 핵심이 검찰 공안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안의 본래 의미는 국가, 사회적인 안전을 의미하는데, 검찰 공안부는 역사적으로 민주화운동, 반정부활동, 노동운동, 정치적사건 등을 모두 담당해왔고, 이런 공안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왔습니다.




김남준 변호사님은 MB정부에 들어서서 이전에 폐지되었던 검찰 공안3과가 부활하고 조직이 확대되고 있으며, 그 역할이 증대되고 있다면서 우려를 표하셨습니다. 실제 용산사건, 선거사범, 광우병 파동 당시 촛불집회에 대한 수사, 쌍용자동차 쟁의사건 관련 수사 모두 공안부에서 담당했습니다.




또한 공안부에서 실제 공안사건은 거의 담당하지 않고 정치적인 사건만을 주로 다루면서 ‘공안’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는 바람에 공안부에 대한 비판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도 지적하셨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현재 공안부는 폐지되어야 하며(물론 우리 가카께서 그럴리 없음은 쥐도 알 것입니다만) 일단 공안부라는 이름이라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5. 본격적인 토론과 질문




발제가 끝나고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되었는데, 토론자로 나오신 진실화해위 정광호 조사관님은 크게 세가지 문제제기를 하셨습니다. 첫째는 현재 납북어부가 귀환한 경우에 대한 보상법안이 만들어져 있는데, 그 사람이 국가보안법 위반인 경우 보상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어 문제가 아닌지, 둘째는 과거사위원회 활동이 내년에 끝나는데 미제사건이 반 이상인 바, 이에 대한 대책이 무엇인지, 셋째는 경제적으로 열악한 납북어부들은 국선변호인을 선임할 수밖에 없는데, 국선변호인이 열심히 일을 하지 않는 실정이므로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지.




이에 대해 이호중 교수님은 <납북피해자등의 구제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자체는 법체계상이나 국민정서상 문제가 없다고 답변하였습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간첩조작사건의 경우인데, 대부분은 허위, 날조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으므로 이에 대해 재심을 통해 구제를 받도록 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진실화해위원회가 내년에 끝나는데, 이것이야말로 사법부의 과거청산과 관련해서 핵심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답변은 안하셨는데, 역시 이 문제는 심각하면서도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이호중 교수님은 명백하게 반인권적이고 당연무효인 법에 의해 처벌을 받은 경우 판결자체를 무효로 하는 특별법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볼만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역시 현정권하에서는 불가능한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지금으로써는 그간 5년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방법밖에 없는 듯 합니다.




국선변호인 제도야 그 문제점이 하루이틀 제기되던 것도 아니고, 수많은 개선방안들이 나와있고 논의 중에 있으며, 사법부의 과거청산이라는 토론회 주제와 직결되는 문제도 아니므로 그냥 넘어가셨습니다.




두 번째 토론자로 참여연대의 박근용 간사가 나오셨는데, 검찰 공안부에 대한 김남준 변호사님의 발제를 보충하는 형식이었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코멘트가 끝나고 방청객의 질문에 따른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이석태 변호사님이었는데, 사법부가 처음에는 국가권력의 피해자였다가 갈수록 가해자의 입장에 가까워졌다는 입장을 취하시면서 이런 문제점에 대한 연구가 학계에서는 어느정도 진척되어 있는지를 질문하셨습니다. 그러나 이호중 교수님의 답변은 “학계에서 연구는 거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공안부 폐지, 축소라는 방향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만 이미 참여정부가 한번 실패한 적도 있는데, 문제는 내용이 아니라 전략이 아닌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박근용 간사님은 “참여정부의 추진력은 약하지 않았으나, 개혁의지만 강하고 구체적인 각론분야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고 하셨고, 김남준 변호사님은 “검찰은 준사법기관임에도 수사를 직접 주재하는 것은 본래성격과 맞지 않는다면서, 검찰의 본연적인 기능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경찰 등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지난실패를 거울삼아 다음 기회에 개혁을 성공할 수 있다. 모든 것은 한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성과물들이 쌓이고 실패가 직접되어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토론 자체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얘기는 예전 민변 사법위 회의에서 나왔던 얘기를 취합해서 그대로 말씀하신 듯합니다.




세 번째 질문은 납북어부는 남북모두에게서 피해를 받은 사람들인데, 간첩조작문제만 문제삼다가 보수측에서 납북문제에 중점을 두어 피해자 구제를 외치면서 국민적 호소력을 얻고 있지 않냐는 내용이었습니다. 국민적 공감대를 중시해야한다는 입장은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피의자 인권보호에 중점을 두다가 상대적으로 피해자의 진술권 등을 경시하지 않았냐는 반성과 비판이 있듯이, 이 문제역시 양 측면을 함께 어우르는 접근 방법이 필요합니다. 지금으로썬 보수진영측에게 프레임을 빼앗긴 듯하지만, 지금이라도 납북어부 문제를 조금 더 전향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고, 그것이 납북어부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들의 권리를 더욱 보호하는 것이 아닐까요.






6. 그들에게 관심을..




마지막으로 유가족 중 한분께서 말씀하셨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어떤 토론보다도 마음에 와닿는 말이었습니다. “지금 토론회장을 봐라. 고작 10명 남짓한 청중만이 있을 뿐이다”. 제가 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텅 빈 토론회장이었습니다. 계신 분들도 유가족들이거나, 토론회를 주최한 포럼 진실과 정의의 관련자분들 뿐이셨습니다.

유가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법부가 과거를 반성하고 사과하거나, 잘못된 과거에 대해서 보상을 받거나 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가 그들 사건에 관심을 가져주고, 억울하게 죽어가거나 처벌을 받은 사람들과 가족들의 슬픔을 함께하는 것이 아닐까요. 인간에게 제일 무서운 것은 잊혀지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