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변의 변론] 변호인 접견교통권 침해 국가배상청구를 기각한 판결

2010-08-31 117



변호인 접견교통권 침해 국가배상청구를 기각한 판결
– 변호인이 되려는 ‘진정한 의사’가 있는 자만 접견교통권을 가진다?





 변호인의 접견교통권에 관한 최근 하급심 판결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고 접견교통권의 의의를 천명한 의미 있는 판결이면 좋겠지만
이번에 소개할 판결은 그와 반대편에 있는 판결입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0. 8. 19. 선고, 2010나10701판결, 제6민사부).

 지난 2008년 쇠고기 촛불집회를 기억하시지요? 당시 민변 소속 변호사들은 ‘인권침해감시변호사단’ 노란 조끼를 착용하고 집회 현장에 참여하였습니다. 민변 변호사들은 집회 참여자에 대한 경찰의 강경한 대응과 무차별적 연행 과정을 목격하면서 형사소송법의 정한 원칙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절감하였습니다. 촛불집회에 참여하여 대열 속에서 촛불을 든 것 외에는 어떠한 물리력도 행사하지 않던 시민이 현장 지휘관의 지시 한 번에 잡혀가는 현실을 우리는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형사소송법상 야간미신고옥외집회에 참여하였다는 혐의만으로는 현행범체포를 무차별적으로 할 수 없음에도 경찰은 ‘억울하면 나중에 소송을 해라’고 하거나 헬멧 뒤로 표정을 숨기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기 일쑤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변 변호사들은 연행된 사람을 발견하면 즉시 변호사신분증을 제시하면서 현장 변호인 접견을 요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헌법제12조제4항),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의 이유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고지 받지 아니하고는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하지 아니한다.”(동조제5항)는 헌법 조항을 소리 높여 말해주며 변호인 접견을 요청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헌법상 권리가 있으므로 현행범체포 당시 눈앞에 있는 변호사와의 접견을 통해 조력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도 같은 상황에서 발생하였습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6월 10일 촛불집회가 열렸습니다. 경찰은 몇 차례 해산명령 후에 지휘관의 지시에 따라 강제해산에 나서고 미처 피하지 못한 집회 참여자들을 무차별적으로 연행하였습니다. 당시 인권침해감시단 조끼를 입고 인권침해감시활동을 하던 민변 회원이 시민들이 연행되는 상황을 발견하고 경찰 대열 속으로 들어가서 변호사신분증을 제시하며 변호인접견을 수차례 요청하였으나 거절당하였습니다. 이에 현장 변호인접견을 거부한 것은 변호인의 접견교통권을 침해하였다는 이유로 국가배상청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1심 법원에 이어 최근 항소심 법원도 접견교통권 침해가 아니라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법원의 논리는 몇 가지 점에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첫째, 헌법 제12조제4항은 ‘즉시’ 조력 받을 권리를 명문으로 정하고 있으며 ‘즉시’를 제한하는 어떠한 시기적, 절차적 제한도 두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변호인의 접견교통권은 수사기관의 처분으로 제한할 수 없고, 오로지 법령의 제한이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법원은 아래 보는 바와 같이 현행범체포가 완료되지 않아 접견이 불가능하였다거나, 변호인이 되려는 진정한 의사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등의 법적 근거 없는 자의적 기준을 내세워 ‘원고에게 접견교통권의 권리가 없다’고 선언하면서 헌법 제12조제4항을 무력화시키는 위헌적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 법원은 체포 당시는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 공무원의 정당한 강제해산 조치에 대항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급박한 상황이어서 연행자를 호송차량으로 인도하여 현행범체포를 완료하기 전까지는 즉시 접견을 허용하는 것이 불가능하였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집회 현장에서 몇 명의 경찰에게 체포되어 경찰의 대열 속으로 이미 들어간 상황은 체포된 자가 이미 경찰에 의해 제압된 상태로서 그 상태에서 소극적 저항을 넘어 도주하거나 경찰에 적극적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호송차량에 도착하기 전이라도 이미 현행범체포는 완료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판결을 보면 법원은 변호사가 “원고는 경찰 공무원의 현행범체포를 방해하기 위하여 접견을 요청하였을 뿐”이라고 납득하기 어려운 자의적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는 헌법 제12조제4항에서 “즉시” 조력을 받을 수 있다고 한 부분을 무력화시키는 해석론이라고 할 것입니다.

셋째, 법원은 “접견교통권을 인정하기 위하여는 적어도 접견신청 당시 피고인 또는 피의자의 변호인이 되려는 진정한 의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사소송법 제34조는 “변호인 또는 변호인이 되려는 자는 신체구속을 당한 피고인 또는 피의자와 접견하고 서류 또는 물건을 수수할 수 있으며 의사로 하여금 진료하게 할 수 있다.”고 하고 있을 뿐, 변호인이 되려는 진정한 의사를 접견교통권 발생의 요건으로 요구하고 있지 않습니다. 위 조항은 변호인으로 선임된 자 뿐 아니라 장래 변호인이 되려는 자도 접견교통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임에도, 법원이 위 조항을 ‘진정한 의사’가 있는 자만이 접견교통권을 가진다고 해석하는 것은 부당하게 접견교통권의 범위를 축소하는 것입니다. 변호사가 접견을 하는 것은 변호사로서의 당연한 활동이고 이는 기본적으로 상황에 따라 변호인이 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봄이 상식에 부합하므로, 이를 부정하려면 그 입증책임은 접견교통을 거부하는 수사기관이 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단지 실제 접견을 나중에 다른 변호사가 했다는 결과만을 가지고 원고의 접견교통 권리를 부인하였습니다.


 최근 변호인의 접견교통권을 제한하는 여러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구치소에서는 증거인멸과 담배 등 물품 제공의 우려 등을 들어 변호인 접견을 하려 하는 변호사의 가방과 몸수색을 하고 있고 위 판결과 같은 논리로 선임계 없는 구치소 변호인 접견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접견교통권은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최소한의 장치이기 때문에 특별한 지위를 가집니다. 수사기관과 행정기관이 공무집행의 편의를 들어 접견교통권을 쉽게 제한하려 들고, 법원이 깊은 고민 없이 이런 관행에 제동을 걸지 못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글 / 민변 변론팀  송상교 변호사


[판결문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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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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