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의 소식] 민주사회를 위한 변화, 민변 9기 인턴 OT 그 첫걸음.

2012-09-14 303

 민주사회를 위한 변화, 그 첫걸음.
9
기 인턴 OT를 돌아보며.

 

 

_ 9기 인턴 성준후

 

 여름의 마지막 날, 새로움보다는
조금씩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 가을이 왔다. 일제에 맞서 투쟁한 민중의 횃불이 마지막으로
타오른 8월의 광복절에 내리쬐던 뜨거운 폭염도 지나가고, 계절이
식어가매 신년 초에 품었던 우리들의 열정과 설레임도 약간은 식어가는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며 낯선 곳으로 발을 내딛는다. 한강변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마포 양화나루 언덕배기의
아담한 마리스타 교육관. 삶은 수많은 헤어짐과 만남의 연속일진대 누군가와의 헤어짐을 뒤로 한 채 우리들은
어떤 새로운 만남을 위해 이곳에 모였을까.

 누구나 다, 자신에게 주어진 만큼의 부담은 스스로 안고 살아간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우리나라 역사에서 젊은 학생들에게 주어졌던 역할은 어떻게 변화 해 왔을까. 인권에 대한 대학생들의 노력은 언제나 위태롭고 어려워 보였다. 근거 없는 반항심으로 세상의 반대편에 서서 철없이 투쟁을 일삼는 청년들로 비춰졌다. 뜨거운 가슴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쟁취하던 80년대 대학생들과 달리 지금의 대학생들은 차가운 머리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 나약하고 무모해 보이는 것들에 대한 냉소와 그에 따른 지나친 합리주의, 그것만을 허용하는 차가운 눈에는 정교하리만치 은폐되어있는 사회의 모순이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들이 차가운 시대이다. 가장 뜨거운 영혼을 가지고 있어야 할 젊은 우리들이 태양을 피해 뒤돌아섰다. 차츰 그림자는 우리들의 눈앞으로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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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전환기의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라고 한다. 과거, 소위 문제 있었던
그 시기의 우리나라는 아우성으로 가득 한, 침묵을 미덕으로 생각하게끔 길들여져 있었다. 서로가 잘못 된 것임을 알면서도 겸손함을 가장하여 무기력함을 합리화했고, 처세훈을
들어 계란으로 바위를 치려는 자를 외면했다. 이것이 지난 반세기동안 굴절 되어 온 우리나라 민중사의
자화상이었다. 각자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용기만 허용하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역사의 이면은 그 침묵을 깨고자 하는 노력과 투쟁의 연속이었음에 틀림없다. 서슬 퍼런 유신시대에
맞서 노동운동을 하던 노동운동가들, 신군부에 희생 된 광주시민,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울의 봄을 만들어 낸 전국의 대학생들의 역사가 그것이었다.
심당 이병린 변호사, 조영래 변호사는 그러한 우리나라 민중의 역사에 무비판적인 냉소나 맹목적인 낙관주의가 아닌 이성의
힘을 녹여내렸다. 국법이 인간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쓰이던 그 시기에 초대 인권변호사들은 반대로 법으로
인간을 지켜내는 역사를 일관되게 써 내려 왔다. 법이라는 성문화 된 청사진을 조금씩 다시 써 내려감으로써
민주화와 인권에 대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들을 견인 해 왔다. 법에 근거 한 이성은, 정의로운 사회를 바라는 감성이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지켜주었다. 시민들은
차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성벽을 쌓아 올릴 수 있었고 침묵의 미덕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은 그 시대에는 불가능해 보이기만 했던, 정의를 갈망하는 인간의 양심과 정의로운 법률이
모순되지 않는 사회를 위한 노력들의 산실이자 믿음의 매개체였다.


‘인간에 대한 궁극적인 평가는 그 사람이 편안하고 편리한 상황에 처했을
때가 아니라 도전과 갈등에 직면했을 때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지금의
우리는 누구나 인권에 대해 얘기하지만, 그 ‘인권’이라는 가벼운 표현 속에 지금의 나와 같은 대학생들은
감당하지도 못할 수 많은 희생의 역사와 가치가 깃들여져 있다. 우리는 그 시절, 바위를 내려치려는 계란이 될 수 있었을까. 머릿속을 가득 채운 알량한
지식이 아닌 인권에 대한 감수성과 그것을 지키기 위한 용기는 내 삶 속에 얼마나 배여 들어있었을까. 악을
악이라 비판하지 않고 선을 선이라 격려하지 않는, 얼핏 보기에 중립적이고 공정한 듯 보이지만 오히려
스스로의 무기력함을 합리화 하고 현실에 순응하면서 살아가겠노라는, 지금 이 시대 우리 젊은 학생들의
외로운 모습이다. 밝은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설레기보다는 씁쓸함을 머금은 미소와 스스로의 무기력함을
자책하게 되는 것은 우리들만의 특수한 예외가 아니라 이 시대의 모든 학생들이 공유하는 보편적인 경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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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지고 보면 우리가
이곳에 모인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 스스로 이런 나약한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자 하는 각자의
작은 마음가짐들이 우리를 서로 불러들인 것은 아닐까
. 지금 나와 내 옆의 열다섯 명의 인턴들이‘민변’이라는, 어쩌면 우리와 같은 대학생들에게 마냥 가볍거나 보편적이지는 않은 이곳에 처음 발을 내딛게 된 것은 각자 자신들만의
인권의 사각지대를 향한 다양한 몸부림으로 시작되었으리라고 굳게 믿고싶다
. 가을과 겨울이 지나 짧지만
긴 대여섯 달 후에
, 새로운 10기 인턴 지원자들이 불과
2주일 전의 우리가 품었던 똑같은 기대와 고민을 안고 민변의 문을 두드렸을 때,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이 지금보다 더 달라졌고 무엇을 더 느끼며 배웠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경쟁과 남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으로 서로를 둘러싸게 될 기성사회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 지금 이 곳에서만 얻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찾아보고 싶다. 시간이 지나 우리가 이제는 얻는 것 보다는 베푸는 것에 익숙해져야 할 때, 그래도
우리들의 주머니에 젊은 시절의 열정과 경험들이 가득 차 있어야 하지 않을까
. 젊음이란 그만큼 소중한
가치가 있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기에
,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우리의 젊은 시절을
근사하게 쓰는 것은 젊은 우리들의 의무이다
. 민변이 추구하는 가치에 공감하고 부족하게나마 지원서를 쓰던
내 모습에 작은 보람을 느낀다
. 모든 것에 서툴고 어색하기만 했던 우리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주신 민변
변호사님들
, 그리고 간사님들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마리스타
교육관에서의
12일 동안 처음 만난 모든 사람들이 언제까지고
내 인생에 큰 영감을 주실 인연으로 남아있길 바란다
. 나는 운이 좋았을 뿐, 함께하지 못한 지원자들 모두 나보다 훨씬 뛰어난 친구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자신의 모습을 두고 모든 이들에게서 박수 받으려 하는 것은 분명 크나 큰 욕심일 것이다. 다만 작은 생채기가 더 단단한 새 살을 돋게 하듯이, 나의 부족한
모습들과 실수들이 민변에게 있어 의미있는 굳은살로 남았으면 한다
. 시간이 지나 우리의 흔적이 거의 다
지워지는 때가 되어도 언제나 지금처럼 선연하고 강인한 모습의 민변으로 계속될 수 있길 바란다
. 앞으로
다가 올 민변에서의 크고 작은 경험들이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오랫동안 내 인생의 밑천으로 남아있길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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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변 9기 인턴 OT 이틑 날, 민변 변호사님들과 간사님들, 그리고 9기 인턴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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