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이하 ‘우리 모임’이라고 합니다)는 ‘법은 여성에게 얼마나 평등하고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으로 2006년 처음 시작된 판례비평집 <사법정의와 여성>의 다섯 번째 권을 발간합니다.
지난 겨울 우리 사회는 견고하다고 믿어왔던 민주주의 가치가 위협받고 소수자를 향한 혐오와 배제가 노골화되는 위기를 지나, 보다 평등하고 민주적으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그에 저항하는 시민의 연대와 열망, 투쟁의 힘 또한 어느 때보다 선명하고 강해졌다고 느낍니다.
이번 책에 실린 26개 글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2019년부터 2025년 10월까지 대한민국 법원 및 헌법재판소의 주요 판결들 속에도 수많은 여성들의 삶과 용기, 그들과 함께 연대하여 싸워온 여성운동 활동가들, 연구자들, 법률가들이 보낸 치열한 시간과 노력들이 담겨있습니다. 채용 성차별과 고용 평등의 문제에서부터 디지털 성범죄와 딥페이크, 술과 약물을 이용한 성범죄, 스토킹과 그루밍 성범죄, 그리고 과거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여 성폭력, 이주여성과 성소수자의 권리에 이르기까지, 법의 문을 두드린 수 많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법리적인 다툼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부터 차오른 존엄을 향한 외침이자, 견고한 차별의 벽에 균열을 내온 여성 운동의 살아있는 역사의 장면들입니다.
우리가 판례를 비평하고 기록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법원은 사회적 정의의 최후 보루로서, 기계적인 중립을 넘어 실질적인 평등을 구현해야 할 책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비평집에서 다루는 강간죄에서 ‘폭행·협박’ 문제, ‘성인지 감수성’의 법리,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그리고 진화하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법적 대응 등은 법원이 더 이상 과거의 통념과 편견, 낡은 관성에 머무를 수 없음을 시사합니다. 법은 고정된 문자가 아니라, 시대의 아픔과 인권, 정의의 요청에 응답하며 끊임없이 해석되고 확장되어야 합니다. 법정은 가해자의 서사가 아닌 피해자의 고통과 맥락을 깊이 있게 살피는 공간이어야 하며, 형식적인 논리에 갇혀 차별의 구조를 외면하지 않는 성찰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법원이 여성과 소수자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호 하는 인권의 옹호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기를 희망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성차별과 폭력에 맞서 싸우고 계신 활동가, 변호사, 연구자, 그리고 무엇보다 용기 내어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 모든 생존자분들께 깊은 존경과 격려를 보냅니다. 이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많이 고민해주시고 애써주신 안지희 편집팀장님과 팀원분들, 바쁘신 일정에도 기꺼이 감수를 맡아주신 김태선 교수님과 김진, 이정희, 오선희, 오지원 변호사님들과 모든 집필자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이 책이 나올 수 있도록 누구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역할을 해주신 장길완 활동가님의 헌신에 특별한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 비평집이 성평등한 미래를 향한 우리 사회를 위한 작지만 밝게 빛나는 이정표가 되기를 바랍니다.
2026년 1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장 전다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