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아리셀 참사 상고심 판결(대법원 2026. 10. 20. 선고 2026도7102)에 대한 민변 입장 – 23명의 죽음 앞에 자기 판례마저 버린 대법원, 최고법원의 기능 중단을 선언한 사법 역사의 치욕

2026-10-21 78

 

 

[논평]

아리셀 참사 상고심 판결(대법원 2026. 10. 20. 선고 2026도7102)에 대한 민변 입장


– 23명의 죽음 앞에 자기 판례마저 버린 대법원, 최고법원의 기능 중단을 선언한 사법 역사의 치욕

 

대법원 제1부(재판장 대법관 신숙희, 주심 대법관 천대엽)는 아리셀 참사 사건에서 검사와 피고인들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였다. 이로써 노동자 23명이 숨진 사건에서 제1심이 징역 15년을 선고하였던 경영책임자에게는 징역 4년이, 안전보건관리책임자에게는 징역 7년이 확정되었다.

 

이 사건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가장 큰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건이고, 상고심 판단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매우 높았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선고 법정에서 유족을 앞에 두고, 어떠한 설명도 없이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는 한 문장만을 읽고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 판결문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원심이 무죄로 판단한 비상구·비상통로 관련 산업안전보건법위반 및 업무상과실치사상 부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4조 제1호·제5호 위반 부분에 관한 검사의 상고이유에 대하여, 대법원은 “법리오해, 판단유탈의 잘못이 없다”는 정형 문구를 남겼을 뿐 그 이유를 전혀 밝히지 않았다. 반면 피고인 측이 다툰 경영책임자의 개념과 시행령 제4조 제3호의 해석에 대하여는 수 쪽에 걸쳐 상세한 법리를 설시하였다. 23명의 죽음 앞에서 최고법원이 갖추어야 할 성의도 예의도 없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산업안전보건법의 해석에 있다. 아리셀은 리튬전지 폭발을 수차례 겪었고 참사 이틀 전에도 선행 폭발이 있었던 사업장이다. 그날 3동 2층에서 비상구의 존재와 위치를 알고 있던 이들은 그 문을 통해 빠져나와 살아남았고, 이를 알지 못한 이들은 작업장 안쪽 구석에서 숨졌다. 원심은 안전보건규칙 제17조에 위험물질 취급 작업장과 건축물에 비상구 설치의무를 둔 것에 대하여, ‘각 층’이라는 문언이 없다는 이유로 비상구 설치의무를 부정하였고, 제18조의 비상통로는 고정된 통로만을 의미한다며 그 유지의무까지 부정하였다. 그러나 안전보건규칙이 아무리 방대하더라도 모든 사업장의 모든 공정과 위험을 빠짐없이 담을 수는 없으며, 그러한 법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법원은 규범의 목적과 구체적 사실관계에 비추어 구성요건의 의미를 확정해 왔다. 대법원 역시 산업안전보건법령은 입법목적과 법령의 체계에 따라 합목적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고 거듭 판시하였다(대법원 2011. 6. 24. 선고 2008도12177 판결, 대법원 2021. 4. 29. 선고 2019도12986 판결 등).

 

특히 대법원 2021. 9. 30. 선고 2020도3996 판결(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사건)은 안전보건규칙에 명문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면서, 규칙과 관련한 일정한 조치가 있었더라도 현장의 구체적 실태에 비추어 실질적 안전조치에 이르지 못하였다면 규칙 위반이고, 동종 재해가 이미 발생한 현장일수록 이를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그 판결의 주심이 바로 이번 판결의 주심인 천대엽 대법관이다. 천대엽 대법관은 자신이 세운 법리와 이번 결론 사이의 모순을 논리로 설명할 수 없었기에 설명을 포기하고 도망친 것이다. 그 결과 산업안전보건법상 위법의 범위는 규칙 문언이 명시적으로 열거한 행위로 크게 축소되었다. 자기 판례의 법리마저 적용하지 않은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스스로 그 기능의 중단을 선언한 것과 다르지 않다.

 

대법원의 불성실한 판단으로 인해 항소심의 양형은 우회적으로 확정되었다. 형사소송법 제383조 제4호는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에 한하여 양형부당을 상고이유로 삼을 수 있도록 하고 있어, 항소심이 징역 15년을 4년과 7년으로 낮추는 순간 이 사건의 형량은 상고심의 심사 범위 밖으로 벗어났다. 원심은 ’23명 전원과의 합의’라는 외형만으로 결정적 감경사유로 삼았고, 그 합의의 형성 과정에 관한 피해자 측 진술은 차단하였다. 형량을 대폭 낮춘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였는지는 산업안전보건법 무죄 부분에 대한 파기환송을 통해 다시 검토할 수 있었지만, 대법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결국 23명이 숨진 사건의 4년 이란 믿을 수 없는 형량이 확정되었다.

 

이러한 방향은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2026. 9. 21. 발표한 중대산업재해치사 양형기준안과도 맞닿아 있다. 기준안은 기본영역을 징역 1년 6월에서 4년으로 정하여 산업안전보건법위반치사죄와 사실상 차이를 두지 않았고, 특별조정을 거치더라도 15년을 넘지 못하는 사실상의 상한을 설정하였으며, ‘처벌불원 또는 실질적 피해 회복’을 특별감경인자이자 집행유예의 주요 긍정사유로 정하였다. 이는 대법원이 합의하면 감경되고 사후 조치를 하면 집행유예가 된다는 것, 사전 안전투자보다 사후 합의금 지급이 합리적이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과 다름없다.

 

이번 판결은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부가 중대재해를 어떤 시각으로 다루어 왔는지를 압축해 보여준다. 매일노동뉴스의 판결 전수 분석에 따르면,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이후 중대재해처벌법위반 사건 제1심에서 경영책임자의 무죄율은 9.7%로 형사공판사건 전체 무죄율(3.3%)의 약 3배에 이르렀고, 판결이 확정된 경영책임자 106명 가운데 실형은 단 3명이었다. 대법원이 판단한 10건은 모두 원심대로 확정되었으며 그중 4건은 무죄였다. 법 시행 이후 지금까지 최종 무죄를 받은 경영책임자 17명도 모두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이후에 판결을 받았다. 기업의 구조적 책임을 묻는 데 지나치게 신중한 이 시각 아래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은 법원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은 시행 4년 8개월 만에 법원에서 그 효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번 아리셀 판결은 그 흐름의 정점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경영책임자에게 사전적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의무를 지운 법이고, 재해 예방이라는 국가의 헌법적 의무(헌법 제34조 제6항)를 실현하고자 국회가 내린 결단이었다. 해석과 양형으로 법률이 작동할 가능성을 없앴다는 점에서 이 판결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사실상의 위헌 판단이다.

 

유족들은 가족을 잃은 그날부터 진상이 밝혀지고 책임이 바로 세워지기를 바라며 애타는 마음으로 대법원 판결을 기다려 왔고, 한 번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싸워 왔다. 그 기다림 끝에 대법원이 내놓은 것은 ‘기각’이라는 한 마디였다. 2026. 10. 20.은 대한민국 사법 역사에 치욕의 날로 기록될 것이며, 우리는 이 판결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2026년 10월 21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강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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