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형사미성년 제도의 예외는 형법의 기본원리를 흔드는 입법이다
정부는 중대범죄를 이유로 한 형사미성년 연령 예외 도입 추진을 중단하라
정부가 살인 등 중대범죄를 저지른 만 13세 아동에 대해 형사재판을 가능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강력범죄에 대한 국민적 우려와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형사정책은 국민의 분노나 일시적인 여론이 아니라 헌법과 형법의 기본원리, 그리고 우리나라가 수용한 국제인권규범에 기초하여 설계되어야 한다. 이번 방안은 단순히 촉법소년 제도를 조정하는 수준을 넘어 우리 형법의 책임주의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경하는 것은 물론, 아동을 권리의 주체로 보호하고 있는 국제적 기준에도 역행하는 중대한 문제를 안고 있다.
현행 형법은 14세 미만의 아동을 형사미성년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범죄가 가볍기 때문이 아니라, 발달 과정에 있는 아동의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신경과학 연구에 따를 때, 사람의 인지적·정서적·심리사회적 역량은 초기 성인기까지 계속 성숙해 간다. 청소년은 차분한 환경에서는 성인과 유사한 수준의 추론 능력을 보일 수 있지만, 감정이 고조된 상황에서는 충동을 조절하거나 장기적 결과를 평가하고 또래 압력에 저항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의 판단 능력과 자기 통제력을 성인과 동일하게 평가하면서, 성인과 동일한 형사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점이 형사미성년자 제도의 입법적 기초이다. 달리 말해, 형사미성년자 연령은 처벌의 필요성을 정하는 제도가 아니며, 형사책임의 전제가 되는 책임능력의 존재 여부를 판단하는 제도이다.
이러한 책임능력은 사람의 정신적 성숙과 판단능력에 관한 개념이지 범죄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개념이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안은 동일한 만 13세 아동이라도 절도를 하면 책임능력이 없고, 살인을 하면 책임능력이 있는 것으로 취급하려 한다. 이는 형사책임능력을 행위자의 특성이 아니라 범죄의 종류에 따라 달리 인정하는 것으로, 우리 형법이 지금까지 일관되게 유지해 온 책임주의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우리 형법은 형사미성년, 심신상실, 심신미약 모두 행위자의 책임능력을 기준으로 규율하고 있다. 심신상실자는 범죄의 종류와 관계없이 책임능력이 부정되며, 형사미성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정부안은 처음으로 범죄의 종류에 따라 책임능력을 달리 인정하는 예외를 도입하려 한다. 이는 형사미성년 제도의 일부를 수정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형법 전체를 관통하는 책임능력 판단기준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입법이다. 우리 형법은 행위자의 책임능력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형사책임을 부과하는 체계를 취하고 있는데, 정부안은 특정 범죄의 중대성을 이유로 책임능력의 판단기준 자체를 달리 적용하도록 함으로써, 책임능력을 전제로 형사책임을 인정해 온 형법의 기본 구조를 흔들 우려가 있다.
이러한 방안은 우리나라가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요구하는 아동보호의 원칙에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아동에 대한 사법제도는 처벌보다 재활과 사회복귀를 우선해야 하며, 아동의 발달단계와 최선의 이익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일관된 기준이다. 특히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일반논평 제24호(2019)는 당사국에게 형사책임 최저연령은 모든 아동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단일한 기준이어야 하며, 범죄의 중대성을 이유로 더 낮은 연령을 적용하는 예외적·이중적 연령체계를 두어서는 안 된다고 명확히 권고하고 있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이러한 예외가 여론과 엄벌주의에 의해 형사책임 연령을 사실상 낮추는 결과를 가져와 아동권리를 침해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럼에도 정부가 추진하는 ‘중대범죄에 한한 예외적 적용’은 바로 국제사회가 폐지를 권고한 이중 연령체계를 도입하는 것이다. 동일한 연령의 아동을 범죄의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권리 보장의 대상으로 구분하는 것은 아동의 발달 특성에 기초한 형사사법의 원칙을 훼손하고, 모든 아동이 동등한 권리의 주체라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정신에도 반한다. 이는 국제인권규범을 성실히 이행해야 할 국가의 책무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중대한 범죄에 대한 엄정한 대응은 필요하다. 그러나 형사처벌 강화가 유일한 해법은 아니다. 오히려 중대범죄를 저지른 아동에게는 조기개입, 정신건강 지원, 가족지원, 회복적 사법, 전문적인 보호와 치료 등 재범을 방지하고 사회복귀를 가능하게 하는 종합적 대응체계가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형사미성년 제도의 예외를 확대하는 것은 이러한 근본적인 과제를 외면한 채 형벌 강화에만 의존하는 단편적 대응에 불과하다.
정부는 형사미성년 연령의 예외를 도입하는 것이 단순한 소년법 개정이 아니라 우리 형법의 책임주의 체계를 근본적으로 변경하는 입법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동시에 이는 대한민국이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이행 의무에도 반하는 정책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국민의 불안과 분노를 이유로 형법의 기본원리를 흔들고 아동권리를 후퇴시키는 입법은 결코 바람직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소년사법이 목적으로 하는 회복적 사법이란 피해 회복 및 가해 아동의 책임 이행과 사회복귀를 함께 지향하는 개념이다. 우리는 그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고 실효성도 없는 형사미성년자 예외 도입을 즉각 중단하고, 아동의 발달 특성과 최선의 이익, 재범 방지에 기반한 과학적이고 실효성 있는 소년사법 정책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2026년 7월 1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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